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폴란드 자유노동조합의 유산

그렉 스칼튜 ∙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
2019-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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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1989년 동유럽의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졌습니다.  그 해 뽈스까(폴란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로 공산주의가 아닌 열린 정부를 조직했습니다.  동서독 젊은이들은 동서 분단을 상징하던 독일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렸습니다. 로므니아 (루마니아)의 젊은이들도 유혈 혁명을 일으켜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대통령의 사악한 공산주의 독재 체제를 무너뜨렸습니다.  특히 뽈스까 자유노동조합이 공산주의 체제를 무너뜨려 민주주의, 자유와 경제 발전의 길을 찾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980년 전기 기술자 출신인 37세의 레흐 바웬사 씨는 뽈스까 발트 해안의 항구 도시 그다니스크 노동자들과 다른 뽈스까 노동자들이 파업하는 도중 자유노동조합을 설립했습니다.

제2차 대전이 끝난 후 뽈스까를 비롯한 동유럽 나라들이 소련의 영향권에 들어가 공산주의 독재 국가가 됐습니다.  뽈스까의 그다니스크 조선소 노동자들은 바웬사 씨가 자유노조를 조직하기 이전에도 공산주의 독재와 인권 유린을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1970년 뽈스까 공산주의 정부는  전투 경찰을 투입한 후 무차별 총격을 가하도록 하여 노동자 80명 이상 숨졌고 1,000명 이상 다쳤습니다.

평범한 사람으로 태어나 전기 기술자이던 바웬사 씨는 1980년 자유노조를 설립해 공산주의 독재를 반대하던 뽈스까 애국자들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뽈스까 자유 노조는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지식인들과 천주교 신부, 수녀들까지 아주 다양한 계층이 참여해 1981년 연말까지 회원 수는 9백만 명이 되었습니다. 즉, 뽈스까 인구의 약 4분의 1은 자유노조 회원입니다. 동시에 '농민들의 자유노조'까지 포함해 뽈스까 곳곳에서 다른 자유노조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뽈스까 공산주의 정부는 1981년말 계엄령을 선포해 자유노조를 금지하고 바웬사 씨를 체포해 1년 동안 투옥했습니다.

바웬사 씨는 1983년 노벨 평화상을 탔습니다. 노벨 평화상을 받으러 외국에 나갔다가 추방을 당해 뽈스까로 다시 들어올 수 없을 사태를 염려해 바웬사 씨는 아내를 보내 그녀가 노벨 평화상을 대신 받게 했습니다.

바웬사 씨는1987년부터 1990년까지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합법적이지 않은 자유 노조 진행위원회를 운영하면서 공산주의 독재를 계속 반대했습니다.

소련이 와해할 조점을 보이던 1989년말 바웬사는 제2차 대전 이후 뽈스까 최초로 공산주의가 아닌 열린 정부를 조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것은 뽈스까가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로 향하는 길의 첫 걸음이었습니다.

뽈스까에 이어 마쟈르 (헝가리)와 체스꼬슬로벤스꼬 (체코슬로바키아)도 반공산주의 무혈 혁명을 일으켜 피 한방울도 흘리지 않고 공산주의 체제를 무너뜨렸습니다. 1990년말 바웬사 씨는 대통령에 출마해 당선된 후 1995년까지 뽈스까 대통령을 지냈습니다.

바웬사 씨는 쉽지 않은 전환기에 뽈스까를 이끌면서 경제 개혁의 길을 확실히 택했습니다.  그는 '충격 요법'이라 불리는 엄격한 개혁 정책과 구조 조정을 추진해 뽈스까의 공산주의 중앙계획 경제를 사유화시켜 현대적인 자유시장 경제로 변화시켰습니다. 전환기는 뽈스까 사람들에게 쉽지 않은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충격 요법' 덕분에 뽈스까는 결국 성공했습니다. 뽈스까는 유럽공동체에 가입했고 지난 30년 가까이 놀라운 경제발전을 이룩해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공산주의 시대 때보다 훨씬 좋아졌습니다.

이제는 평민으로 생활하고 있지만 바웬사 씨는 현재 세계 무대에서 활동이 활발합니다. 그는 세계 곳곳에서 대학 강의를 하며 벨로루시와 같은 구소련 독립국가들의 민주화 운동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바웬사 씨와 그의 자유노조 운동은 공산주의의 허구를 세상 사람들에게 풍자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바웬사 씨에게 용기를 얻은 로므니아 노동자들은 급기야 1987년 브라쇼브라는 도시에서 반공산주의 독재 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러나 이 민주주의 운동은 비밀 경찰과 전투 경찰에 의해 저지 당하고 수십명이 숨지면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결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까지 포함해 인권을 유린해온 루마니아 (로므니아)의 공산주의 독재 체제는 2년 뒤 1989년 말 국민의 유혈혁명으로 무너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천 명 젊은이들이 희생되었습니다. 로므니아도 뽈스까처럼 1980년 초부터 자유노조와 바웬사 씨와 같은 인물이 있었으면, 무혈 혁명이 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뽈스까의 군사정부보다도 정치 탄압이 더 심하던 로므니아의 공산주의 독재 체제는 피흘려 무너뜨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뽈스까 자유노조의 운동은 뽈스까인들과 다른 동유럽 사람들에게 인권과 자유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삶에 대한 맛을 보게 했습니다. 공산주의 독재 탄압을 직접 겪은 사람들에게 뽈스까 자유노조의 추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자유를 되찾은 동유럽 사람들은 레흐 바웬사 씨가 이끈 뽈스까 노동자들이 보여준 용기의 교훈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뽈스까와 로므니아의 교훈을 보면 주민들을 군사력으로 탄압해야만 지킬수 있는 정권은 영원히 유지할 수 없습니다. 김정은 독재정권 국가인 북한도 예외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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