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시대] 여기저기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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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성시대 김태희입니다. 어느덧 7월입니다. 예년보다 무덥고 또 긴 장마가 한창인 요즘입니다. 전 세계가 불볕더위로 몸살을 앓을 때 우리가 사는 한반도 역시 다른 때보다 덥다고 모두 힘들어했습니다. 그런 6월을 보내고 지금은 물난리 재난 보도를 봅니다.

날씨가 불벼락, 물벼락을 내릴 때 나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으로 다리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저녁에 남편과 함께 산책을 하다가 파진 보도블럭에 발을 헛디뎌서 이제는 집에 들어앉은 지도 몇주 되었습니다. 채 어스름이 앉기도 전에 다리를 헛디디고 일어서려고 보니 발로 땅을 짚을 수가 없었죠. 그리곤 바로 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병원에 도착해 X-ray를 찍자고 해서 찍었더니 발목뼈가 금이 갔으니 더 정밀하게 인대까지도 볼 수 있는 CT를 찍자고 합니다. 한참을 지나 의사 선생님이 발목뼈가 부러진 것이 맞으니 낮에 다시 내원하여 담당 주치의와 의논하여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는군요.

한국은 도, 시, 군, 동 마다 해당 급수 병원이 있는데 지역마다 몇개 정도의 응급실이 있어야 합니다. 유아 및 청소년 응급실도 있어야 하는데 이런 것은 선거 때마다 늘 국회의원들이 공약으로 내세우는 일중에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날 저녁에 발목이 골절되고 무릎이 까지고 손가락마저 긁혀서 엉망진창인 곳 여기저기를 처치하고 다리에는 압박붕대와 부목을 대고 깁스까지 완벽하게 하고 생활을 하기 위해 병원에서 바로 목발까지 구매해서 짚고 집으로 왔지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산책하러 나가고 집에서 공부를 하던 손녀딸과 일하고 돌아온 아들은 남편의 부축을 받으면서 들어오는 나를 보고 깜짝 놀랍니다.

다음날 바로 수술을 하는 것보다 다른 병원들에 가서도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응급실에서 찍었던 사진들을 담은 비디오를 가지고 부산에 아는 종합병원으로 찾아 갔습니다. 병원들마다 다 다른 말을 한다고 역시 한번 다른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보기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그럼 처음 병원에서 권유했던 대로 수술을 하게 될 터이니깐 말이죠.

두 번째로 찾아간 병원에서는 골절은 맞지만 괜히 수술을 하면서 뼈에 나사를 박다가 남은 작은 뼈를 부스러뜨릴 수 있으니 수술은 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대신 병원에 4주~6주가량 입원하여야 된다고 하네요. 입원도 머뭇거리자 그럼 집에서 안정을 취하되 밥도 하지 말고 침대에 누워서 까딱하지 말라고 합니다. 병원 의사 선생님들이 괜히 겁주려고 하는 말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주부인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겠죠. 갑갑하기도 할 터이고 말이죠. 집에 돌아와서 고민을 하다가 휠체어를 대여했습니다.

고맙게도 한국은 의료기기를 판매하는 매장에서 휠체어며 목발 등 여러 가지 생활의료기기를 합리적인 가격에 한달씩 대여를 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휠체어를 한달 쓰기로 하고 집으로 배달을 요청했지요. 그 휠체어 덕에 지금 집에서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갖가지 일을 좀 느리고 어설프지만 해나갈 수가 있네요.

오늘도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병원에서는 수술을 하던가, 안정을 취하기 위해 입원을 해야 한다고 강권을 하지만 넓은 집과 손녀딸과 아들 그리고 남편의 일상생활을 다친 내 다리 때문에 무너지게 할 수는 없어서 오늘도 역시 병원의 모든 요구조건을 무시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대신 휠체어 덕에 그래도 발목을 잘 건사를 할 수 있다고 자아위안을 하면서 말이죠.

내가 발목이 부러지자 주변에서 친하게 지내는 탈북민 언니 중 한명이 아오지 탄광에서 살다가 왔는데 북한에서도 골절이 되면 안정을 취하고 쉬게 해준다고 하더군요. 앞으로 나랏돈이 더 든다고요. 대신 농촌에서 농사일하다가 온 언니는 또 다른 말을 합니다.

농장에서는 상해로 일을 하지 않으려면 진단서가 있어야 되는데 골절이 되어서도 며칠 밖에 진단서를 떼어주지 않으니 발을 절룩거리면서도 일을 나가야 하고, 발이 아파서 일을 못나가면 무단결근으로 분배 몫이 잘려나간다고 하죠.

나 역시 아버지가 대수술을 받고 중환자로 입원했을 때에도 간병진단서를 떼지 못하고 분배를 받지 못해서 온 집안이 아사직전까지 가고 오빠가 굶어죽기까지 했지요. 그런데 탄광에서 나랏돈이 더 나간다고 진단서를 떼준 것은 감사하고 며칠 안되는 날만 진단서를 떼어주는 농촌의 병원에는 화를 내야 하는지,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군요.

한국은 이렇게 골절이나 다른 큰 병에 걸리면 국민이라면 모두가 들어야 하는 의료보험이 있어서 등급에 따라 국가에서 얼마를 지원해주고 나머지를 개인이 계산을 합니다. 그리고 나처럼 별도의 보험을 들어놓은 사람은 골절비용, 상해보험, 입원 일당, 통원비용 등 여러 비용을 청구하여 돌려받게 되기도 하지요. 물론 아픈 사람이 더 힘들겠지만 이런 때를 대비해서 보험을 든든하게 들어놓은 경우가 많습니다. 나 역시 병원에 입원을 하면 보험회사로부터 돈이 부족하지 나오지만 가족을 위해 통원치료를 고집합니다.

두 다리가 성성할 때에는 집안일을 걱정없이 해내고 모임에 참여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하던 내가 집안에서 휠체어를 밀고 다니면서 이것 해라, 저것 해라 잔소리만 하는데 13살 손녀딸이 어느덧 다 커서 할아버지 대신 휠체어를 밀고 할머니를 바깥바람 쐬어 드리겠다고 하네요.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김태희였습니다.

에디터 이진서, 웹편집 한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