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히로시마 G7 회의와 한일 정상의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 참배
2023.05.24
5월 19일부터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7개국(G7) 정상회의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규탄, 중국의 힘에 의한 현상변경 시도에 대한 우려, 북한의 핵문제 및 인권 문제 규탄 등을 밝히는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21일 폐막되었습니다. G7 회의는 미국, 영국, 독일, 일본, 프랑스, 캐나다, 이탈리아 등 서방의 주요 7개국 정상들이 만나 국제협력을 논의하는 연례 외교행사로서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지대한 영향력을 가집니다. 이와 함께 한국, 호주, 인도, 베트남 등 8개 참관국의 정상들도 초청되었는데, 한국이 G7 회의에 초청된 것은 이번이 네 번째였습니다. 그래서 윤석열 대통령은 2박 3일간 히로시마를 방문하여 G7 확대회의 참석, 일본 총리와의 한일 정상회담, 한미일 정상 회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등 다양한 외교일정을 소화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일정 중에는 21일 기시다 일본 총리와 함께 히로시마 평화공원의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참배한 것도 포함되어 있는데, 오늘은 이 행사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두 달 만에 세 번째 한일 정상회담을 앞둔 21일 오전 윤 대통령 내외와 기시다 총리 내외는 나란히 서서 위령비에 헌화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했는데, 일본 총리나 한국 대통령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에 참배한 것도 처음이고 양국 정상이 함께 참배한 것도 처음이었기에 이 행사를 지켜본 많은 사람들은 달라진 한일관계에 놀라야 했습니다. 또한 이 장면은 원폭 피해자는 물론 핵문제를 다루는 정책결정자, 전략가, 전문가 등을 회상과 상념에 잠기게 했는데 그만큼 의미하는 바가 다양하고 엄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태평양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5년 6월 대통령에 취임한지 두 달밖에 안 되는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과 군 참모들 사이에 ‘몰락작전(Operation Downfall)’ 즉 일본 본토 침공계획을 놓고 격론이 벌어졌습니다. 육군은 완전한 승리를 위해 침공이 불가피하다고 보았지만, 해군은 반대했습니다. 일본군의 필사적인 항전으로 미군의 인명피해가 엄청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7월 16일 미국이 맨하탄 프로젝트를 통해 만든 세 개의 핵폭탄 중 하나인 게젯(Gadget)이 뉴멕시코주 엘러모고도 사막에서 실시한 핵실험에서 성공적으로 폭발했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오키나와 전투에서만 1만 2천여 명의 미군이 전사한 사실을 기억하는 트루먼 대통령으로서는 핵사용의 불가피성을 더욱 심각하게 고민해야 했습니다. 이 무렵 일본은 천황 체제 및 국군주의 체제 유지, 자체적인 전범재판 등의 조건을 내건 ‘조건부 항복’을 제의했지만 미국은 7월 26일 포츠담 선언을 통해 사실상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통첩을 보냈다. 하지만 일본은 최후까지 항전한다는 ‘결호작전’을 흘리면서 조건부 항복을 얻어내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었고 그 발버둥이 결국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폐허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히로시마에 폭탄이 투하되자 폭발 중심부의 온도는 2,900℃에 달했고 히로시마의 60%가 초토화되고 14만 명이 사망했습니다. 이어서 1945년 8월 9일 0시 150만 소련군이 만주의 일본 관동군을 공격한지 11시간 후인 8월 9일 오전 11시 2분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폭이 투하되었습니다. 도시 내 건물 5만여 채 중 1만 8천여 채가 파괴되었고 7만 명이 사망했습니다. 결국 일본의 쇼와 천황은 8월 15일 정오에 ‘무조건 항복’을 알리는 방송을 내보내야 했습니다. 한국인은 두 도시에서 약 7만 명이 피폭되어 3~4만 명이 사망했고 피폭 생존자 중 7,000여 명이 일본에 잔류했습니다. 히로시마에서는 1970년에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가 세워졌고 나가사키에서는 76년이 지난 2021년 11월에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가 세워졌습니다.
이런 과거를 회상해볼 때 한일 정상의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 공동참배는 실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양국 정상의 참배에는 전체 희생자의 10%에 달하는 한국인 희생자들을 충분히 기억해주지 않았던 일본인들의 사과와 한국정부의 미안함이 배어있는 것 같았습니다. 또한, 참배를 하는 두 정상의 굳은 표정에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연구책임자로서 자신들이 만든 핵무기의 파괴력에 스스로 놀라면서 “나는 이제 죽음의 사자,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고 했던 로버트 오펜하이머 박사의 탄식을 회상하면서 어떻게든 더 이상의 핵사용은 막아야 한다는 결기가 느껴졌습니다. 동시에 두 정상의 표정으로부터 북핵에 대해 국제사회와 함께 공동대응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G7 국가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북한에게 “역내 안정을 해치고 국제 평화를 위협하는 추가 핵실험이나 탄도미사일 발사를 삼가라”고 촉구하면서 “북한의 무모한 행동은 신속하고 단결된 강력한 국제적 대응에 직면할 것(reckless actions must be met with swift, united and robust international response)”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보면서도 핵무력 증강을 멈추지 않는 북한정권을 향한 이런 외침이 소용이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 이 칼럼 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