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아 칼럼] 과잉반응

김현아 ∙ 대학 교수 출신 탈북자
2010.02.22
얼마 전 발표된 북한보안성 보위부 공동성명에서는 남한의 반공화국 행위를 규탄하면서 <사람으로 살기를 그만두고 오물장으로 밀려간 인간쓰레기>라는 표현으로 남한으로 간 탈북자들을 비난했습니다.

북한 당국이 공동성명에서 에둘러 표현하며 비난할 정도로 남한으로 입국하는 탈북자들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한해 10명을 넘지 못하던 남한 입국 탈북자는 1990년대 중반기에 이르러 한해 50명을 넘어섰고 2000년에 들어서면서 수백 명으로 증가하였습니다. 2000년대 중반기부터는 천명을 넘어섰고 지금은 한해에 2000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남한에서 북한으로 넘어가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때문에 북한당국은 국경통제에 모든 힘을 다 하고 있습니다. 당, 근로단체조직들에서 교양사업을 하도록 하는 한편 보위부, 보안성의 50일 전투에 국경봉쇄를 주요과제로 선정하고 탈북자 가족들과 국경을 넘나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동향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합동수사대를 조직하여 주민들의 야간이동을 감시하고 탈북자에 대한 처벌수위도 높이고 있습니다.

북한당국은 남한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 <사람 못살 인간생지옥>, <미제의 식민지>라는 남한에 대한 선전이 거짓이었다는 것이 폭로되어 북한주민들의 동요를 유발하고 결국 체제가 흔들리게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1958년 일본에서 살던 조선 사람들이 귀국선을 타고 북한으로 올 때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대이동이라고 신문에 대서특필했습니다. 그런 시각으로 보면 지금 북한은 사회주의로부터 자본주의로 대이동이라고 기록해야 할 상황에 처한 것이고 북한당국자들의 우려도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국경을 봉쇄하여 주민이동을 막는 방법으로 체제를 지키겠다는 것도, 주민들의 이동을 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 대하는 것도 시대착오적인 생각입니다.

오늘은 지난날과 달리 지구상에서 국경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고 주민들의 이동은 나라를 벗어나 국제적인 범위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구상에서는 일반적으로 덜 발전된 나라에서 발전된 나라로 인구가 끊임없이 이동합니다. 남한만 보더라도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이러저러한 이유로 다른 나라로 이주하는 주민들의 수가 한해에 2만 명이 넘습니다. 또 다른 나라에서 남한으로 들어오는 사람은 한해에 30만 명이나 됩니다. 중국이나 러시아, 일본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 이주한다고 누구도 배신자라고 하지 않습니다. 황해도에서 살다가 함경도나 자강도로 이사해가서 가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북 관계를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와의 대립으로 보면서 남한으로 가는 탈북자들을 반동으로 낙인 하고 처벌하는 것은 과잉반응입니다. 냉전이 종식된 오늘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가 이념적 논쟁은 그 의의가 없어졌습니다. 북한도 실지 사회주의가 아니며 체제고수 때문에 이념적 허상을 붙들고 있을 뿐입니다. 지금 세상 사람들은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닌 민주적인 사회, 보다 풍요한 사회, 보다 인간적인 사회건설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남한주민들은 북한을 이긴다는 입장에서가 아니라 같은 민족으로서 배고픈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탈북자들을 받아들이고 도와주고 있습니다.

물론 해외 이주는 해당 나라의 법적 승인 하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은 당국이 해외 이주를 절대로 승인하지 않고, 먹고 살기는 너무 어렵기 때문에 불법으로 강을 넘고 목숨을 걸고 다른 나라로 가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나 불법입국자들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북한 주민은 난민으로 인정되어 북한과의 관계를 우려하는 중국, 러시아를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북한 주민들을 받아주고 있습니다.

세상의 변화를 억지로 막을 수 없습니다. 북한 당국은 비록 지금은 반민족적. 반국가적 배신행위로 처벌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해외 이주를 공식적으로 승인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남한으로 가려한다는 이유 때문에 사람들을 죽이고, 감옥에 보내고, 강제 추방시킨 행위는 21세기의 인권유린행위로 역사에 기록되게 될 것이며 당사자들은 처벌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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