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내가 열심히 일하는 이유

이시영-탈북민 xallsl@rfa.org
2024.12.02
[여성시대] 내가 열심히 일하는 이유 서울 동작구 노량진역 인근의 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이용객들이 자리를 잡고 공부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이시영입니다. 오늘은 한겨울이라 하기엔 너무나 포근한 날씨입니다. 아침햇살이 창문을 거쳐 방안으로 들어와 시영이를 깨우고 있습니다. 어쩌다 찾아온 한가한 아침이라 이불속을 벗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시간이 돈이고 일한 것 만큼 수익이 늘어나는 이곳에서 시영이는 늘 바쁜 일상을 살아갑니다.

 

돈에 대한 욕심이 강한 것도 있지만,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도 있습니다. 이곳에 사는 탈북민은 3 4천명정도입니다. 코로나가 시작된 몇년전까지만 해도 탈북민은 점점 늘어날 것이라 믿었고 그 속에 혹시 고향의 삼촌이, 동생이 친구가 속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분단의 아픔은 코로나 이후 더 강하게 우리의 마음을 후벼파고 있습니다. 국경이 전면 차단 되고 통화마저 힘들고 고향에서 들려오는 더 막막한 이야기들은 그곳에 남겨진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고로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바뀝니다.

 

저는 오늘 재택근무중입니다. 청취자님들은 재택근무를 모르시죠? 재택근무는요, 집에서 출근하지 않고 회사 업무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인데요. 코로나 시기 비루스 전파를 막기 위해 회사마다 비대면으로 일하는 것에서 시작이 되었는데 최근에는 다양한 이유로 재택근무를 자주 합니다.

 

북한에서처럼 삽과 괭이를 들고 사회건설장에서 혹은 강연회나 회의에서 볼펜을 쥐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이곳 대한민국에서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 회사원, 의사, 간호사 모두가 컴퓨터 앞에서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24시간 정전을 모르는 이곳에는 인터넷도 빵빵 터져 어느 곳에서도 컴퓨터 하나만 있으면 모든 업무를 처리할 수 있습니다. 노트북도 점점 좋아져 가벼우면서도 속도가 빠른 최신형이 몇 달에 한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재택근무를 하는 날 시영이는 조금 여유로운 기상과 동시에 머리를 반쯤 올리고 부드러운 잠옷을 걸친채 화장실에서 칫솔질에 간단히 세면하고 여러가지 화장품이 줄지어 있는 화장대에서 간단히 기초를 바르고 선크림 살짝 바르고 입술에 영양오일을 발랐습니다.

 

햇살이 비추는 식탁에서 따뜻한 우유 한잔을 마시며 혼잣말로 오늘도 시영이는 탈북하기 참 잘했어라고 칭찬을 했습니다. 혹시 청취자님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어보셨나요? 거울을 보면서 이쁘다 이쁘다 하면 정말 이뻐진다고 합니다. 그말에 꽂혀 시영이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우리 시영이 참 이쁘고 착하네라고 말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답니다.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면 정말 제가 착하고 이쁘게 느껴집니다.

 

변함없이 오늘도 이쁘다는 이야기를 하려 했지만, 편한 후드티 하나에 오리털 조끼를 입고 바지는 핑크색 북한식으로 단복바지를 입고 모자에 안경을 쓴 시영이는 평소와 다른 모습이라 살짝 당황했습니다.

 

준비를 간단히 마친 시영이는 오늘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일하러 갈 계획입니다. 커피와 빵을 판매하는 곳인데 대한민국에는 카페가 수천 수만개가 있습니다. 온 종일 경치좋고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카페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청년들, 추억을 속삭이는 친구들, 혼자 멍떼리고 있는 사람들 다양한 사람이 모인 공간이죠.

 

오늘 시영이는 서울 근교에 있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온 종일 재택근무를 할 계획을 어제 저녁 잠들기 전에 세웠죠. 노트북 가방과 핸드폰을 들고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자가용을 타고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경기도 일산에 있는 한적한 카페로 향했습니다.

 

차에서 흘러나오는 아나운서의 간질간질한 목소리가 아침의 상쾌함을 더해줍니다. 오늘 날씨는 한겨울이라 말하기 어색할 만큼 따뜻하며 현재 교통상황은 강남대로가 많이 막힌다네요. 티비를 켜도 차량에 있는 라디오를 켜도 어디서든 실시간으로 일어나고 있는 대한민국의 이모저모를 사실대로 전해주고 있는 이곳에 제가 숨쉬고 산다는 것에 오늘도 감사합니다.

 

30분쯤 달렸을까요? 카페에 도착했는데 벌써 주차장에는 여러대의 차량이 서있습니다. 북한이 고향인 여인이 자가용을 타고 모닝우유 한잔 마시고 커피향이 은은한 대한민국의 카페에서 일을 한다니 꿈만 같습니다. 참고로 저는 빨간 승용차를 탑니다. 이곳에서도 빨간차는 특별하여 어디를 가든 친구들이 빨간차를 보면 한번 더 쳐다본다고 하네요.

 

주차장에서 바라보았더니 사진에서 본 것 보다 더 이쁜 커피숍은 우아한 한옥 건물에 겨울에도 푸른 소나무가 어울려 웅장하면서도 무게감 있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오늘 모닝커피는 고소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입니다. 이곳에는 커피맛도 다양하여 고소함, 가벼움, 새콤함, 묵직함, 중에 골라야 합니다. 처음 정착했을 때는 커피주문도 어려웠지만 지금은 맛과 향을 따져가며 마시는 여인이 되어있답니다.

 

문득문득 고향에 계시는 청취자님들에게 죄스러운 마음은 사라지지 않지만 소소한 일상의 기쁨에 한껏 취해사는 저는 북한이 고향인 탈북여성입니다. 커피주문을 마치고 조용한 카폐의 구석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진동벨이 울리는 동안 노트북을 책상에 세팅하고 오늘 할 일을 확인 합니다.

 

오늘은 방송출연 원고를 방송국 작가님께 보내야 하고 오늘 라디오를 편집하여 업로드 해야 하고 뉴스 원고를 수정하여 사이트에 올리면 반은 줄어듭니다. 청취자님들은 무슨 이야기인지 하나도 모르시겠죠? 돈을 벌어서 고향에 계신 삼촌에게 보내드리려면 열가지 일이라도 해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하고 또 이곳에서 잘 정착하여야 고향에 계신 청취자님들을 바라보는 이곳의 시선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책임감에 늘 열심히 살아가는 탈북여성들 중 일인입니다.

 

이곳에선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어떤 일도 처리합니다. 한참 일을 마무리 할 쯤에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대표님께서 미국에서 일하시는 기자님이 북한의 대학생활에 대해 궁금하시다고 이메일을 보내신다고 합니다.

 

이메일은 인터넷상에서 편지와 같습니다. 이메일을 열어보니 미국에서 기자님이 보내신 질문지가 있었습니다. 시영이는 대한민국 일산의 어느 한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미국에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추억 가득한 대학건물이 눈앞에 얼른거립니다. 기숙사 건물이 새것이라 자랑했지만, 엘리베이터가 없어 10층까지 하루에도 몇번 걸어다니던 그럼에도 힘든 줄 몰랐던 지난 시간이대학농장에 무, 배추 가을걷이를 갔다 너무 힘들어 울던 시간이, 횃불행진 훈련을 한다고 아지랑이 피어나는 아스팔트에서 땀을 흘리며 뛰어다니던 지난 날이, 오늘의 일상을 더 감사하게 만들어 힘이 됩니다.

 

오늘 계획은 150% 한 것 같습니다. 언젠가 한반도가 하나되어 북한의 친구들도 삽과 괭이가 아닌 노트북을 들고 일하는 날이 그래서 미국이든 일본이든 서울이든 편지를 쓰며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날이 오리라 믿으며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시영이었습니다.

 

에디터 김진국, 웹편집 김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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