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6∙25 전쟁 영웅 랄프 퍼켓 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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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지난 6월 6일은 대한민국의 현충일이었습니다. 현충일이란 나라 위해 목숨을 바친 국군장병들과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해 1956년부터 시행해온 대한민국의 법정 기념일입니다. 이날이 되면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대전 국립현충원 등에서 전몰자들을 기리는 추모식이 열리고 살아있는 참전용사들을 위로하는 행사들도 열립니다. 6·25 전쟁에 참전하여 중공군과 싸운 16개국 전사자들이 묻혀 있는 부산 유엔군 묘지에서도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싸우다가 희생된 외국 군인들을 추모하는 행사가 열리며, 한국의 보훈처는 이들 참전국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살아있는 노병들에게도 감사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미국의 6·25 참전 영웅 한 분을 소개할까 합니다.

지난 5월 21일 워싱턴에서는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과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 간의 정상회담이 열렸는데, 회담 시작 전에 매우 뜻깊은 행사가 있었습니다. 6·25 전쟁에 참전한 94세의 미군 노병 랄프 퍼켓 주니어(Ralph Puckett Jr.) 예비역 대령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행사였습니다.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이 수여식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문 대통령의 면전에서 퍼켓 대령에게 미군 최고 훈장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수여했고, 이어서 두 대통령은 퍼켓 대령의 양 옆에서 무릎을 꿇은 자세로 기념촬영을 했습니다. 1949년 미 육사를 졸업하고 보병 중위로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중공군과 싸운 퍼켓 대령은 또 한 사람의 6∙25 영웅이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기습 공격으로 대한민국이 풍전등화에 처하자 미국은 6월 27일부터 군대를 파병하여 한국을 도왔고, 이후 1,129일 동안 치러진 전쟁을 통해 연인원 180만여 명을 파병하여 전사자 3만 7천여 명, 부상자 9만 2천여 명, 실종자 3천 7백여 명 등 막대한 인명 피해를 입으면서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주었습니다. 6·25 참전으로 인한 미군의 총 사망자는 5만 4천여 명에 달했습니다. 전쟁 동안 미군은 수없이 많은 전투를 치렀습니다. 1950년 7월 초 미 제24사단의 스미스 부대가 최초로 북한군과 조우했던 오산 죽미령 전투, 7월 중순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던 미군 24사단 사단장 딘(William F. Dean) 소장이 포로로 잡혔던 대전 전투, 8월 하순 백선엽 장군의 한국군 제1사단이 미군과 함께 낙동강에서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한 다부동 전투, 9월 15일 전세를 연전시킨 맥아더 장군의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과 9월 18일 서울 탈환, 이후 북진 개시와 10월 19일 평양 점령, 중공군의 개입으로 유엔군이 다시 후퇴하면서 벌어진 1950년 11월 하순 청천강 전투와 혹한의 추위 속에서 미 제1해병사단이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고 흥남까지 철수에 성공한 장진호 전투, 12월 중순 미 제10군단과 국군 제1군단과 함께 자유를 찾아 나선 10만여 명의 피난민을 남쪽으로 철수시킨 흥남 철수작전, 이후 한반도 중부에서 전선이 교착되면서 중공군과 유엔군 간 밀고 밀리는 공방전이 시작된 이후 치러진 1951년 8월 말 강원도 양구의 펀치볼 전투, 이후의 저격능선 전투, 백마고지 전투 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전투가 이어진 것입니다.

특히, 인천 상륙작전, 장진호 전투, 흥남 철수작전 등은 전쟁의 흐름을 바꾼 분수령적인 전투였습니다. 퍼켓 중위가 싸운 청천강 전투도 그런 전투였습니다. 북한군은 전쟁 도발 후 한달 만에 낙동강 부근까지 남진하는 성과를 이루었지만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 이후 패주하는 신세가 되었고, 이에 유엔군과 한국군은 북한군을 쫓아 쾌속 북진을 거듭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궤멸 직전의 북한군을 돕기 위해 중공이 개입함에 따라 1950년 10월 25일 한국군 제2군단과 미 육군 제2사단은 중공군의 반격을 받고 후퇴해야 했으며, 이후 중공군은 일시 후퇴했다가 11월 25일부터 제2차 총공세를 시작했는데, 그것이 청천강 전투였습니다. 이 전투에서 미 육군 레인저 부대의 중대장으로 활약한 퍼켓 중위는 청천강 북쪽의 전략적 요충지인 205 고지에서 압도적 숫자의 중공군을 맞아 오른쪽 허벅지와 왼쪽 어깨에 총상을 입으면서 고지를 사수했습니다. 퍼켓 중위는 이후 1967년에는 베트남에 파병되어 공산군과 싸웠고,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을 통해 많은 훈장과 표창을 받았습니다.

5월 21일 훈장수여식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랄프 퍼켓 대령의 무공을 소개하면서 “오늘은 당시 한국전에 참전한 모든 미군을 기리는 자리이다. 이후 맞이한 평화의 시대는 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술회했습니다. 문 대통령도 “한국의 평화와 자유를 지켜준 미국 참전용사들의 힘으로 한국은 폐허에서 다시 일어나 오늘의 번영을 이룰 수 있었다”며 감사를 표했습니다. 퍼킷 대령은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대한민국이 기억해야 할 또 한 사람의 전쟁 영웅입니다. 진실로, 오늘날의 한미동맹은 6∙25, 베트남 전쟁 등에서 한미군이 보여준 희생과 용기가 만들어낸 역사적인 결과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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