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 모자 죽음, 장례식 연기

워싱턴-이원희 leew@rfa.org
2019-09-27
이메일
댓글
Share
인쇄
지난 21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지난 7월 말 임대아파트에서 숨진 탈북민 모자를 추모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지난 21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지난 7월 말 임대아파트에서 숨진 탈북민 모자를 추모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안녕하세요? 이원희의 여성시대입니다.

지난 7월말 서울의 한 임대 아파트에서 숨진 탈북민 모자를 추모하는 시민 애도장이 최근에 있었습니다. 장례식이 아닌 애도장을 마치고 탈북민 비상회의가 열렸었는데요,

: 시민 애도장을 했고 이제부터는 정식 장례절차를 밟기위한 준비를 하기 위해 통일부하고 정상적인 장례를 할수 있도록 협조도하고 또 우리의 목소리도 들어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비상대책위원회가 할 일이라고 봅니다

여성시대 탈북민 모자 죽음을 두고 두달이 지난뒤 시민 애도장만 치루었는지, 비상대책위원회 총무 활동하는 자유와 인권을 탈북민 연대 김태희 대표로 부터 들어봅니다.

음악:

통일부에서는 탈북민 한성옥 씨와 아들의 장례를 치루라고 재촉하지만 비상대책위원회는 장례가 목적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 성옥이가 왜 죽었습니까? 사실은 공공단체 자치단체에, 나 배곱픕니다 라고 얘기 했을때 공공단체 자치단체에서는 거부를 했잖아요 그렇지만 또 다른 지인들에게 손을 내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안했단 말이죠, 그것은 국가가 나를 외면했는데 더 이상 나를 돌보아 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고 굶어서 죽은 항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정부입장에서 볼 때는 굶겨서 죽인거에요

한성옥씨는 중국으로 탈북해 중국 조선족 남편과 살다 한국에 온지 13년이 되었다고 하는데요 남편과 이혼을 하면서 이번 일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성옥 씨는 생전에 여러곳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김대표는 전합니다.

: 동 사무소에도 갔었고 구청에도 찾아 갔습니다. 그런데 한성옥씨가 1월 달에 이혼 수속을 했어요  상담받으로 가니까 중국에 가서 서류을 떼어 오라는 기록이 남아 있어요. 대한민국정부에서 승인하고 도장을 밖았으면 되었는데 왜 중국에가서 서류를 떼어와야 됩니까?

한성옥 씨는 아들이 장애아라 수당 10만원을 가지고 생활했기에 도저히 중국으로 갈 수 없는 형편이었다고 설명합니다.

: 어떻게 중국에가서 서류를 떼어옵니까  무슨 돈으로 가요, 대한민국의 법을 무시했다는거에요, 대한민국에서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으면 대한민국에서 인정하면 되는거 아닙니까? 왜 중국에가서 서류를 떼어와야 되나요 이미 중국에서 이혼을 하고 왔기때문에 서류상으로는 모두 끝난거에요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앞으로 재발 방지를 위해서 비상대책위에서는 해야 할일이 있다고 하는군요

: 이런 문제에 대한 아무런 대책이 없이 장례해라 시신을 치워 버린뒤에 통일부에서 우리의 요구를 들어줄까요  안들어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분양소를 지키고 있으면서 두번째 성옥이 세번째 성옥이가 없도록 해 달라는 것을 정부에 요구를 하고 있는거에요 그런데 통일부는 애초에 이를 받아줄 생각이 없는겁니다. 그리고 져희들 보고 빨리 장례를 치루라고,

시민 애도장 이후 광화문 네거리에는 지금도 몇 평 안되는 자그마한 분양소가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요,

: 통일부에서 우리가 예우를 갖추어서 협조를 하겠습니다라고 하지만 빨리 시체를 치워버리고 탈북자들은 입을 다물어라, 그 말이거든요, 이 광화문 네 거리에 멏평안되는 조그마 분양소가 입장에서 볼때 상당히 거슬리거든요.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서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 일으키고 있어요

지난 21일 시민애도장을 마치고 장례임원 몇명이 청와대 까지 진출을 하기도 했는데요,

: 4명이 청와대 쪽으로 가서 바리케이트 뛰어 넘어 들어갔어요 탈북민들의 손바닥이 찢어 졌어요 그리고 혈서를 썼구요 국민의 공분을 일으키니까 청와대족쪽에서 상당히 불편한거에요, 빨리 장례를 하라는 거죠

한성옥씨는 대한민국에 발을 드려놓은 순간  조선족과 결혼을 했어도 역시 대한민국 국민 그리고 중국에 갔어도 사람이거든요  외국인과 결혼을 했어도 대한민국 국민이고  그리고 중국에 가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간 것이라고 하는군요

: 우리나라에서는 성옥이와 대한민국에서 낳은 아이는 보호해 주어야 됩니다.

김 대표는 한성옥씨가  주변이나 아는 탈북민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은 것이 안타까운데 탈북민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없었던 마음을 이해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 우리가 300만명이 굶어죽는 현장에서 살아나왔고 중국에서도 수년을 살아가면서도 굶어죽지 않았고 여기까지 왔잖아요 그런데 여기와서 친구들에게 당장 밥가마에 들어갈 쌀이 없어 쌀좀 할때 무너지는 자존감이 얼마나 클까요, 그래서 같은 탈북자에게 도움의 손을 내밀어요 저도 그런 입장이라면 누구에게도 달라는 소리 못할것 같아요. 대한민국에서는 조금만 육신을 음직이면 먹고 있는데 굶어 죽었을까 그랬는데 성옥이에게는 그럴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어요 .

이런 사정을 남에게 얘기 했을때 한두번 도움을 받겠지만 그  이후포기 했을 그 심정이 알 수 있다고 하는군요

: 남에게 얘기 했을때 두번 도움을 받을 있지만 평생 받들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남들도 한두번 도와주다 지치면 그렇게 살아, 이야기 나올 것이고 그런 계산 까지 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의 심정이 느껴지는거에요 .

우리국민인데 생활 기초 초급자이기에 정부에서 아니면 통일부에서 도와주어야 되지않느냐고 반문합니다.

: 대한민국에 위기관리 시스템이 있고 긴급 복지 기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만약에 동사무소 직원이나 구청 직원이 성옥씨가 가서 내가 정말 힘이 듭니다 이랬을때 한마대 메고가서 상황을 보았으면 충분히 도와 수있는 상황이었어요, 통일부 산하에는 남북하나재단에도 갔었어요 그곳에서는 대한민국에 입국한지 10년이 지나 우리 관할 소관이 아니라며 돌려보낸거에요

김 대표는 같은 탈북민의 입장에서 정말 내편을 없구나 통일부마져 우리를 냉대하는데 내가 더이상 손내밀데가 어디있겠나 아것을 우리가 북한에서 느끼던 아픔보다 더 했을 것이라고 전합니다.

: 북한에서는 우리가 누구한테도 내밀데가 없었어요 누가누구를 사기치고 뺏어 먹지 않으면 안되는 때였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복지가 너무 화려합니다. 그렇지만 특히 탈북민들에게는70년의 분단된

문화 속에서 살다가 자신의 처지가 이렇게 되어서 찾아 갔는데 이것을 똑같이 한국에서 힘든 사람하고 보편적인 선상에서 일이 아니거든요 70년의 분단된 북한주민이었던 우리 대한민국 국민과, 여기서 태어난 대한 민국 국민의 사각 지대의 차이 차이를 분리해야될 이유가 있어요

한성옥 씨가  10년동안 한국생활을 하면서 노력도 많이했고 꿈도 있었기에 더욱 안타깝다고 하는군요.

: 자기의 생계수단이 충분했었고 한국에서 여러가지 자격증도 땄더라고요, 제과 제빵 자격증도 따서 통일되면 북한에 가서 빵을 굽는 여성이 되고 싶다는 꿈도 있었어요, 빵을 구워서 어렵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나누어 있는 소박한 꿈을도 있었고 열심히 살았던 여자에요 그러다 남편을 중국에서 데려와 조선소에서 일도 했고요 그러다 경제 불황이 닥치면서 조선소 문닫고 하면서 남편하고 중국으로 간거에요

그런데 성옥이씨는  중국에서 낳은 아들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편을 데려왔다가 여기 한국에서 둘쨰 아이가 태어났는데  장애가 있었다는군요

: 한국에 장애아 학교도 있고 그런데 발작이 일어나면 부모들이 일을 못합니다그리고 어린이 집에 갔다가도 발작이 일어나면 부모가 일하다가도 바로 뛰어와야 되기 때문에 엄마가 끼고 있을 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런 아이를 데리고 일을 없으니까 아이의 장애 양육 수당을 받은거에요 5 3월달에 수당마져 끊기겁니다. 그래서 3월부터 죽을때 까지 10만원으로 버텼더라고요

이 정도면 장애아 극빈가정으로 정부에서 충분히 도와 줄 수 있었을텐데 주변의 탈북민들과 의논을 했어도 이런 상황으로 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 구청이나 동사무소 아니면 탈북 단체 그쪽으로 갔으면 도와 있었을 텐데 누구도 방문을 안했어요. 우리 탈북자들도 몰라서 방문을 안했던 거에요 그러니까 성옥이에게 한없이 미안하고 북한에서도 살아 남았는데 우리가 숨죽여 살던 중국 땅에서도 살아남았는데 두만강 압록강 총알에 빗발치는 그곳을 뚫고서도 왔는데 이렇게 풍요한, 음식이 썩어나가고 사람이 다이어트를 하다 못해 이제는 짐승도 다이어트 , 살까기를 하는 세상에서 굶어서 죽었다는 것이 무관심속에 버려진거죠

김대표는  탈북한  대한 민국 주민들을 대하는 것이 전 정부와 너무 대비가 되어 섭섭하고 마음이 아프다고 재삼 강조 합니다.

: 대통령 때는 라오스에서 9명의 탈북 아이들이 북송된 이후에 20여명이 라오스에서 붙들렸어요, 그런데 그들을 구출하는 지시를 했고 그리고 바로 10월달 국군의 날에는북한주민들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모두 대한민국 자유의 땅으로 오십시요, 우리가 받아주겠습니다 그렇게 육성을 남겼던 분이에요.그렇게 탈북민을 사랑하는 분이었고 저희들이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해 주고 우뚝서게 하려고 노력한 분이었어요.그랬는데 정권에 들어와서 우리는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된거에요

이런 상황에서 지금 통일부는 어떻게든 이 일을 빨리 마무리짓고 없던일로 하려는 것이 역력하다고 강조합니다.

: 우리가 가진 것이 없고 빽이없는 가장 낮은 자들 아닙니까? 우리 탈북민들은 북한에서 문을 열저주지 않은면 이땅에 가족도 없고 학연 지연 아무것도 없어요.그런 우리한테 이렇게 하는것은 너무 인적인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우리를 사람대접 안하면 현정권과 맞서서 싸울 밖에 없습니다.

특히 탈북민들은 어느 정권이든지 한국의 국민이된 탈북민들이 이와 유사한일이 없도록 재발방지를 요구 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 이번기회에 한성옥 모자법도 발의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앞으로는 비상대책위원회가 나머지 일을  담당 할  것이라고 하는  김 대표는  이번일을 북한당국은 아마 교묘하게 이용할 것이라며 하지만 민주주의 대한민국이기 때문에 탈북민들이 이런 활동이 가능한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 일을 가지고 굶어 죽었다고, 북한에서 교묘하게이용하거든요.그래도 선배들이 기존의 정부에서 만들어놓은 자유민주주의 바탕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깔려 있기때문에 그래서 우리탈북민들이 대한민국에서 싸울 수가 있는 겁니다. 싸울 있는 기틀은 이미 대한민국 역사상으로 꾼준히 발전해 만들어 왔기 때문에 있는 것이고, 북한에서 우리가 이렇게 싸울수가 없는거잖아요.

음악:

여성시대 RFA 자유아시아방송 이원흽니다.

원본 사이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