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전사자 유해 발굴과 평화

김현아·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
201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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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5일, 판문점에서는 미군유해송환과 관련한 북미장성급회담이 열렸습니다. 양측은 구체적 실행을 논의하기 위한 북·미 간의 실무협의를 16일부터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양측은 북한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미군 유해를 발굴하기 위한 현장 작업을 재개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지난 6.25 전쟁에는 북한과 남한뿐 아니라 미국 중국 외에도 16개 나라가 참전했고 많은 사람들이 전사했습니다. 그런데 전쟁시기에는 상황이 급박하다 보니 임시 매장을 하거나 미처 시신을 거두지 못해 죽어서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들이 많습니다. 전후에는 모든 것이 파괴되다 보니 산 사람들이 살기 어려워 시신을 수습하는데 관심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1990년대 이후에 와서야 미국과 남한은 전쟁 시기 희생된 사람들의 유해를 발굴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는 국방부 산하에 전쟁포로 실종자 확인국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확인한데 의하면 한국전쟁에서 7,800명 이상의 미군이 실종되거나 유해가 회수되지 않았습니다. 이 가운데 약 5,300구가 북한에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1990년부터 2005년까지 북한으로부터 약 629구로 추정되는 유해를 돌려받았고 이 중 334구의 신원이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2007년 북한이 유해 6구를 송환한 이후 합동 유해 발굴 작업은 중단됐습니다.

남한에서도 전쟁 시기 전사한 국군병사들의 유해를 발굴하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2000년 4월 6.25 50주년 기념사업으로 시작되어, 2007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정식 발족했습니다. 남한에서 2016년까지 발굴되어 수습한 6.25 전사자 유해 수는 약 9,000여구입니다. 남한의 유해발굴현장에서는 남한군 만이 아니라 중국군과 북한군의 유해도 함께 나옵니다. 그러므로 유해가 발굴되면 함께 발굴된 유물을 구체적으로 감식하고 분석해서 소속을 분류합니다. 국군으로 밝혀지면 유전자 검사를 진행해서 유족을 찾은 유해는 국립묘지에 안장하고 찾지 못한 유해는 현충원 보관소에 안치합니다. 남한은 실종, 전사 한 장병유족들의 유전자 채취를 위한 혈액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적군 유해도 절차에 따라 처리합니다. 이전에는 북한군이나 중국군의 유해는 경기도 파주 적군묘지에 매장했습니다. 그러나 1992년 한중 외교관계가 맺어진 이후 중국 측에 직접 송환하도록 합의가 이루어졌고 2016년 3월까지 총 541구의 유해가 중국으로 송환되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유해를 받아가는 것을 승낙하지 않아서 현재도 북한군의 유해는 파주에 있는 적군묘지에 안장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반제반미교양을 받고 있는 북한주민들은 북한이 왜 미군의 유해를 발굴하고 돌려주는지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마 외화벌이를 위해 발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리고 남한이 북한군과 중국군의 유해도 발굴해서 보관하고 돌려주고 있는데 대해 알게 된다면 이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오늘 남한주민들은 남과 북이 적으로 대립하며 싸울 것이 아니라 서로 화해하고 용서하고 함께 살아갈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북한당국은 현재도 미국과 남한을 제국주의 자본주의로 규정하고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를 반대하여 투쟁해야 한다고 교양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도 북한과 남한의 대립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투쟁으로 설명하기 힘들어졌습니다. 북한에서는 자본주의적 현상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고 남한에서는 북한과 유사한 사회주의정책이 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그리고 북한과 남한이 적이라는 생각은 오랫동안 인위적인 계급 교양에 의해 만들어진 상상일 뿐입니다.

전쟁 시기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싸우던 적국이 공동으로 유해를 발굴하고 상대편의 유해를 돌려주는 과정은 화해의 과정입니다. 남북관계가 진척되어 남과 북도 공동으로 유해를 발굴하고 전사한 이들이 하루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도록 했으면 합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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