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이진서 leej@rfa.org
미국 정부로부터 최초로 난민지위를 인정받아 미국에 정착한 탈북자 신요셉씨는 현재 뉴욕에서 정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힘차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요셉씨는 바쁜 미국 정착생활 중에도 틈틈이 탈북과 3번에 걸친 강제북송 그로인한 북한 감옥에서의 참담했던 순간들을 “사선을 넘어” 라는 한권의 책으로 펴내 미동포 사회에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진서의 “아하 그렇군요” 이 시간에는 뉴욕에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신요셉씨를 만나 미국정착 1년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미국 최대의 도시로 인구 800만이 살고 있는 뉴욕, 워싱턴이 미국의 행정수도라면 뉴욕은 금융과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세계적인 관광도시이기도합니다. 이러한 뉴욕에 살고 있는 가난한 예술가들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든 자신들의 무대로 바꿔버리는 자유와 열정을 가진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기도 합니다.
대략 20만명의 한인동포가 살고 있는 뉴욕은 청과물과 음식점 또는 잡화상을 운영하면서 24시간 365일 쉬는 날 없이 일하는 부지런하고 억척스러운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합니다.
뉴욕에서 한인동포 밀집지역인 플러싱의 한 교회에서 탈북자 신요셉씨는 북한의 인권침해 실상을 알리기 위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신요셉: 제가 쓴 이 책이 동포여러분에게 읽혀져서 북한의 실상을 조금이라도 더 알게 하고 그로말미암아 누구나 자유롭게 살아가는 나라가 속히 올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뉴욕에는 1년 전부터 미국 정부로부터 ’비정치적 망명‘ 승인을 받아 4명의 탈북자가 살고 있습니다. 찬미, 데보라, 한나, 그리고 신요셉씨가 주인공입니다. 그중 ‘사선을 넘어’란 탈북 수기집을 쓴 신요셉씨는 함경북도 출신으로 올해 32살입니다.

미국에 도착하기 전까지 모두 3차례 강제북송을 당했고 고난의 행군 시절 마을에서 일어났던 공개처형 사건, 함경북도 온성군 종성구에 위치한 도 보위부 특수 취급소에서 그가 받았던 수많은 고문들은 북한의 실상을 아프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기자는 신요셉씨와의 짧은 만남을 통해 그가 지난 1년간 미국에 뿌리를 내리고 살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신요셉: 먹고 살기는 괜찮습니다. 대형마켓에서 근무하면서 한 달에 거의 900달러를 제합니다. 한주에 700달러를 받는데 주마다 거의 200달러를 세금을 공제를 합니다. 그러니 4주면 한 900달러를 세금으로 내는 거죠. 남는 돈으로 집세내고 먹는 것 먹고 단지 돈을 모으지 못하는 겁니다.
(기자):한국에서는 탈북자 정착금이 나오고 하는데 미국 난민인정 받고 정부에서 지원해준 것 좀 소개를 해주세요.
신요셉: 우선 첫째 한국으로 가면 정착금이나 임대 아파트나 이런 것을 주는데 한국은 잡아놓은 물고기를 주는 그런 식이라면 미국은 그것이 아닙니다.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준다는 겁니다. 일단 정착금 없습니다. 보조금은 좀 있습니다. 푸드 스탬프라고 하는 음식카드, 의료보험 카드, 프로그램이 끝날 때까지 살 수 있는 아파트 이것을 제공해줍니다. 정부는 IRC(International Rescue Committee) 가서 영어 공부도 하고 가도 되고 안가도 되지만 가는 것도 본인의 노력이고, 이러니까
(기자):본인이 설명하신 것이 처음에는 돈도 안주고 아파트도 안준다고 했다가 지원이 된다고 해서 좀 혼란스러운데요. 정확히 말씀을 해주셔야겠습니다.
신요셉: 아파트 나온 다는 것이 프로그램이 6개월이면 6개월 끝나는 기간까지 그동안 정부에서 아파트비를 대줍니다. 그러면 그 아파트에서 6개월 동안은 거기에 사는 겁니다. 그런데 6개월이 끝나면 본인이 열심히 일해서 돈을 내던 나가든 본인에게 달려있죠. 그리고 보조금 즉, 음식 카드나 적당 금액의 보조금으로 살다가 6개월 지나면 그것도 끊어지고
신요셉씨가 이번에 자신이 다니는 겟세마네 교회 이지용 목사님의 도움으로 탈북 수기집을 5천부 출판했습니다. 자신이 푼푼히 저축한 돈에 교회의 지원을 받은겁니다. 이지용 목사는 탈북자 신요셉씨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이지용: 신요셉 형제는 성실하고 맡은바 책임을 다하는...그리고 전혀 남에게 폐를 끼치거나 하지 않는 그런 신실하신 형제분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텍스(세금)을 잘냅니다.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고 있고요. 신앙과 성실함, 정직함 그것이 계속 된다면 큰일을 할 것 같습니다.
미국 땅에서도 신요셉씨는 일요일 마다 교회를 다니며 사람들과 교제도 하고 필요한 정보를 얻기도합니다. 올해 74살로 같은 교회 다니는 박영인 할머니는 남한사람 북한 사람이 아니라 미국에 살고 있는 같은 이민자로 신요셉씨를 대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박영인: 같은 동족끼리 보니까 반가운 마음도 있는데 ...같은 동족끼리 감싸야죠, 그래서 뵈면 반갑기도 하고 저분이 과연 정착을 하고 우리처럼 터놓고 살 수 있을까 그 좁은 세계에 와서 살다가 여기 와서 살면서 적응을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됩니다. 그러나 동족이니까 도와주고 싶죠.
신요셉씨는 자신이 미국에 난민으로 처음 입국한 북한사람이고 다음에 들어오는 북한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모범적인 생활을 하야한다고 기자에게 말했지만 이는 죽음의 고통을 견디며 자유를 맛본 사람의 새로운 인생을 위한 비장한 각오처럼 들렸습니다.
신요셉: 지금도 저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땅에 와서 산다는 것이 가끔씩은 실감이 나질 않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새나라 새 땅에서 새롭게 주워진 삶에 대해서 최선을 다할 것이고 피와 땀을 받쳐 열심히 노력해서 앞으로 저희와 같은 탈북자들 그리고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서 제가 노력하겠다는 것을 여러분들 앞에 말씀드립니다.
탈북자 신요셉씨는 현재 뉴욕에서 열심히 일하고 스스로 생활을 개척해 가며 일요일에는 이렇게 50여명 참석하는 자그마한 교회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