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칼럼] 국방백서와 남한의 적

전성훈 ∙ 한국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10.12.31
다사다난했던 2010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3월에 북한군의 천안함 공격으로 시작된 북한 정권의 군사도발은 11월에 연평도 포격으로 최고조에 달했고, 한반도에 전쟁의 먹구름이 드리웠었습니다. 북한 지도부는 남한이 먼저 도발했다는 핑계를 대지만 김정일 부자가 도와달라고 매달리는 중국조차 북한의 주장을 믿지 않습니다.

남한정부는 2년에 한 번씩 국방백서를 발간합니다. 남한의 국방정책을 소개하는 설명서라고 할 수 있는 데, 군사력과 국방목표 등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한 나라의 국방정책을 적나라하게 공개해도 되는가에 대해서 아마 북한 동포들은 의아해 하실 겁니다. 북한과 같은 독재체제에서는 국방정책의 공개가 곧 군사기밀 누설과 같은 것이겠지요. 하지만 자국의 국방정책과 군사력을 외부에 공개하는 것은 오늘날 국제사회의 상식이 되었습니다. 자국의 군사력이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순수한 방어목적의 자위력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올해 발간된 남한의 국방백서가 ‘북한의 위협이 지속되는 한 그 위협을 가하는 주체인 북한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다’라고 명시했습니다. 천안함과 연평도를 연이어 공격당한 남한정부로서는 북한정권이 가하는 군사적 위협이야말로 ‘발등에 떨어진 불’과 같은 당면위협입니다. 남과 북이 하나로 통일된 후에는 외부의 다른 위협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지금 현재는 북한의 군사위협이 너무나 엄중하기 때문에 다른 데 눈을 돌리 수 없는 형편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남한의 적’을 북한 동포가 아니라 북한군과 그 지휘부로 한정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김정일 부자 독재체제 치하에서 고생하는 대다수 북한 동포들은 남한의 적이 아니라고 명시한 것입니다. 물론 북한군 가운데도 대다수를 차지하는 일반사병과 초급장교들, 대남도발에 직접 관여하지 않은 고급장교들은 적이 아닙니다.

국방백서는 또한 ‘북한의 위협이 지속되는 한’이란 전제를 달아서, 군사위협만 하지 않는다면 현재의 북한정권과 북한군도 남한의 적이 아니라고 은연중에 암시했습니다. 핵전쟁 위협을 하고 대포와 어뢰를 발사하는 등 군사공격만 하지 않으면 북한의 정권과 군도 더불어 살아갈 상대라는 점을 암시한 것입니다. 이는 대남 공격을 통해 전쟁분위기를 고취하면서 내부단속과 정권승계에 혈안이 되어 있는 북한정권을 상대해야 하는 남한정부로서 위협에 대처함과 동시에 민족의 안위를 고려하는 사려 깊은 정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오래전부터 북한의 정권과 주민을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남북관계는 한편으로는 형제관계이고 다른 한편으론 적대관계인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 아니라, 남한과 북한정권의 관계, 남한과 북한동포의 관계라는 두 개의 관계가 존재한다고 말해왔습니다. 저는 이러한 저의 주장이 남한 사회 곳곳에 스며들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최근 남한 통일부도 2011년부터는 북한주민을 우선시하는 대북정책을 펴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북한의 정권과 주민을 구분하는 것은 시대의 대세이자 민족적 요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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