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원더우먼

김태희-탈북자
2021-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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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원더우먼 사진은 서울 명동 거리의 화장품 가게 모습.(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오늘은 치열하게 살아가는 탈북민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오늘 소개할 여성은 얼마 전 화장품가게를 내오고 태리 킴이라는 이름으로 현란한 간판도 내걸었는데요. 남쪽 강원도 춘천에 사는 김태리 씨는 함경도에서 탈북했는데 북한의 미공급 전까지만도 오빠, 언니들의 사랑 속에서 행복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가끔씩 북한에서의 생활을 회상하곤 한다는데요.

저하고는 이름도 비슷해서 많은 분들이 자매냐고 가끔 묻기도 해서 농담으로는 그렇다고 하지만 김태리 씨는 강원도 춘천에서 봉사활동과 탈북민들을 챙기는 일도 열심히 하면서 아이 셋을 잘 키우고 있는 억척스러운 원더우먼 즉 여장부랍니다.

[녹취] 민주평통 홍보위원장으로 임원으로 움직였지… 나도 살아야 되고 또 나와 같이 더불어 어려운 사람들도 돕고 싶었고, 함께 성장하고 함께 꿈꾸는 그런 회사…

북한에서는 원더우먼이라는 말이 생소하지요? 원더우먼이란 어떤 역경 속에서도 무슨 일이던지 척척 잘해나가는 여성을 두고 하는 말이랍니다. 지금은 한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가게를 열었지만 통일되면 고향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그런 회사로 발전시키고 싶은 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합니다. 또 바쁘게 살아가지만 보람되고 즐겁다면서 해외에도 자신의 사업을 알리고 또 통일되면 함께 협력한 동역자들이 생겼으면 참 좋겠다고 야심 차게 이야기하네요.

수년 전 북한에서 십대가 갓 지난 아들을 데려와서 대안학교에서 공부를 시킬 때만해도 사춘기아들 때문에 속상해하던 그녀가 이제는 다 큰 아들 때문에 마음이 든든하다고도 이야기한답니다. 태리 씨 아들은 이제 20대 후반인데 전기전문 분야를 공부하고 자격증을 취득하고 더 많은 공부를 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하면서 아들 자랑이 이만저만이 아니네요.

[녹취] 그래도 한국에 와서 열심히 자기가 하겠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나름 취업을 해서 자격증도 따고 공부도 하고… 나는 내 자식이라서 그런지 삐까삐까한 대학을 못 가도 뿌듯하고 좋더라구요, 너무 바람직하게 자라지 않았는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인성이 바르지 않나 생각해요.

북한에서도 전기를 다루는 일은 일러주는 직업이었는데 한국에도 전기부분을 전문적으로 배우면 기술적인 업무로서 전문가 대우를 받는데요, 그렇게 아들이 잘 자라주기까지 태리 씨는 엄마로서 자식 몰래 눈물도 많이 흘리고, 속상하기도 했겠지요.

자녀들을 키우다 보면 한 번씩은 겪게 되는 엄마들의 고충이 있지요? 그 시기를 사춘기라고 하는데 북한에서 우리는 이팔청춘, 낭랑18세, 그리고 소똥이 굴러가도 웃을 나이 등으로 표현을 했지요? 탈북민들은 자녀들을 키울 때 사춘기와 갱년기가 싸우면 갱년기가 이긴다고들 하지요? 물론 지금은 북한의 언어가 많이 바뀌었으리라고 봅니다만 지금 우리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한 번씩 우리는 사춘기도 없었어 하고 이야기하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정말 우리가 사춘기를 안 했을까요?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말해도 우리에게도 분명히 사춘기 시절이 있었던 것 같네요. 나는 왜 태어났고, 우리가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지 다는 몰라도 어느 일정부분은 그런 생각들이 들었던 것 같네요. 그리고 부모님과 선생님께 약간씩의 반항이 아닌 반항도 해봤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녹취] 사춘기는 내가 어려서 나왔기에 잘 모르겠는데 암튼 거기서도 꼴통짓을 했나 봐요. 그래도 여기 와서 엄마 성격도 몰랐고 엄마가 어떤 엄마인지도 몰랐고 그 동안 알아가는 과정이어서 애도 힘들었고 나도 힘들었어요. 근데 지금은 정말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대학 나오고 남처럼 박사학위 따고 뭐하고 나는 그런 것 부럽지 않고 건강하고 건강한 삶을 살아 간다는 거기에 중점을 두고 나는 내 아들을 자랑하고 싶어요.

한국은 사춘기를 질풍노도의 시기 또는 중2병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중학교 2학년이 많이 그런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말입니다. 남한에서 중학교 2학년이면 15살을 말합니다. 하도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힘이 넘쳐나서 김정은도 무서워서 못 내려오는 중2라고들 우스개로 말한답니다. 그만큼 부모들에게는 너무나도 조심스러운 아이들 시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북한에서 살 때 우리 부모님들은 우리가 겪던 그 시기를 어떻게 달랬을까? 또 한 번 생각해보면서 부모님을 그려보게 되네요. 자식을 키워봐야 부모 마음을 안다고들 하지요. 지금 우리가 고향의 부모님들께 못다 한 마음이 자식들의 성장을 바라보면서 아련하게 젖어옵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여성시대 RFA 자유아시아방송 김태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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