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는 북한-31] 다니엘 스나이더(Daniel Sneider)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부소장 "북한 정권의 압제적 속성이 북한의 근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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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기획 <내가 보는 북한>, 오늘 순서에서는 미국 스탠퍼드 대학 아시아태평양연구소(Walter H. Shorenstein Asia-Pacific Research Center)의 대니얼 스나이더(Daniel Sneider) 부소장이 보는 북한의 문제점과 대안에 관해 들어봅니다. 스나이더 부소장은 1970년대 주한미국대사를 지낸 리처드 스나이더 씨의 아들로서 한때 언론인으로 명성을 날린 지한파 인사입니다. 특히 그는 1990년부터 94년까지 미국의 유력지인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의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활약하면서 구소련의 멸망과 공산권의 와해를 직접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인 대니얼 스나이더(Daniel Sneider) 스탠퍼드대학 부설 아시아태평양연구소 부소장 - RFA PHOTO/최병석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인 대니얼 스나이더(Daniel Sneider) 스탠퍼드대학 부설 아시아태평양연구소 부소장 - RFA PHOTO/최병석

스나이더 부소장은 자유아시아방송(RFA)과 한 인터뷰에서 우선 지난 1990년대 초반 언론인으로 구소련의 몰락 과정을 직접 목격한 경험을 상기시키고, 당시 구소련과 동구권 공산주의 나라들이 개방 앞에서 무너진 현실을 똑똑히 체험한 북한이 개방으로 나서긴 거의 불가능할 것이란 견해를 나타냈습니다.

Dan Sneider

: You know, earlier in my life, I was a foreign correspondent, and I worked in the Soviet Union, I was the Christian Science Monitor chief in Moscow...

“지난 1990년부터 1994년까지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Christian Science Monitor)>지의 모스크바 지국장으로 근무했다. 전 구소련의 막바지이던 1990년 모스크바에 도착해 구소련 공산통치의 종식과 와해를 지켜봤고, 공산체제가 무너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나름의 관점을 갖게 됐다. 즉 북한이 설령 왕조적 계승처럼 나름의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근본적인 경제의 성격은 동유럽이나 중국, 베트남 등 명령경제를 가진 나라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점이었다. 이들 가운데 중국이나 베트남처럼 공산당이 권력을 잃지 않고도 시장경제로 전환할 수 있는 나라도 있었지만 다른 나라들은 그러질 못했다. 즉 이들 나라가 시장경제로 이동하면서 공산당의 정치권력도 상실됐고, 바로 이런 현상이 구소련에서 일어났다. 북한의 지도부가 바로 이런 과정을 지켜본 것이다. 북한도 중국식 시장화 과정을 도입해보려고 했지만 결국 매 단계마다 북한은 후퇴했다. 그 이유는 정치적 통제력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스나이더 부소장은 북한은 개방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지적하고, 특히 북한이 성공적인 시장 경제를 도입한 베트남과 중국과 같은 개방의 길을 걸을 수 없는 데는 다른 무엇보다 부강한 남한이 바로 이웃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북한 정권이 남북 분단 이후 지난 수십년간 주민들에게 북한이 남한보다 낫다고 선전해온 상황에서 막상 개방을 통해 북한 주민이 남한의 상황을 파악하게 될 경우 정권의 불안정과 약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는데 이걸 감수할 자세가 돼 있지 않다는 겁니다.


Dan Sneider

: The moment you move towards opening up the economy, moving towards real market reforms, you open yourself up to the influence of South Korea...

“북한이 경제를 개방하고, 진정한 경제 개혁으로 나가는 바로 그 순간 스스로 남한의 영향권에 내맡기는 격이다. 그건 북한 주민들이 분단 이후 남한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으며, 얼마나 자신들이 고통을 당했는지에 관한 진실을 깨닫는 순간이기도 하다. 북한 주민은 오랜 세월 그토록 고통을 받았지만 아무 것도 얻은 게 없는 반면 남한 국민들은 번영을 구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이 깨닫게 될 바로 이런 근본적인 진실을 북한 정권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게 바로 북한 정권이 처한 고민이다. 그건 또 북한이 정통성의 훼손을 감수하지 않고는 개혁에 나설 수 없는 원인이기도 하다. 북한 정권은 주민들에게 북한 사람이기에 더 잘 산다는 식으로 정통성을 선전해왔지만 그것만 강조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예를 들어 북한 주민이 막상 치약을 사려면 시장에 가야하지만 거기선 중국제 치약밖에 살 수 없다. 북한 경제에선 이런 치약조차 공급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북한 정권에겐 거대한 고민인데, 북한 정권은 이런 모순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스나이더 부소장은 이어 오늘날 북한 주민은 과거에 비해 남한을 비롯한 외부세계의 실정에 관해 더 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이 같은 사정은 구소련이 와해되던 시절 구소련 사람들이 느끼던 것과 비슷하다고 설명했습니다.

Dan Sneider

: We know that the North Korean population now has a much better idea of what's going on. I saw this in the Soviet Union...

“북한 주민들 상당수도 이젠 바깥 세계 사정을 훨씬 더 잘 파악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도 안다. 전 이런 현상을 구소련에서 봤다. 당시 러시아 일반 사람들은 아주 영리했다. 그래서 그들은 매일 매일 정부의 선전을 목격하면서도 행간을 읽을 줄 알았다. 당시 구소련의 세계는 조지 오웰이 묘사한 그런 세상이었다. 즉 사랑은 증오요, 평화는 전쟁이며, 검은 게 흰 것인 그런 세상이었다. 그들은 정부가 무슨 선전을 하던 상관없이 아마도 그 반대가 진실일 것이라고 느꼈다. 예를 들어 정부가 텔레비전을 통해 미국의 빈곤상황을 보여주는 선전을 하면 그들은 빈곤한 모습을 보려는 게 아니라 화면 배경에 나오는 미국의 집들과 차들을 보려고 했다. 그러곤 자신들의 삶이 다른 서구인들과 비교해 비참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짐작컨대 북한 주민들도 생각보다는 외부세계와 남한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진실은 조만간 드러날 것이다.”

이처럼 북한 정권이 김정일 치하에서 개혁, 개방에 나설 수 없다면 김정일 이후 차기 지도체제에선 가능할까요? 스나이더 부소장은 그 가능성에 회의적입니다. 김정일 이후 북한의 진로는 후계자의 면면 보다는 북한 체제가 갖는 근본적인 속성 때문이라는 게 스나이더 부소장의 진단입니다. 스나이더 부소장은 한 예로 지난 1994년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 자신도 북한에 뭔가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기대는 지나친 것”이었다고 지적하고, 결국 북한 정권과 체제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가 남아 있는 한 김정일 이후 어떤 지도체제가 들어서도 기대할 게 없다고 말했습니다. 스나이더 부소장은 북한 정권은 주민들에게 기본적인 생필품조차 공급할 수 없고, 반체제 인사 수십만명을 수용소로 보내는 ‘압제 정권’이라는 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Dan Sneider

: We have a pretty good idea, despite the lack of flow of information, we have a pretty good idea that what the nature of this regime is internally...

“비록 정보의 흐름이 부족하긴 해도 우린 북한 정권의 속성이 무언지에 관해 꽤 잘 안다. 즉 북한 정권은 수십만명의 주민을 수용소에 보냈고, 자연재해가 아니라 경제체제의 실패로 아마도 수백만여명의 주민이 굶어죽는 것을 방치한 정권이다. 지금도 북한 정권은 자국민을 계속 고립시키려 하고 있고, 경직된 체제를 고집하며 바깥의 거의 모든 세계를 악의 화신으로 보는 그런 정권이다. 따라서 북한의 문제는 어느 한 개인의 문제이기 보다는 정권의 문제다.”

북한 주민이 이처럼 암울한 정권 아래서 고통받고 신음하고 있지만 북한에는 김정일 정권에 도전할 만한 조직적인 반체제 세력이 없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북한 정권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북한 주민들이 외부세계를 좀 더 많이 알아가는 과정일 것이라고 스나이더 부소장은 설명합니다. 그는 자신이 과거 모스크바 특파원 시절인 90년대 초 구소련 시민들이 영국의 BBC방송이나 자유유럽방송(RFE) 등을 통해 외부세계의 소식을 접했는데 구소련 당국이 처음엔 이런 해외방송을 막다가도 막바지엔 통제 불능에 빠졌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북한도 비슷한 운명에 처할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Dan Sneider

: Even in a police state like North Korea you can't stop this. Look we see there're DVDs circulating, people with celulla phones...

“북한과 같은 경찰국가도 이걸 막을 순 없다. 북한에 DVD도 돌아다니고 있고, 휴대폰을 가진 사람도 있다. 문제는 북한 당국이 이런 기본적 소비품조차 공급할 수 없다는 점인데, 그렇다보니 주민들이 국경을 넘어 중국에 가도록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북한은 거대한 내부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최근 단행한 화폐개혁을 보라. 현실적으로 북한은 더 이상 지금의 경제를 종전과 같은 중앙 통제경제로 되돌릴 수 없게 됐다. 그런 능력을 상실한 것이다. 그래서 북한 당국도 하는 수 없이 시장을 다시 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문제는 일단 원상복구 조치를 취하면 부수적인 현상이 따라오는데 예를 들어 중국산 샴푸를 사용한다든가 남한 텔레비전 드라마가 담긴 DVD를 입수해 몰래 보게 된다. 이 모든 게 북한 당국의 통제를 좀먹는다. 이것 때문에 북한이 당장 내일이라도 붕괴하느냐 하면 그렇진 않다. 그건 모른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북한 정권은 내부로부터 구멍이 생기게 된다. 외부에서 보면 북한 정권이 단단해 보이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텅 비어있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이 더 이상 당국의 말을 믿지 않게 된다.”

스나이더 부소장은 자신의 모스크바 특파원 시절 공산주의의 가치를 믿는 구소련 시민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고 회고하고, “이들은 종전엔 좋은 직장을 구하고 신분 상승을 하려면 소련 공산당에 가입해야 한다고 믿었지만 더 이상 공산주의 이념을 믿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 오늘날 북한에도 “주체사상을 믿는 주민들은 거의 없을 것”이라면서 “바로 이런 점이 북한 정권을 좀 먹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주간기획 <내가 보는 북한> 오늘은 대니얼 스나이더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부소장의 견해를 소개해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