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노무현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 기간중 북한 집단체조인 아리랑 공연을 참관하는 문제를 두고 남한에서는 아직 찬반이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주민들은 아리랑 공연 자체를 자랑스럽게 여길지는 몰라도 남한을 비롯한 외부 세계에서는 일인 독재를 위한 체제선전용이란 점과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권유린이 지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부터 군인까지 10만 여명이 동원돼 1시간 20분간 펼쳐지는 북한 집단체조 아리랑의 최고 절정은 ‘수령님의 유훈은 조국 통일’이라는 배경대의 글이 바뀌고 장백산 줄기 따라 라는 노래로 마무리됩니다.
남한 대통령이 관람하는 이번 공연에는 기존에 있던 인민군의 위력을 과시하는 장면을 빼고 대신 태권도 시범 장면을 추가했습니다. 소제목도 ‘인민의 군대’에서 아리랑 민족의 기상‘으로 변경했습니다. 하지만 아리랑 공연의 기본 줄기와 내용은 그대로입니다. 다시 말해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독재체제 선전을 위한 공연물이란 겁니다.
남한에서는 일반인들은 물론 북한 전문가들도 노무현 대통령의 아리랑 공연 참관을 두고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팽팽히 맞서고 있습니다. 세종연구소 남북한 관계 연구실장 정성장 위원과 고려대학교 북한학과 유호열 교수의 말을 연속으로 들어봅니다.
정성장: 우리가 북한의 실체를 알기 위해서는 북한인민들이 보는 것을 남한주민들도 볼 필요가 있고 특히 남한의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도 가서 봐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유호열: 체제선전이라고 하는 것과 인권무시나 유린 이런 것에 대한 방조의 의미도 함께 보여질 수가 있는 겁니다. 일반인들이 가서 공연료를 내고 본다는 개념과는 또 달리 봐야하지 않겠는가 하는 입장입니다.
지난 2005년 직접 아리랑 공연을 참관한 정성장 위원은 아리랑 공연은 북한 내부의 체제결속을 위해 만들어졌다면서 북한당국이 남한 대통령에게 공연 참관을 요청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정성장: 아리랑 공연은 북한이 보일 수 있는 집단공연의 최고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고요. 그래서 북한 사람들이 이 작품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걸 통해서 내부적으로 체제결속을 다지는 측면이 있고 대외적으로는 또 외화벌이로 활용이 되죠. 남한에서 손님이 올라갈 때 이런 정도 규모의 공연을 할 수 있는 것은 북한 밖에는 없다 나름대로 북한체제가 가지고 있는 북한만이 해낼 수 있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어떤 의도, 경제적인 열악함 등에서 오는 좌절감을 이런 공연을 통해 만회하려는 욕구가 있다고 봐야겠죠.
대통령의 공연 참관을 반대하는 주장을 펼친 고려대학교 북한학과 유호열 교수도 지난 8월 초 아리랑 공연을 관람했습니다. 유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의 아리랑 공연 관람 자체를 반대하지만 이미 결정한 마당이니 노 대통령이 공연을 본 뒤 그 감상을 정확하게 북한의 지도자에게 전달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유호열: 그것이 보여주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이 가능한 지구상에서 유일한 체제가 북한이라는 현실을 다시 한 번 깨달게 되는 순간이 되니까 대통령으로서는 사실 심각한 반응을 보여야 타당한 것이죠. 자유민주주의 대통령으로서는 말입니다. 공연을 보고 나서도 결국 대통령으로서는 매우 특이한 북한체제의 속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그런 북한체제의 모습이다. 이런 반응을 솔직히 표할 수 있어야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자격이 있다고 봅니다.
이렇게 남한 대통령의 북한의 집단체조 아리랑 공연 참관이 남한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그 집단체조가 가지고 있는 성격 때문입니다. 공연 내용이 북한체제의 생성 과정과 정당성을 보여주는 내용인데 남한의 대통령이 가서 이런 부분을 오히려 정당화 해주는 것이 아니냐 하는 우려가 첫 번째고 또 하나는 혹독한 훈련을 통해서 이뤄지는 집단체조를 그것도 하루 행사가 아니라 몇 개월씩 공연하기 때문에 아동의 인권이 무시된 행사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공연에 참관하는 것 자체가 인권유린에 대한 용인 또는 무관심의 표출이란 겁니다.
북한에서는 평양시 중구역에 살았지만 지난 2003년 남한에 입국한 오영희씨는 전 조선체육지도위원회 산하 집단체조창작단에서 체조 안무를 맡았습니다. 탈북전까지 북한의 집단체조 안무가로 3차례 연습에 관여한 오씨는 북한의 체제 하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인권유린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 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말합니다.
오영희: 어린 아이들은 단지 국가명예를 위해 우리가 희생한다고 생각하고 하는 겁니다. 북한은 지금 핵문제로 경제적으로 다 곤란하니까... 화장실도 그 나라 자체가 돈 많고 하면 화장실도 대한민국처럼 많이 짓고 했으면 이런 문제까지 안 나왔을 겁니다. 설비가 잘 갖춰진 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쳤으면 이런 말이 안 나왔을텐데...
평양에 살다가 탈북한 또 다른 탈북여성 김영은씨는 북한에 살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남한에 온 뒤 생각을 하게 됐다면서 매년 백만 톤 이상 식량부족 사태를 겪고 있는 북한에서 대규모 집단체조가 공연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김영은: 북한 다 깨지고 부서지고 했지만 사람들의 의지 어쨌든 그런 속에서도 저런 무용이 나오고 집단체조를 한다는 것이 어찌보면 참 무섭다는 생각도 들어요.
북한 무용수 출신인 탈북여성 김영순씨는 북한주민들이 생각하는 아리랑은 남한 사람들이 보는 아리랑과 분명히 달랐습니다.
김영순: 예술작품이기도 하지만 예술작품을 통해서 당의 선전을 해야 하는 것이 북한 예술인들의 임무거든요. 북한 예술인들이 순수예술 속에서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정말 하나의 로봇처럼 움직이는 것이 저들의 독재하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으로 알고 있겠죠. 자유민주주의 세계에서는요.
이렇게 지난 2002년과 2005년 공연이 된 아리랑 집단체조 공연에는 평양시 10만 명 이상에 달하는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생, 고등학생과 대학생 들을 대거 동원됐으며 북한 정권의 중요한 외화벌이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올해 아리랑 공연 관람료는 50-300유로이며 6일간 평양체류 기준으로 1인당 1,270유로 미화로는 1,700 달러 정도입니다. 그리고 지난 2005년에 있었던 아리랑 공연을 본 남한 사람은 7,300여명으로 1인당 관광비용은 항공기를 포함해 1박2일에 1,100달러, 2박3일에 1,500달러씩 지불됐습니다.
아리랑 공연으로 북한이 벌어들인 외화는 상당할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정권유지를 위해 또는 외화벌이를 위해 유치원 어린이들까지 동원해 공연을 벌여야만 하는가를 생각하면 이렇게 돈을 버는 북한당국의 처지가 처량하기까지 하다고 서울에 간 탈북자들은 개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