오늘 남북문화기행은 ‘남한 말 북한 말’ 편입니다. 최영윤 기자가 준비했습니다.
<구성: 드라마 ‘너는 내 운명’ 중에서>
북한에서도 한국의 텔레비전 연속극이 인기가 있다고 들었는데요.
여러분이 방금 들으신 것은 요즘 kbs 방송에서 매일 저녁 8시 반에 30분씩 내보내고 있는 일일연속극 ‘너는 내 운명’ 중의 한 대목입니다.
남녀 간의 사랑과 가족간의 갈등과 화해, 사랑을 그린 내용인데요. 보여드릴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는데 잠시나마 들으신 소감이 어떤지 궁금하군요.
<구성: 드라마 ‘너는 내 운명’ 중에서>
이 연속극에서 배우들이 사용하는 말은 그야말로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사용하고 있는 서울말, 한국의 공식적인 표준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쪽에서는 평양에서 사용하는 공식적인 말을 ‘문화어’라고 말하고 있죠?
단일민족국가였던 대한민국이 일제 강점기를 거쳐 체제가 다른 분단국가가 되면서 공용어도 남쪽은 표준어, 북쪽은 문화어를 사용하게 됐습니다.
올해로 서울에 온 지 5년째 되는 탈북자 김춘애 씨가 처음 서울말을 들었을 때 느낌은 어땠을까요?
김춘애 씨:
인천공항에서 내리니까 남한 사람들이 말을 너무 친절하게 하는 거예요. 말투도 남한 사람들은 말을 다 내려하잖아요. 거기서 우리가 감동먹고 울고 그랬는데.....
남북한 학자들이 지난 2005년부터 남북의 언어적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남북이 함께 사용할 ‘겨레말 큰 사전’을 편찬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는데요.
남북공동편찬사업회 한용운 편집부실장은 남한 말에 대한 북한 학자들의 인상을 이렇게 전합니다.
한용운 부실장
: 식사 자리에서 동석하는 경우가 생기면 간지럽다는 표현을 많이 씁니다. 부드럽다 보다는 간지럽다...
마찬가지로 남쪽 주민들에게도 북한말은 귀에 설은 말입니다. 일산에 사는 최철승 씨의 얘기입니다.
최철승 씨: 뭔가 우리하고 익숙지 않아서 어색하고 진취적이고 강한 느낌을 받습니다. 주위에 북한에 있다가 남한에 오신 분 말을 들어도 강한 느낌이 들어요.
남북한 주민이 서로 상대방 말에 대해 갖는 이런 낯선 느낌은 남한에서는 외래어로 사용하는 말들을 북한에서는 한글로 풀어서 사용하는데서 훨씬 심각하게 나타납니다.
<시민: 인터뷰 구성>
그러다 보니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온 탈북자들은 남한 생활에서 가장 어려운 점 중에 하나로 외래어가 많다는 점을 듭니다.
탈북자 김춘애 씨의 말입니다.
김춘애 씨
: 롯데백화점이라든가 프라자, 개봉 프라자 그리고 ‘인디언’ 저건 또 무슨 소리야? 먹는 음식에선 햄버거, 닭 치킨... 닭 치킨이 뭐인가? 튀김을 닭 치킨이라고 해서 참 그때는 말이 희귀하니까. 아직까지도 ‘인디언’은 왜 저걸 인디언이라고 했을까 호기심이 있는 거죠. 5년이 됐는데도....
남한에서는 외래어 사용이 생활화 돼있다 보니 거리를 나서면 좌우로 즐비하게 들어선 상점들 간판에도 국적이 불분명한 상점이름이 난립합니다.
간판을 보면 “아! 그것을 파는 가게로구나!” 하고 알 수 있는 북쪽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라고 한용운 부실장은 말하더군요.
한용운 부실장
: 채소를 팔면 남새집, 개고기를 팔면 단고기집 차를 팔면 찻집... 제가 눈이 편했던 것은 외래어나 로마자 표기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남북한의 언어가 이질화된 것은 우선 언어관의 차이에서부터 비롯됐습니다.
남한에서는 언어란 의사소통의 수단이며 사고의 바탕이고 한 사람의 인품을 가늠하는 척도로 보고 있지만, 북한에서는 언어를 공산혁명과 주민 동원의 수단이며 통치의 도구라고 간주합니다.
이런 언어관을 갖고 있는 북한 당국은 지난 1966년 5월14일, 김일성의 교시에 따라 평양말을 중심으로 함경도 사투리를 가미한 ‘문화어’를 새로 제정하고, 남한의 표준어와 다른 의미 구조와 어휘 발달을 도모해왔고 남북한 주민들이 사용하는 언어들도 차이가 나게 됐습니다.
폐쇄적인 북한 사회와 달리 개방화된 남한 사회는 외부로부터 새로운 문물이 대거 유입돼 들어왔고 새로운 문물로부터 파생된 외국어 표기를 우리말로 풀어서 사용하기보다 그 단어와 뜻과 발음을 함께 수용하는 방법으로 외래어를 받아들였습니다.
북쪽에선 외래어가 많은 남쪽의 말을 ‘잡탕말’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죠?
하지만 요즘 세상을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닐까요?
한용운 부실장
: 지금처럼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하는 사회에서는 외래어에 대해서도 남쪽처럼 외래어를 국어보다 좋게 생각하는 것도 문제지만 북쪽처럼 모든 외래어를 고유어로 고치겠다는 것도 적지 않은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하는 것이죠.
남북한 언어는 외래어 사용에서 가장 큰 이질감을 보이고 있지만, 같은 상태나 행동에 대해서 사용하는 말이 달라서 생기는 오해도 남북한 주민들 간에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김춘애 씨는 한국에 와서 이런 언어 문제로 당혹스러웠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김춘애 씨
: 우리는 말 잘하는 사람들... 참 말질 잘한다... 질 자를 많이 붙이잖아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나쁜 말로 알아들어서 여기 사람들은 기분 없어하지...
사용하는 말에선 차이를 느껴도 남쪽에 사는 사람들의 이름을 보면 정겨운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친 영향으로 남쪽이나 북쪽이나, 특히 우리 어머니 세대들의 이름에는 한자로 ‘자’자로 끝나는 일본식 이름이 많습니다.
파주에 사는 김영주 씨는 친구와 친척 이름에도 얼마나 많은 자자가 있는지 우습기만 합니다.
김영주 씨
: 영자, 춘자, 금자, 끝자, 복자, 희자... 옛날에는 주로 순 ‘자’ 자 안들어가면 이름이 없어요. 그저 앞자만 떼놓고 전부 ‘자’자라고요.
하지만, 요즘 남쪽에서는 자녀 이름을 한글로 짓는 사람들이 차츰 늘고 있습니다.
이번 한글날을 앞두고 시민단체인 우리말살리기 겨레 모임은 자녀 12명의 이름을 한글로 지은 부부를 우리말 지킴이로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남북한 주민들이 사용하고 접하는 말에는 분명 차이가 있지만, 불행중 다행인 것은 남북의 주민들이 만난다면 의사소통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는 점입니다.
한용운 부실장입니다.
한용운 부실장
: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문법이나 그런 것의 차이가 아니라 일부 어휘에서 차이고...
말로 인해 남북한 주민들이 서로에게 갖는 편견이 더 문제입니다.
김춘애 씨
: 눈초리는 다르지 않지만, 우리로서는 어렸을 때부터 그런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상대방이 나를 잘못 보는구나. 우리가 말씨가 다르니까 모든 물건을 우리에게 비싸게 팔지 않나 하는 선입견이 생기게 돼요.
서울에는 경기도와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충청도, 제주도 등 전국 여러 곳에서 온 지역 사람들이 한데 어울려 일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평상시에 서울말에 동화돼 있다가도 고향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만의 고향 사투리를 정겹게 쓰곤 합니다.
이웃과 친구를 통해 텔레비전 연속극을 통해 지역 언어, 지역 사투리를 듣고 살아온 남쪽 주민들은 더 이상 그런 사투리를 낯설어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북한말은 남쪽 주민들에게 남한말은 북한 주민들에게 이방인의 언어로 느껴지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입니다.
남북이 통일이 됐을 때, 아니 그 전이라도 남쪽에서는 북쪽 말이 북쪽에서는 남쪽 말이 낯설지 않게 느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한 주민들간 교류가 필요하다고 한용운 부실장은 강조합니다.
한용운 부실장
: 일단은 서로 자주 만나서 대화를 해봐야 하고 이런 면에서 좀 다르구나 이때는 이렇게 표현하는구나 하는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남북한 주민들이 자유롭게 만나다 보면 서로의 말을 자연스럽게 알아가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언젠가 평양에선 서울말이, 서울에선 평양말이 정겨운 사투리쯤으로 느껴지지 않을까요?
그 날이 오길 기대하며 남북문화기행 ‘남한말, 북한말’ 편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