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장을 보러 갔다 와서 신문으로 둘둘 말은 것을 펼쳐 놓을 때 그 안에는 콩나물이나 시금치 등의 채소(남새)나 생선(물고기)이 있었습니다.
이렇듯 신문은 정보지로 또는 생활용품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별다른 놀이 기구가 없던 가난한 시절 아이들에겐 비행기나 딱지를 접어서 놀던 놀이 기구가 되기도 합니다.
남북의 문화 기행 오늘의 주제는 신문입니다.
아~ 오늘은 이런 기사가 났네 .... (윤전기 돌아가는 소리)
한국신문협회에 따르면 한국에서 하루치 신문에 실리는 사진은 90건 안팎 52면에 실리는 기사양은 200건 정도 그리고 신문 용지로 쓰이는 종이의 양은 하루 평균 570톤으로 그것을 길이로 환산으로 하면 7,800여 킬로미터에 달합니다.
한국의 중앙일보 멀티미디어랩 김택환 소장입니다.
김택환:
지금 대한민국에는 일간신문으로 약 130개 신문이 발행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신문 구독률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인터넷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 독자들은 신문을 사랑합니다. 50 퍼센트 정도가 매일 신문을 읽는다고 할 정도입니다. 왜냐하면 신문이야 말로 뉴스와 정보를 잘 정제해서 독자들에게 전달해 주기 때문입니다.
북한에서도 신문은 엘리트층에게는 유일한 정보 소식지로 또 일반 대중에게는 생활필수품으로 사랑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 수와 양에서 남북한의 신문발행 부수는 남북한의 경제 규모만큼이나 차이가 큽니다. 탈북자 오진하 씨입니다.
오진하:
16개가 됩니다. 중앙신문이 노동신문, 민주조선, 청년전의 등 3개가 있습니다. 지방신문은 13개입니다. 평양신문, 조선인민군 이런 것은 지방의 신문에는 속하지는 않고 중앙신문이라고 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격을 높여 보는 신문들이고 나머지 지방 신문들은 평북일보 평남일보 황북일보는 지방신문인데 일간지예요. 북한에는 주간지가 없습니다. 또 분야별로 교원신문, 광부신문 그런 것도 있는데 종이 사정으로 90년대부터는 아예 인쇄를 하지 않습니다.
남북한의 신문을 비교해 보면 북한 신문이 흑백의 단조로움 속에 딱딱한 기사들로 채워졌다면 한국의 신문은 자연 그대로 색채를 살린 상품 광고나 새로 상영되는 영화를 홍보하는 영화관 사진 등 다양함과 화려함으로 해서 신문을 보는 데 지루함이 없도록 구성이 돼있습니다.
현재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 돼버렸지만 북한에서 신문이 생활용품으로 귀하게 대접받는 것처럼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오진하:
벽지나 장판지 대용으로도 쓰고 포장지로도 유일한 대용품이고 담배 말이 종이로 없어서는 안 될 것이고 여성들에게는 화장지가 되고 가정용 화장지로도 쓰고 지방의 오지 같은 곳을 가면 젊은 여성들이 신문지를 찾습니다. 왜냐하면 신문지가 지방으로 갈수록 희귀한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신문이 유일한 아주 부드러운 종이 중 하납니다 그러니까 생리대 대용으로도 쓰는 것이 보편화돼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비닐봉지가 요즘처럼 흔하지 않았을 때 한때 다 읽고 난 신문지가 포장지로 쓰였고 각 가정에선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할 때 신문지를 넓적하게 잘라서 화장실 벽에 걸어두고 섰습니다.
또 비가 오는 날이면 아이들은 신문지를 접어 배를 만들고 학교에선 공작 시간에 탈바가지를 만드는 훌륭한 재로로 쓰이기도 할 만큼 신문의 용도는 다양합니다.
신문을 매일 보는 박승후 씨는 미국 이민생활이 30년이 넘지만 한국에 살고 있는 것 못지않게 한국 소식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문하면 떠오르는 기억을 이렇게 말합니다.
박승후:
옛날엔 경제나 문화보다는 정치가 앞섰습니다. 한국이란 나라가 해방 후 근대사를 보면 독재정권이 많이 있었고 해서 항상 국민의 관심사의 대부분은 정치에 쏠려 있었다고 봐도 돼요. 신문의 인기도 정부를 비판하는 신문이 인기가 높았고 또 신문하면 어린 소년들, 지금 보면 초등학생부터 나이가 많아야 고등학생 1학년 그 사이의 어린 소년들이 눈이 오는 날 가장 힘들었고, 비 오는 날도 옆구리에 끼고 뛰어 한 집 한 집 다니면서 그것으로 자기들 학비도 돕고.
북한을 탈출하기 전까지 출판물 배급소에서 일했던 김춘화 씨는 하얀 종이에 인쇄된 노동신문은 종이의 질이 좋아 재활용하려는 사람이 많아 주민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같은 한부의 신문 속에서도 함부로 취급해선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사진이 있을 땐 말입니다.
김춘화:
신문이 속지가 있고 간지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본 신문은 다치지 않고 반장짜리 간지로 담배를 피우고 기본 신문으로 담배를 피울 때 사진이 있을 때는 다 가위로 오려서 도서관에 가져갑니다. 거기는 종이가 없기 때문에 신문을 주고는 다시 우리가 수매를 받는 겁니다. 사진은 모아놨다가 받치면 되고.
가난했던 시절 구멍이 난 방문에는 하얀 창호지 대신 임시로 신문을 네모꼴로 잘라 붙이기도 했습니다.
또, 겨울철 매서운 바람을 막기 위해 신문은 문풍지로도 쓰입니다.
그나마 살림이 좀 나은 집에선 한지를 길게 일자로 잘라서 붙였지만 대부분의 집에서는 신문지를 잘라 붙이기 일 수였습니다. 1940년대 한국의 여가수는 신문지를 문틈에 발라 추위를 이겨내는 우리의 처지를 “울어라 문풍지”란 노래로 표현하기도합니다.
(노래) 이난영 울어라 문풍지야
이렇듯 신문은 뉴스와 정보 전달에 끝나지 않고 우리들 생활 전반에 녹아있는 생활용품이기도 합니다.
탈북자들이 한국 생활을 시작하면서 제일 많이 찾아 읽는 것은 신문일지도 모릅니다. 정치인들이 부정부패를 소식을 보도하고 인기 연예인의 사생활까지 세상 구석, 구석에서 벌어지는 소식을 자세히 전하는 신문 탈북자 김승철 씨는 그런 신문을 너무 읽다보니 건강을 해치게 됐다고 말합니다.
김승철:
초기에는 남한 정세를 파악한다면서 하루에 신문을 3-4시간씩 봤습니다. 그렇게 보니까 눈이 너무 아픈 겁니다. 머리도 아프고, 눈도 아프고 해서 주변 분들에게 물어보니까 안과를 가라고 해서 갔습니다. 검사를 해보니까 시력이 나쁘다고 해서 신문 때문에 안경을 썼어요. 그때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봤는데 지금은 내가 보고 싶은 것만 골라보죠.
북한에서는 지난 1970년대까지는 집집마다 신문을 볼 수 있을 정도였지만 물자가 부족해진 요즘은 그나마 매일 발행 되는 노동신문마저 중앙당 청사에만 제 날짜 제 시간에 배달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에서는 인터넷의 보급으로 신문의 인기가 예전만큼은 높지 않지만 그래도 신문을 읽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회사원 전현정 씨입니다.
싸운드: 지하철 음향
전현정:
요즘에 서울엔 아침마다 주는 일간지가 있습니다. 지하철에서 구독할 수 있는 공짜 신문을 주기 때문에 그런 것들은 매일 보죠.
서울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매일 배포 되는 무료 신문은 대략 400만부가 된다고 한국도시철도공사는 추정하고 있습니다.
물자가 부족한 북한에서는 예전보다 요즘 더 귀한 대접을 받는 신문이지만 한국에서는 이제 너무 흔해져 다 보고난 신문지를 처리하는 문제로 골치를 앓는 모습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남북의 문화 기행 이번 주 주제는 신문이었습니다. 진행에 이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