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는 북한-78] 이성윤 플레처 국제대학원(The Fletcher School) 교수② "남한과의 체제경쟁에 패한 북한 오래 못가"

워싱턴-변창섭 pyonc@rfa.org
2011.08.16
주간기획 <내가 보는 북한> 오늘 순서에서도 계속해서 미국 터프츠 대학 부설 플레처 국제대학원(The Fletcher School)의 한반도 전문가인 이성윤 교수로부터 북한의 문제점과 대안에 관해 들어봅니다. 지난 시간에는 북한의 핵문제와 관련해 김정일 혹은 그의 후계자로 지목된 김정은 체제 아래에선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전무하며, 오로지 새로운 민주정권이 들어설 때만 핵을 포기를 할 수 있을 것이란 이성윤 교수의 견해를 소개해드렸습니다. 오늘은 만성적인 경제난에 정권 이양에 따른 체제 불안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남한과 국제사회를 상대로 도발행위를 그치지 않고 있는 의도와 배경은 뭔지, 또 이런 북한의 행동을 자제시킬 수 있는 방안에 관해 이성윤 교수의 진단을 소개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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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터프츠(Tufts) 대학 부설 플레처 국제대학원(The Fletcher School)의 한반도 전문가 이성윤 교수.
사진제공-이성윤 교수
이성윤 교수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2006년을 제외하곤 2002년 이후 해마다 군사적 도발행위를 벌여왔습니다. 지난해에도 북한은 4월엔 남한 천안함을 침몰시킨 데 이어 11월엔 남한 연평도에 대한 포격 도발을 감행해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았습니다. 이성윤 교수는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이 같은 도발행동의 원인을 기본적으로 60여년 넘게 지속돼온 남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파악합니다.

이성윤 교수: 북한 정권입장에서 보면 요즘 한국에 탈북자가 2만 명을 훨씬 넘었는데 이런 추세를 보면 한국이란 체제가 바로 옆에 있다는 게 북한에 엄청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북한에겐 극복하기 불가능한 장애물이라고 본다. 핵 도발과 군사도발 등 북한이 여러 수단으로 김일성 사후, 소련 몰락 후에도 정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 50년 뒤 어떻게 한국과 경쟁할 수 있겠나? 북한정권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선 자국민들을 계속 가둬놔야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북한사람들은 엄청난 위험을 무릎 쓰고 탈북을 시도하고 있지 않는가?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앞으로 10년, 20년, 30년, 50년 후에도 북한 정권이 계속 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1948년 남북한에 각각 독자정권이 들어선 뒤 한반도에 두 개의 상반된 체제가 존립해왔지만 체제경쟁에서 패한 북한이 이 같은 도발적 행동을 통해 계속 존립할 수는 없다는 게 이성윤 교수의 진단입니다.

이성윤 교수: 지금 북한 주민들 실상을 보면 이게 얼마나 비극인가. 한민족 차원에서 한국은 이렇게 잘 먹고 잘 사는 데 북한엔 아직도 굶주리는 사람이 많고 기아로 인해 2백만~250만명, 전체 인구의 약 10%가 굶어죽었다는 건 그것도 산업화를 이루고 문맹률을 깨우친 나라에서 엄청난 기아가 발생했다는 건 전례가 없다. 이건 정권이 체제를 유지하고 김일성 사후에 그에 대한 신격화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무기 사들이고 그러면서 북한 주민들이 굶어죽게 내버려둔 경우다. 북한이라는 체제가 주체와 같은 구호는 많이 외쳐대지만 자체적으로 경쟁력이 없지 않는가? 특히 경제적 측면에선 이미 경제는 몰락했다고 봐야 한다. 북한이 외부원조와 핵 공갈과 군사적 도발을 일삼는 한편 평화협정을 체결하자는 식으로 군사도발과 평화공세를 함께 사용하면서 계속 외부원조를 받아오고 그런 식으로 김정일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이건 지속될 수 있는 정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성윤 교수의 지적대로 북한은 이미 체제 경쟁에서 남한에 패했고, 이 점은 국제사회의 일치된 견해입니다. 단적인 예로 남북한 경제력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북한은 1960년대까지 남한에 비해 다소 경제적 우위를 누렸지만 1970년대 들어 그 격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지금은 추격이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남한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2009년을 기준으로 남한의 명목 국민총소득은 8천372억 달러로 북한의 224억 달러보다 무려 37배나 많았습니다. 또 1인당 국민소득은 남한이 1만7천175달러인 데 반해 북한은 고작 960달러입니다. 무역 총액도 남한은 6천866억 달러에 달했지만 북한은 고작 34억 달러여서 그 격차만 해도 무려 201배에 달합니다.

남한과의 엄청난 경제적 격차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북한의 위정자들은 2000년대 들어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일부 경제개혁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최고 지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개혁, 개방의 결실을 만끽하고 있던 중국을 지난 2002년 봄 방문한 뒤 북한은 그해 7월1일 제품 가격을 현실화하고 시장 기능을 도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경제개선관리조치’를 내놓는 한편 신의주 특구를 발표하는 등 경제 개혁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장화의 핵심인 가격 자유화나 토지의 사유화가 이뤄지지 않았고, 이 조치가 나온 뒤 물가가 치솟고 빈부 격차가 확대된 데다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더욱 심화시켰다는 점에서 실패작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즉 당시 조치는 개혁의 시늉을 냈을 뿐 진정한 개혁이 아니다보니 오히려 부작용만 일으켰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진정한 개혁, 개방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성윤 교수: 지난 60년 동안 김일성-김정일 체제, 이 신격화된 체제가 허위라는 게 들통이 날 것이다. 북한에 더 많은 외국인이 들어오고, 더 많은 북한 주민이 밖으로 나가고 한국과도 더 많은 물적, 인적 교류가 있으면 외부 세상에 관해 더 많은 정보가 더 많이 들어올 수밖에 없다. 북한 당국이 아무리 차단하려 노력해도 정보를 다 막을 순 없다. 특히 요즘 같은 세상에는 그렇다. 북한으로선 자국민을 이 틀에 박아 놓고 못 나가게 하고 한국인과의 접촉을 최소한으로 줄이려고 여태껏 노력을 해왔다. 이게 북한 입장에서 보면 하나의 고민이다. 바깥세상에 관해 더 많이 알게 된다는 건 북한이 ‘지상낙원’의 세계가 얼마나 실패했고, 얼마나 못살고 얼마나 억압적인 사회인지를 북한인들도 서서히 알게 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북한주민들이 외부 세상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다는 건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이성윤 교수는 또 북한을 종종 개혁, 개방에 성공한 중국과 베트남에 견주기도 하지만 두 나라는 북한과 근본적으로 상황이 다르다고 설명합니다. 무엇보다 두 나라엔 개혁, 개방의 의지를 가진 지도자가 있었던 반면 북한은 그렇지 못하다는 겁니다.

이성윤 교수: 중국은 모택동이라는 수장이 정치적인 무대를 떠난 뒤에 경제 개혁, 개방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80년대 당시 본토의 중국인들은 대만에 가서 살겠다는 이런 기대나 욕심이 없었다. 반면에 지금 북한에 사는 동포들은 한국으로 오겠다는 상황이다. 북한 이웃에는 한국이란 훨씬 더 성공한 체제가 존재한다. 베트남을 봐도 1980년대 중반에 서서히 도이모이 개혁을 하지 않았나? 그때는 사이공 정권이 붕괴한지 10년 이후다. 그러니까 남북의 체제경쟁은 중국의 80년대의 경제개혁과 개방, 또는 베트남의 80년대 중반의 개혁개방하고는 아주 근본적으로 다른 상황이다. 그 때문에 김정일 정권은 진정한 개혁, 개방을 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문제는 현재의 김정일 체제 아래에서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는 개혁, 개방이 과연 그의 후계자인 김정은 체제에선 가능하겠느냐 하는 점입니다. 이성윤 교수는 그 가능성을 낮게 봅니다. 김정은이 과감한 개혁, 개방으로 진로를 정한다면 부친 김정일의 반개혁, 개방 정책이 실패했음을 시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성윤 교수: 구소련이나 중국을 보면 독재자가 전체주의 틀 내에서 엄청난 권력을 휘둘렀다. 하지만 독재자가 사망한 이후엔 구소련도 좀 더 개혁, 개방 쪽으로 움직였고, 중국도 움직였다. 그걸 볼 때 김정은 체제 아래에서도 근본적인 변화는 없으리라 본다. 이유는 지금까지 아버지와 할아버지와 해오던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간다면 김일성, 김정일 식 통치가 잘못됐다는 걸 시인하는 셈이다. 그걸 시인하고 나면 김씨 왕조에 대한 정통성이 그 순간 깨질 수밖에 없다. 나라를 열고 외국회사와 합작하고 유치하고 자유롭게 교류하는 개방, 개혁은 김씨 왕조에 대한 사형선고다. 김씨 왕조가 주민을 통제하고 정보를 차단하는 능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김정일도 아버지처럼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김정일 체제 아래서는 물론이고 향후 김정은 체제가 들어서도 북한에 근본적인 변화가 찾아올 가능성이 희박하다면 현실적인 대안은 없을까요? 이성윤 교수는 북한을 ‘세계 유일의 공산왕조’이자 ‘가장 조직적인 인권침해국’이라고 규정하고, 이런 나라를 변화시키려면 결국 북한 정권이 가장 취약하다고 느끼는 분야를 집중 공략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한 예로 이 교수는 김정일 정권이 지지층인 엘리트층을 만족시키기 위해 위조지폐를 만들거나 미사일 등을 팔아 외화를 확보하려는 노력을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는 인권 문제도 지속적으로 제기할 경우 북한도 결국 커다란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게 이성윤 교수의 지적입니다. 이 교수는 이어 설령 김정은이 부친에게서 정권을 물려받는다 해도 바로 이웃에 성공적인 자본주의국 남한과 체제 경쟁을 해야 하는 한반도 역학 구조상 권력을 오래 유지할 가능성은 없다고 관측했습니다.

주간기획 <내가 보는 북한> 오늘 순서에서는 플레처 국제대학원 이성윤 교수의 견해를 소개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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