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경] 북한 주민도 불렀던 ‘아침이슬’

권은경-북한반인도범죄철폐국제연대 사무국장
2024.08.02
[권은경] 북한 주민도 불렀던 ‘아침이슬’ 사진은 '아침이슬' 수록된 김민기 1집.
/연합뉴스

권은경 북한반인도범죄철폐국제연대 사무국장
권은경 북한반인도범죄철폐국제연대 사무국장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내 맘의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아마 청취자 여러분도 이렇게 시작하는 노래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아침이슬이라는 한국 민중가요인데요. 한국에 사는 많은 탈북민들이 북한에서도 즐겨 불렀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을 보면한민족의 정서는 남과 북에 상관없이 한 데로 흐르는 듯합니다.

 

아침이슬 1970년 당시 대학에 갓 들어간 김민기라는 청년이 곡도 쓰고 노랫말도 쓴 노래인데요. 이 노래를 만든 김민기 씨가 73세의 일기로 지난 7 21일 타계했습니다. 그래서 이분의 인생 단면을 들여다보며 한 사회의 발전 그리고 사회 성원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주는 '대중문화'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이 노래가 처음 한국 대중들에게 알려진 1970년대 전후로는 한국도 청년들의 문화, 생활양식과 태도, 옷차림과 머리모양을 꽤 단속했습니다. 심각한 경우 처형당할 수도 있는 북한처럼 생사를 가르는 문제는 물론 아니었지만, 교도대가 옷차림 단속하는 정도는 됐습니다. 당시 한국 정부는 이념적으로 청년들의 심경에 영향을 줄 대중음악에 대한 검열을 심하게 했습니다. 세계는 물론 한반도도 냉전의 날카로운 이념 대결이 치열했기에 청년들의 사상과 행동을 통제하는 차원이었습니다.

 

1972년의 10 17,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대통령 특별선언을 내고 새 헌법 개정안, 유신헌법을 공포합니다.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던 방식에서 대의원 선거법 즉 간접 선거로 바꾸고, 박정희가 국가를 장기적으로 끌어가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불만을 갖고 유신 반대운동을 이끌던 수많은 청년, 대학생들 사이에 이 노래, ‘아침이슬은 특별해졌습니다. 대학생들은 이 노래를 듣고 학생운동에 뛰어들기도 하고, 반유신 운동을 하던 학생들은 더 큰 용기를 얻기도 했습니다.

 

노래를 만든 사람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이 노래의 영향력이 커지자 정부는아침이슬을 금지곡으로 지정합니다. 가사에 박정희 독재 체제나 유신을 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도, 사회주의 사상을 따라 계급 투쟁을 노래한 것도 아니었지만, 유신헌법과 박정희 정권을 반대하던 대다수 대학생이 즐겨 부르던 노래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김민기는 반체제 집회에 참가하는 운동권 학생이 아니었음에도, 이 노래를 만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수 차례 정보 당국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1987, 김민기의 아침이슬이 한 번 더 전 국민의 애창가요가 되었습니다. 전국 대부분 대학생들과 청년들이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오던 시기인데요. 그해 6 10, 서울 중심에 있는 연세대학교에서 집회에 참가한 학생 이한열이 최루탄을 맞고 쓰러졌습니다. 한달 후 사망에 이르게 되고 7 9일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민주 국민장을 치렀습니다. 연세대학교에서 서울 시청을 지나 경복궁까지 가는 운구 행렬에 백만 명의 서울시민이 동참했습니다. 한국의 민주화를 염원하고 청년의 죽음을 애도하던 10차선 도로를 가득 메운 서울 시민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아침이슬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김민기도 인파 속에서 민주화를 꿈꾸던 시민들이 무한히 반복해서 부르던 노래아침이슬을 들었다고 회상했습니다.

 

한국 70여 년 역사 발전의 굽이굽이마다 김민기의 노래와 함께 한국 사회가 힘과 용기를 얻으며 발전해 왔습니다. 민주화 시기 청년들을 뭉치게 했던 아침이슬 외에도 공업화 시기 가난한 노동자들을 위로 해주는 노래, 소외된 취약계층 사람들을 보듬어 안는 따뜻한 노래, 1990년대 후반 한국의 외환위기로 대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지던 시기 직장 잃은 청년들과 시민들에게 용기를 주는 노래, 남과 북의 통일을 염원하는 노래까지 다 헤아리지도 못할 정도입니다

 

경제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더 거친 역사를 보내온 북한 주민들의 애환이야 더 말할 수도 없을 텐데요, 고난의 행군으로 가족, 친지, 이웃들이 굶주림에 쓰러져 갈 때, 화폐개혁으로 전 재산과 삶이 송두리째 빼앗겼을 때, 10년의 긴 군사 복무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노동에 시달리며 부모님이 그리울 때, 밤낮 없이 장마당이며 역전이며 옥수수 국수 한 그릇이라도 더 팔려고 뛰어다닐 때, 북한 주민들을 위로해 주는 노래는 무엇이었나요? 이렇게 삶이 힘겨울 때 북한 주민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고 애잔한 마음을 달래는 따뜻한 노래는 있었을까요

 

많은 탈북민들은 과거 시절엔 한국 노래를 들으며 피로도 풀고 친구들과 우정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이제는반동사상문화배격법청년교양보장법에 기초해 남한 문화 요소마저 즐기지 못하게 되었고, 위반한 경우는 처벌도 엄격합니다. 이념과 사상, 지도자만 칭송하는 노래가 애달픈 북한 주민들을 위로해 줄 수 있을지 안타깝습니다.

 

김민기는 가난한 노동자들의 결혼식 축가상록수'라는 노래를 만들었는데요. 상록수의 한 구절로 청취자 여러분들의 피곤한 하루를 보듬어 보시길 바랍니다.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에디터:양성원, 웹편집: 한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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