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훈 칼럼: 현실을 무시한 북한의 5단계 핵문제 해법

최근 남한의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방송기자클럽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지난 5차 6자회담 때 북한이 제시한 핵문제 해법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정동영 장관이 전한 바에 따르면, 북한은 핵무기 폐기에 관련된 전체 과정을 다섯 단계로 나누어 실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핵 폐기의 다섯 가지 단계란 첫째, 핵실험을 보류하고, 둘째, 핵무기나 핵물질의 제3국으로의 이전을 금지하며, 셋째로 핵무기의 추가 생산을 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 단계는 핵 활동을 중지하고 핵무기를 폐기하면서 이런 상황을 검증을 통해서 확인하고, 마지막 단계에서는 핵무기확산금지조약, 즉 NPT에 복귀하고 국제원자력기구, 즉 IAEA의 사찰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의 논평에서는 북한의 소위 5단계 핵 폐기 해법이 얼핏 보기에는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것 같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상당히 불합리한 방안이라는 점을 설명 드리고자 합니다. 이번 방안은 북한 당국이 북핵위기의 심각성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의 한계를 드러낸 것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이행하는데 있어서도 많은 어려움이 초래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북한의 5단계 해법에서 가장 큰 문제점으로 파악되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보기에 북한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세 가지 조치들, 즉 핵실험과 핵무기의 이전 그리고 핵무기의 추가 생산을 처음 세 단계의 조치로 제시함으로써 협상의 의제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협상력을 제고하기 위한 북한 당국의 소박한 희망에서 나온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핵무기 폐기 단계로 이르는 데 여러 가지 장애물을 조성함으로써 핵 폐기의 시점을 지연하나 핵 폐기의 가능성을 무산시키기 위한 전략일 가능성이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지금 국제사회는 북한이 조속한 시일 내에 핵무기를 폐기해주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지난 17일에 있었던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남한의 노무현 대통령과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북한의 핵무장을 용인하지 않을 것임을 재차 강조하면서, 북한이 조속하고 검증가능하게 핵무기 프로그램을 폐기해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바 있습니다.

정상회담 후에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에 대해서도 이런 회담이 북핵위기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어야 하며, 회담 자체만을 위해서 무리하게 일을 추진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북한 당국이 북핵위기를 조속히 해결하고자 한다는 희망을 주는 조치를 취해야만, 정상회담 개최도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인 것입니다. 북핵위기가 남북관계 개선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우회적으로 드러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의 5단계 해법은 핵 폐기의 전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히는 검증 문제에서도 불확실한 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핵 활동의 중지와 핵 폐기를 단행하면서 검증을 실시하고, 마지막으로 IAEA의 사찰을 수용하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별로 사이가 좋지 않은 국제원자력기구를 핵 폐기 단계에서 배제시키겠다는 북한 당국의 의도가 담겨있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이 역시 현실성이 결여된 방안입니다.

NPT를 위반하면서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추진한 나라의 핵무장을 해체하는 과정에 IAEA의 참가가 필수불가결한 요건이라는 점은 이미 여러 가지 사레를 통해서 실증적으로 입증된 바 있습니다. 지난 1990년대 초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비밀 핵무기 개발 사실을 고백하고 모든 정보를 공개했을 때도, IAEA가 3년여 간의 사찰을 통해서 남아공 정부의 핵개발 실체를 확인한 바 있습니다.

이라크나 리비아의 핵무기 개발 사실을 적발하고 검증을 통해서 확인하는 과정에서도, IAEA는 유엔의 후원 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런 공로가 인정되어서, 이번에 IAEA와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이 노벨 평화상을 공동으로 수상하게 된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북한 당국은 5단계 핵 폐기 해법이 갖는 이상의 문제점을 잘 인식하고, 다음번 6자회담에서는 보다 현실적인 방안을 갖고 참여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