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역사에 대한 비판적 시각

김현아· 대학교수 출신 탈북민
2019-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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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주장에 의하면 1945년 8월 9일은 김일성이 조선인민혁명군부대들에 조국해방을 위한 총공격전을 개시할 데 대한 명령을 하달한 날입니다. 2017년에 출판된 ‘조선노동당역사’에는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은 대일작전에 참가한 소련군대와의 긴밀한 연계 밑에 노도와 같이 일제 침략군을 격멸 소탕하면서 조국으로 진군하였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3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과거에 있었던 일 그 자체로의 역사, 둘째는 기록이나 흔적으로 남겨져 있는 역사, 셋째는 기록을 통해 역사가가 재구성한 탐구의 결과로서 역사입니다. 우리가 접하는 역사는 사실 3가지가 섞여서 구성된 것입니다.

역사가들은 역사를 최대한 과거에 있었던 일 그대로 기록하고 전달하려고 하지만 역사가의 주관적 견해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습니다. 역사가 못지않게 역사 기록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정치가들입니다. 정치가들은 정치상의 목적을 위해 역사를 자기의 입맛에 맞게 수정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민주주의국가에서는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사상과 언론의 자유가 실질적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독재국가에서는 그것이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지난 시기 사회주의국가들에서는 역사를 집권자의 이익에 맞게 수정했습니다. 중국도 소련도 그랬습니다. 가장 심한 것은 북한이었습니다.

일본군에 대한 총공격계획을 수립하고 지휘한 것은 소련군 극동군 총사령관 알렉산드르 바실리예프스키 원수였습니다. 독일 패망 이후 미국은 소련에 대일전 참전을 요구했고 소련군 지도부는 3개월 이내에 만주의 일본군을 공격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소련은 은밀하게 극동지역에 병력을 집중했습니다. 원래 소련군 최고사령부는 8월 중순에 공격하기로 결정하였으나, 미국이 8월 6일 히로시마에 핵공격을 단행하자, 일본이 조기에 항복해 향후 전리품 분배에 참여할 수 없게 될 거라는 불안감 때문에 공격을 앞당겼습니다.

8월 8일 오후 5시 소련 외무장관 몰로토프는 주소 일본 대사를 불러 소비에트 연방과 일본 사이의 불가침 조약의 파기와 선전포고를 통보했습니다. 그리고 8월 9일 오전 0시에 만주 전역에서 소련군의 총공세를 시작했습니다. 소련군은 3개 전선으로 나누어 만주를 좌우로 협격했는데 북한으로 진격한 부대는 메레치코프가 지휘한 1극동 전선군이었습니다. 제1극동 전선군은 동쪽에서 만주의 중심으로 진격하며, 8월 13일에는 목단강까지 진출했고 일본군과 치열한 시가전을 벌여 8월 15일에 도시를 함락시켰습니다. 제1극동전선군 예하 제25군은 주력부대의 우측을 엄호하기 위해 해안선을 따라 한반도로 진격하여 함경북도 일대의 일본군을 격파했습니다.

당시 소련군 지휘부는 소련 경내에서 군사훈련을 받고 있던 항일연군부대를 대일전에 참가시키기로 약속했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당시 대일전을 위해 소련이 준비한 병력은 30개 사단 156만 명, 야포 27,000여 문, 방사포 1,150여 문, 전차 및 자주포 5,500여 대 항공기 3,700여 대 몽골군 병력 16,000 명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항일연군에 소속된 조선인 유격대원은 130여 명이었습니다. 일제가 항복한 후 김일성과 대원들은 조국으로 귀국했습니다. 원래는 육지로 들어오려고 했으나 목단강 지역에 패잔병들이 철도를 끊어 놓은 탓에 군함을 타고 원산으로 들어왔습니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는 유명한 문구가 있습니다. 북한역사는 북한 주민을 지배하기 위해서 북한지도부의 의도에 맞게 만들어진 역사입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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