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개와 고양이’, 북에서 태어났으면 어쩔 뻔했니?

이시영-탈북민 xallsl@rfa.org
2024.09.30
[여성시대] ‘개와 고양이’, 북에서 태어났으면 어쩔 뻔했니? 주인과 함께 산책하는 반려견.
/연합뉴스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이시영입니다. 제가 태어나서 자란 북한에서 늘 듣던 이야기가 생각이 납니다. 사람 중심 사회주의 지상낙원에서 살면서 혁명의 낙오자로 살 것이냐 아니면 붉은기 아래 뭉쳐 철석같은 우리 사회를 지킬 것이냐.

 

나는 당연히 세상에서 제일 좋은 지상낙원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세상 밖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전해 들을 수가 없었지요. 가끔 신문에서 텔레비전에서 썩고 병든 자본주의에서는 돈 없는 사람은 병원문 앞에 가보지도 못하고 죽으며 돈 많은 사람은 개를 안고 다니면서 개에게 옷도 입히고 신발도 신겨준다고 비난했지요.

 

어린시절 저도 사람보다 어떻게 개가 중요하냐는 생각을 한적이 여러번 있답니다. 하지만 목숨을 걸고 대한민국에서 자유를 누리면서 탈북민들은 일상에서 혹은 집에 강아지와 고양이를 너무 많이 키우며 인생의 동반자로 한가족으로 열심히 챙기기도 한답니다.

 

대한민국에 정착하여 제일 처음 슈퍼에 갔을 때 이야기입니다. 북한식으로 말하면 동네에 있는 식료품 상점이라고 표현해야겠네요. 먹을 것이 부족한 북한에서는 맛있거나 가성비가 좋은 식료품은 맞다 들렸을 때 많이 장만해 두어야 살림살이 잘하는 주부였는데요.

 

그런 것에 익숙한 시영이는 먹을 것이 산처럼 쌓여있는 대한민국 슈퍼에 가서 눈이 뒤집혔답니다. 북한에서 정말 맛있게 먹었던 초코파이, 찰떡 파이는 국정원과 하나원을 거치면서 너무 많이 먹다 보니 눈도 안가고요.

 

수백가지 과자 사탕이며 빵이며 이런 세상이 있다는 것을 북한에서는 한번도 상상도 못해본 일이었지요. 엄마랑 저는 대한민국의 슈퍼에서 장을 보는 게 아니고 몇 시간을 구경만 했답니다.

 

그렇게 한참을 돌다 이상한 매장을 발견했는데요. 사탕 과자 봉투의 그림이 고양이와 강아지였습니다. 그리고 정말 작은 크기의 신발도 있는데 아기 신발은 아니고 옷 모양도 참 신기하고 매장마다 품목을 적어둔 것이 있어 제가 확인을 해봤더니 글쎄 “애견용품 판매대”라고 쓰여 있었지요. 드디어 북한에서 들어본 강아지 신발이며 강아지 옷이며 강아지 간식이며 구경한 거죠.

 

솔직하게 말하면 강아지 용품들이 북한 평양에서 판매하는 어린이 사탕과자보다 더 맛있어 보였답니다. 그날 이후 도로에서 혹은 커피숍에서 놀이터에서 심심치 않게 강아지와 고양이를 보게 되었는데요.

 

이곳 대한민국에서는 돈 있는 사람들이 강아지를 키우는 게 아니라 강아지를 정말로 사랑하고 고양이를 사랑하는 일반인들이 집에서 가족처럼 함께 키우더라고요. 강아지가 아프면 병원에도 데리고 가고요. 강아지랑 함께 놀러 갈 수 있는 숙박시설도 있고요.

 

강아지가 놀러 가는 강아지 카페도 있답니다. 알면 알아갈 수록 참 억울한 감정이 많이 들고 고향 생각이 너무 많이 나는 우리랍니다. 북한에서 사람으로 산다는 것은 이곳 대한민국에서 고양이의 삶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날 이후 몇 달 정도 지났을까요. 동생네 집에 갔더니 이쁜 고양이 두 마리가 있었답니다. 저는 동생에게 고양이를 키우면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느냐고? 또 돈도 얼마나 많이 들거냐고 물었더니 동생이 고양이가 얼마나 친구를 잘해주는지 요즘은 외로움을 탈 시간이 없다고 했답니다.

 

고양이들이 저의 눈치를 보고 있는데 동생이 냉장고에서 고양이 통조림을 꺼내 간식으로 챙기더라고요. 북한에서는 밥상에 남은 음식을 고양이에게 주는데 이곳에서는 고양이 사료가 있고 고양이 간식이 있고 고양이들이 씹는 껌도 있답니다.

 

그것도 탈북한 지 1년도 안된 저의 동생이 고양이 두마리를 키울 정도면 부자들만 키운다는 말은 정말 거짓인 거죠. 고양이 배변 모래도 따로 나오는데요. 북한에서 사용하는 모래가 아니라 공장에서 따로 고양이 모래로 배변 활동에 필요하게 만들어져 나오더라구요.

 

고양이도 자유대한민국에서는 이렇게 호화로운 삶을 사는구나! 라는 생각에 저는 나도 모르게 고양이들에게 “너희들이 북한에 태어났으면 어쩔 뻔했냐?”라고 말해버렸답니다. 고양이가 알아듣지도 못했다는 듯이 ‘야옹!’하고 소리를 냈지요.

 

그날 이후 저는 동생네 집을 찾을 때마다 슈퍼에서 고양이 간식을 챙겨서 갔고 동생은 이왕 사 오는 김에 고양이가 좋아하는 간식으로 부탁한다고 전화도 온답니다. 북한에서는 아직도 배고픔에 죽는 어린아이들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고양이도 간식을 가려 먹는다니 이런 이야기를 북한에 사는 친구들이 듣게 된다면 인생이 너무 허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답니다.

 

최근에는 대한민국에서 강아지를 키우다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어서 강아지도 구청에 등록하고요. 강아지 목에는 주인 전화번호가 박힌 목걸이도 걸어준답니다. 강아지도 은목걸이를 걸고 다니는 것이 바로 대한민국이랍니다.

 

더 신기한 것은요. 고양이가 이발도 하고요, 손톱 발톱도 깎아주고요, 고양이가 칫솔질도 한답니다. 주인들이 고양이를 가족처럼 챙기고 돌봐주는 거죠. 북한에서 31년을 살다 온 저는 아직도 습관이 되지 않는 것이 많지만 이곳 대한민국에서는 도로에 신호를 기다리는 차 안에서 강아지가 머리를 내미는 경우도 너무 많고요.

 

또 주인이 출장을 가면 강아지 호텔에서 강아지를 돌봐주는 직업도 있답니다. 개 같은 세상이 아니라 개도 개의 권리가, 고양이도 고양이 권리가 있고 소중하게 보호를 받아야 하는 세상이랍니다.

 

인간의 초보적인 존엄과 권리도 없이 늘 눈치를 보면서 고난을 이어가야 하는 북한 주민들에게 이곳에서 강아지도 자가용을 타고 놀러 다닌다는 이야기를 하자니 마음이 너무 아프답니다.

 

북한에 살 때 저의 마당에 뛰어놀던 강아지들이 생각이 납니다. ‘능 달 아래 개 팔자’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지만, 이곳에서 가끔은 주인이 주는 사료를 먹고 주인이 주는 신발을 신고 주인이 주는 간식을 먹으며 일하지 않고 자가용을 타고 놀러 다니는 강아지들이 부러울 때도 있답니다.

 

자본주의라고 하여 인간이 누리는 호화로움이 당연한 것이 아니고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시간을 쪼개며 일해야 하지만 저는 다시 태어난다해도 인간의 권리가 보장되고 인간의 존엄이 존경받는 이곳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것을 그리고 오늘도 북한에서 고생하실 여러분이 힘내시기를 부탁드리며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자유아시아 방송 이시영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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