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는 북한-75] 조나던 폴락(Jonathan D. Pollack)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 연구원 "김정일, 비핵화 결단 못 내릴 것"
워싱턴-변창섭 pyonc@rfa.org
2011.07.26
2011.07.26
RFA PHOTO/변창섭
주간기획 <내가 보는 북한> 오늘 순서에서는 미국의 저명한 민간연구기관인 브루킹스 연구소의 조나던 폴락(Jonathan D. Pollack) 선임 연구원이 진단한 북한의 문제점과 대안에 관해 들어봅니다. 폴락 선임연구원은 동북아시아 안보 전문가로 손꼽히고 있고, 지난해까지 미 해군대학의 교수 겸 아시아태평양 학과장을 지냈습니다. 그에 앞서 폴락 선임연구원은 국방 분야의 연구로 이름난 랜드연구소에서 한때 선임 분석관으로 근무하며 한반도 안보 문제를 다뤘습니다. 폴락 선임 연구원은 북한의 핵개발 동기와 현황, 향후 전망을 역사적 관점에서 날카롭게 파헤친 <출구부재 북한(No Exit: North Korea, Nuclear Development, International Security)>이란 저서를 최근 펴내 국제적으로 호평을 받았습니다.
폴락 선임 연구원은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우선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의 큰 골칫거리인 북한의 핵개발 문제와 관련해 “북한이 이미 1950년대부터 구소련의 원조 덕분에 핵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면서 북한이 상당히 오래전부터 핵 야욕을 품어왔음을 시사했습니다.
Dr. Jonathan Pollack: What we do know is from the time that Nikita Khrushchev...
“우리가 아는 바로는 후루시초프가 1950년대 소련의 지도자로 있었을 때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추구하던 ‘평화원전계획’(Atoms for Peace)과 비슷한 계획을 추구하려 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후루시초프는 이 같은 프로그램을 사회주의권 국가들에게도 추진했다. 북한은 아주 초기에 이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그래서 구소련에 훈련 요원을 보냈다. 물론 이 프로그램의 진정한 목적은 평화적인 것이지 핵개발의 길을 열어주려는 게 아니었다. 아무튼 중국과 북한은 이 프로그램의 수혜자였고, 어떤 측면에선 이들의 핵개발을 도왔다. 그 덕에 원자력 인력을 훈련시키고 경험도 쌓고, 관련 기술도 습득했기 때문이다. 당시 김일성은 북한이 핵 기술을 추구하는 게 북한이 진지한 현대국가라는 점을 대외에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판단한다.”
폴락 선임연구원이 언급한 평화원전계획 즉 ‘Atoms for Peace'란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1953년 12월 유엔총회에서 행한 연설의 제목인데요. 원자력의 평화적 목적을 강조한 연설 취지에 따라 미국은 당시 국내는 물론 전 세계의 학교와 병원, 연구소 등에 원자력 정보와 부품 등을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핵무기 기술과 원자력 에너지 기술은 서로 겹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관련국이 마음만 먹으면 평화적 용도의 원자력 에너지를 무기용도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게 폴락 선임연구원의 설명입니다. 폴락 박사는 북한 김일성이 원자력의 이중 용도를 확연히 구분했는지 여부는 확신할 수 없지만, 1970년대 들어서면서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사실이 점차 분명해지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Dr. Pollack: Frankly by the 1970s it became increasingly clear that Kim was trying...
“솔직히 말해 1970년대까지 점점 더 명백해진 사실은 김일성이 궁극적으론 핵무기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시설을 건설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영변 원자로는 구소련의 개입 없이 북한이 스스로 건설한 것이다. 소련도 어느 정도는 북한의 원자로 건설을 파악했을지도 모른다. 영변 지역을 출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련은 원자로 건설에 직접 참여하진 않았다. 영변원자로는 오직 한 가지만 효용이 있었는데 그건 북한이 폐연료봉을 재처리해 무기급 플루토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경수로는 원자력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영변 원자로는 상당한 전기를 생산하는 경수로 목적에는 결코 적합하지 않았다. 영변 원자로에선 전선줄도 뻗어 나오지 않았다. 북한은 1986년 영변 원자로가 완공된 시점에 재처리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이걸 통해 핵연료를 재처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폴락 선임 연구원에 따르면 북한은 1960년대와 1970년대 자체적으로 핵 프로그램을 추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소련에게 원자로를 달라고 여러 차례 지속적으로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구소련의 새 지도자로 등장한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북한에 대해 먼저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 에 가입할 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결국 북한도 마지못해 1985년 12월 이 조약에 서명한 뒤에야 소련은 원자력 협력협정을 체결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구소련은 원자로 건설을 위한 여러 실사 작업만 진행했을 뿐 실제로 원자로를 제공하진 않았습니다.
폴락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1994년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와 제네바 기본합의문을 체결하고도 내심 핵개발 의도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을 것으로 봅니다. 북한은 기본합의문에 따라 핵 활동을 동결했지만 나중에라도 수가 틀리면 언제든 재가동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있었고, 게다가 1990년대 초부터 우라늄 농축에 의한 핵개발을 추진하기 위해 파키스탄으로부터 원심 분리기 기술을 추구해왔다는 겁니다. 결국 북한이 비밀리에 우라늄 농축에 의한 핵기술을 추구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기본합의문은 더는 효용가치가 없는 휴지조각으로 전락했습니다. 일부에선 미국이 기본합의문을 존중했더라면 북한도 핵개발에 나서진 않았을 것이란 주장도 나오지만 폴락 선임연구원은 “그 점에 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북한이 핵무기 능력을 추구하는 걸 막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폴락 선임연구원은 핵개발로 인해 포괄적인 국제 고립을 자초한 북한이 지금처럼 중국과 경제적 유대를 유지하고 이집트 등 일부 나라들과 교역하는 식으로 버텨나갈 순 있겠지만 “정상적인 국가로 기능할 수 있는 능력은 극히 제한돼 있다”고 지적합니다. 근본적으로 핵이 가로막고 있는 한 북한이 국제적인 고립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국가로 변신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까요? 폴락 선임연구원은 “김일성이 사망하기 한 달 전 행한 마지막 연설을 보면 북한이 핵 국가가 될 때까지 기다릴만한 시간이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음을 공개적으로 시인했다”면서 김일성 치하에서 핵을 포기했을 가능성이 김정일 체제보다 더 컸다는 점을 시사했습니다.
Dr. Pollack: I think that what this is so linked to is the character of the North...
“이 문제는 북한 체제와 정권의 특성, 나아가 지도자의 성격과도 아주 긴밀히 연관돼 있다고 본다. 앞서도 말했지만 김일성은 그가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해볼 때 비핵화를 상상해볼 수도 있었고, 또 김일성이 말년에 핵능력의 포기를 궁극적으론 준비했을지도 모른다는 증거도 있다. 물론 김일성으로서도 그런 결정을 내리기란 무척 힘들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김정일은 선친처럼 비핵화 결정을 내릴만한 능력을 가졌다곤 보지 않는다.”
하지만 바로 이 점과 관련해 북한의 차후 지도자는 곰곰이 생각해볼 점이 있다는 게 폴락 선임 연구원의 설명입니다. 즉 과연 핵 자체만으로 앞으로도 북한 정권의 안보와 복리, 장수를 기약할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폴락 선임연구원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지목된 김정은이 이끄는 북한이 과연 핵을 포기하고 새로운 길로 나설지 확신할 수 없지만 북한이 생존하려면 그 길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Dr. Pollack: The question would have to be this: after Kim Jong Il is gone...
“정작 물어야 할 질문은 이거다. 즉 김정일이 사라진 뒤 누가 북한 차기 지도자의 의중이 뭐냐는 점이다. 김정은이 김정일의 후계자로 지목됐지만 우린 그가 진정한 지도자로 등장할지 확실히 모른다. 그가 젊다는 것 외에 실은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김정일 주변엔 측근 참모들도 있고 가족도 있는데 이들이 김정은에 조언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 중 과연 누가 북한이 살기 위해선 결국 핵 포기에 관한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하고, 최소한 핵무기가 없는 미래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 큰 의문이다.”
폴락 선임연구원은 미국은 절대 북한을 핵을 가진 상태에서 국교를 정상화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다른 나라와 공조해 북한의 핵능력을 제한하기 위해 최대로 노력할 것이라는 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북한이 이미 핵실험을 두 번씩이나 단행했고 우라늄 농축에 의한 핵개발까지 추진하는 마당에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 지도부는 핵능력도 원하고 경제도 개발하고 싶어 하지만 이런 두 개의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는 건 현실적이지 못하다”면서 “북한이 경제 개발을 위해선 외부세계의 상당한 투자가 필요하지만 핵을 가진 상황에선 힘들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폴락 선임연구원은 “결국 핵문제를 포함한 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김일성, 김정일 일가가 통치해온 방법에 의존하지 않는 다른 형태의 체제와 지도자가 들어서는 길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주간기획 <내가 보는 북한> 오늘 순서에서는 조너던 폴락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의 견해를 들려드렸습니다.
폴락 선임 연구원은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우선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의 큰 골칫거리인 북한의 핵개발 문제와 관련해 “북한이 이미 1950년대부터 구소련의 원조 덕분에 핵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면서 북한이 상당히 오래전부터 핵 야욕을 품어왔음을 시사했습니다.
Dr. Jonathan Pollack: What we do know is from the time that Nikita Khrushchev...
“우리가 아는 바로는 후루시초프가 1950년대 소련의 지도자로 있었을 때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추구하던 ‘평화원전계획’(Atoms for Peace)과 비슷한 계획을 추구하려 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후루시초프는 이 같은 프로그램을 사회주의권 국가들에게도 추진했다. 북한은 아주 초기에 이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그래서 구소련에 훈련 요원을 보냈다. 물론 이 프로그램의 진정한 목적은 평화적인 것이지 핵개발의 길을 열어주려는 게 아니었다. 아무튼 중국과 북한은 이 프로그램의 수혜자였고, 어떤 측면에선 이들의 핵개발을 도왔다. 그 덕에 원자력 인력을 훈련시키고 경험도 쌓고, 관련 기술도 습득했기 때문이다. 당시 김일성은 북한이 핵 기술을 추구하는 게 북한이 진지한 현대국가라는 점을 대외에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판단한다.”
폴락 선임연구원이 언급한 평화원전계획 즉 ‘Atoms for Peace'란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1953년 12월 유엔총회에서 행한 연설의 제목인데요. 원자력의 평화적 목적을 강조한 연설 취지에 따라 미국은 당시 국내는 물론 전 세계의 학교와 병원, 연구소 등에 원자력 정보와 부품 등을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핵무기 기술과 원자력 에너지 기술은 서로 겹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관련국이 마음만 먹으면 평화적 용도의 원자력 에너지를 무기용도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게 폴락 선임연구원의 설명입니다. 폴락 박사는 북한 김일성이 원자력의 이중 용도를 확연히 구분했는지 여부는 확신할 수 없지만, 1970년대 들어서면서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사실이 점차 분명해지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Dr. Pollack: Frankly by the 1970s it became increasingly clear that Kim was trying...
“솔직히 말해 1970년대까지 점점 더 명백해진 사실은 김일성이 궁극적으론 핵무기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시설을 건설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영변 원자로는 구소련의 개입 없이 북한이 스스로 건설한 것이다. 소련도 어느 정도는 북한의 원자로 건설을 파악했을지도 모른다. 영변 지역을 출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련은 원자로 건설에 직접 참여하진 않았다. 영변원자로는 오직 한 가지만 효용이 있었는데 그건 북한이 폐연료봉을 재처리해 무기급 플루토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경수로는 원자력 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영변 원자로는 상당한 전기를 생산하는 경수로 목적에는 결코 적합하지 않았다. 영변 원자로에선 전선줄도 뻗어 나오지 않았다. 북한은 1986년 영변 원자로가 완공된 시점에 재처리 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이걸 통해 핵연료를 재처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폴락 선임 연구원에 따르면 북한은 1960년대와 1970년대 자체적으로 핵 프로그램을 추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소련에게 원자로를 달라고 여러 차례 지속적으로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구소련의 새 지도자로 등장한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북한에 대해 먼저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 에 가입할 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결국 북한도 마지못해 1985년 12월 이 조약에 서명한 뒤에야 소련은 원자력 협력협정을 체결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구소련은 원자로 건설을 위한 여러 실사 작업만 진행했을 뿐 실제로 원자로를 제공하진 않았습니다.
폴락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1994년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와 제네바 기본합의문을 체결하고도 내심 핵개발 의도는 절대 포기하지 않았을 것으로 봅니다. 북한은 기본합의문에 따라 핵 활동을 동결했지만 나중에라도 수가 틀리면 언제든 재가동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있었고, 게다가 1990년대 초부터 우라늄 농축에 의한 핵개발을 추진하기 위해 파키스탄으로부터 원심 분리기 기술을 추구해왔다는 겁니다. 결국 북한이 비밀리에 우라늄 농축에 의한 핵기술을 추구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기본합의문은 더는 효용가치가 없는 휴지조각으로 전락했습니다. 일부에선 미국이 기본합의문을 존중했더라면 북한도 핵개발에 나서진 않았을 것이란 주장도 나오지만 폴락 선임연구원은 “그 점에 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북한이 핵무기 능력을 추구하는 걸 막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폴락 선임연구원은 핵개발로 인해 포괄적인 국제 고립을 자초한 북한이 지금처럼 중국과 경제적 유대를 유지하고 이집트 등 일부 나라들과 교역하는 식으로 버텨나갈 순 있겠지만 “정상적인 국가로 기능할 수 있는 능력은 극히 제한돼 있다”고 지적합니다. 근본적으로 핵이 가로막고 있는 한 북한이 국제적인 고립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국가로 변신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까요? 폴락 선임연구원은 “김일성이 사망하기 한 달 전 행한 마지막 연설을 보면 북한이 핵 국가가 될 때까지 기다릴만한 시간이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음을 공개적으로 시인했다”면서 김일성 치하에서 핵을 포기했을 가능성이 김정일 체제보다 더 컸다는 점을 시사했습니다.
Dr. Pollack: I think that what this is so linked to is the character of the North...
“이 문제는 북한 체제와 정권의 특성, 나아가 지도자의 성격과도 아주 긴밀히 연관돼 있다고 본다. 앞서도 말했지만 김일성은 그가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해볼 때 비핵화를 상상해볼 수도 있었고, 또 김일성이 말년에 핵능력의 포기를 궁극적으론 준비했을지도 모른다는 증거도 있다. 물론 김일성으로서도 그런 결정을 내리기란 무척 힘들었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김정일은 선친처럼 비핵화 결정을 내릴만한 능력을 가졌다곤 보지 않는다.”
하지만 바로 이 점과 관련해 북한의 차후 지도자는 곰곰이 생각해볼 점이 있다는 게 폴락 선임 연구원의 설명입니다. 즉 과연 핵 자체만으로 앞으로도 북한 정권의 안보와 복리, 장수를 기약할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폴락 선임연구원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지목된 김정은이 이끄는 북한이 과연 핵을 포기하고 새로운 길로 나설지 확신할 수 없지만 북한이 생존하려면 그 길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Dr. Pollack: The question would have to be this: after Kim Jong Il is gone...
“정작 물어야 할 질문은 이거다. 즉 김정일이 사라진 뒤 누가 북한 차기 지도자의 의중이 뭐냐는 점이다. 김정은이 김정일의 후계자로 지목됐지만 우린 그가 진정한 지도자로 등장할지 확실히 모른다. 그가 젊다는 것 외에 실은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김정일 주변엔 측근 참모들도 있고 가족도 있는데 이들이 김정은에 조언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들 중 과연 누가 북한이 살기 위해선 결국 핵 포기에 관한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하고, 최소한 핵무기가 없는 미래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 큰 의문이다.”
폴락 선임연구원은 미국은 절대 북한을 핵을 가진 상태에서 국교를 정상화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다른 나라와 공조해 북한의 핵능력을 제한하기 위해 최대로 노력할 것이라는 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북한이 이미 핵실험을 두 번씩이나 단행했고 우라늄 농축에 의한 핵개발까지 추진하는 마당에 핵을 포기할 가능성이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북한 지도부는 핵능력도 원하고 경제도 개발하고 싶어 하지만 이런 두 개의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는 건 현실적이지 못하다”면서 “북한이 경제 개발을 위해선 외부세계의 상당한 투자가 필요하지만 핵을 가진 상황에선 힘들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폴락 선임연구원은 “결국 핵문제를 포함한 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김일성, 김정일 일가가 통치해온 방법에 의존하지 않는 다른 형태의 체제와 지도자가 들어서는 길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주간기획 <내가 보는 북한> 오늘 순서에서는 조너던 폴락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의 견해를 들려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