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국제사회에서 ‘왕따’ 된 북한

전성훈∙한국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13.07.12

남한에서 흔히 사용되는 말 중에 ‘왕따’라는 말이 있습니다. 주변의 동료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완전히 외톨이가 된다는 뜻입니다. 일본 말에 ‘이지메’라는 비슷한 표현이 있지요. 요즘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형편이 ‘왕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고립무원의 처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최근의 사건이 지난 7월 2일 브루나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 즉 ARF 회의입니다.

북한의 박의춘 외무상은 27개국이 참가한 ARF 회의에서 나름대로 북한의 처지를 강변했습니다. 하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서 식상한 말들이긴 하지만 미국의 적대시 정책을 탓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하며, 북한은 세계평화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판에 박힌 상투적인 문구들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런데 과거와 다른 일이 이번 제20차 ARF 회의에서 벌어졌습니다. 관례적으로 회의 종료 후에 채택하는 의장성명에 북한의 입장이 단 한 줄도 반영되지 않은 것입니다. 북한이 자신들의 입장을 의장성명에 담는 데 실패한 것은 2000년 ARF 회원국이 된 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이번 ARF 회의가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왕따’ 되었다는 것을 실제로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가 된 것입니다.

오히려 의장성명은 북한이 받아들이기 거북한 요구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북한에 대해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를 준수하도록 촉구했고, 핵무기확산금지조약, 즉 NPT에 복귀하고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수용하도록 요구했습니다. 회의에서 북한의 입장을 지지하는 국가가 한 나라도 없었다는 것을 보면, ‘마치 26 對 1의 싸움'과 같았다는 남한 외교관의 말이 적절한 설명인 듯합니다.

요즈음 북한도 외교적인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애를 쓰는 모습입니다. 최용해 특사의 중국 방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의 중국·러시아 방문, 박의춘 외무상의 ARF 참가 등 외교적 입지를 확대하려고 공을 들이고는 있습니다만 아마 북한 정권이 보기에도 성과는 별로 없을 겁니다.

문제는 북한 지도부가 그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왜 북한의 외교적 지위가 날이 갈수록 추락하고 있는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있는가 하는 것이지요. 북한의 고립은 남한의 압박 때문도 미국의 적대시 정책 때문도 아닙니다. 오로지 북한 정권의 잘못된 사고방식의 결과이자 북한 내부의 문제인 것입니다. 북한 당국이 하루빨리 이러한 정답을 제대로 찾는 날이 오기를 고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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