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튜 칼럼] 독재체제에 도전한 인물들
그렉 스칼라튜∙ 루마니아 출신 언론인
2009.12.29
2009.12.29
28세인 재미 북한인권운동가 로버트 박씨가 며칠 전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무단으로 월북했습니다. 미국, 남한과 세계 언론에 따르면 박씨는 중국에서 설교활동을 하면서 탈북자를 직접 만나 북한 당국의 인권 침해에 대해 알게 되었고, 미국으로 귀국해 북한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활동을 해왔습니다. 또 박씨는 장애인과 같은 불우이웃을 위한 봉사활동을 많이 해왔습니다. 또한 그는 무단 월북하기 며칠 전 북한 당국에 의해 체포되더라도 미국 정부가 자신을 구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가 북한 인권 상황을 개선할 것을 요구하는 편지를 들고 무단 월북한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지만 봉사활동을 오래하고 열렬한 기독교 신자인 박씨의 배경을 보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할 정도로 북한주민들의 고통을 나누며 그들의 생활을 진심으로 개선하려고 하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서유럽 나라들은 제2차 대전이후로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인 자유시장에 의해 경제강국이 되었는데, 동유럽 공산주의 독재 국가들은 비효과적인 중앙경제계획때문에 심각한 경제 위기에 시달리고 있으며 정치 탄압과 인권 유린이 매우 심했습니다. 일반인들이 자유민주주의 세계인 서유럽이나 미국으로의 망명을 위해 여권을 발급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고, 외국인들도 특별 허가와 비자를 받아야 동유럽 나라를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구소련이나 폴란드, 그당시 북한과 상황이 많이 비슷했던 루마니아는 엄청난 규모의 교도소와 같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인권 유린, 정치 탄압과 식량부족 때문에 어렵게 살면서 그 어두운 세상을 떠날 수도 없고, 바깥세상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위험한 망명의 길을 선택한 용감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고향에 남아 있는 가족들은 항상 공산주의 당국의 보복 행위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반대로 공산체제에 도전하려는 자유민주주의 세계에서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기 2년전인 1987년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에 도전한 서독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1987년 5월 13일, 19세의 마티아스 루스트라는 청년이 모스코바 ‘붉은 광장’에 소형 비행기 '세스나'기를 착륙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루스트는 핀란드에서 이륙해 소련의 방공망을 피해 ‘붉은 광장’에 착륙하면서 소련과 미국이 군비 확장 경쟁을 하는 가운데 소련의 방공망의 헛점과 소련군의 비효율성에 대한 논의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루스트는 나중에 언론 단체와 인터뷰를 하면서1986년 당시 핀란드 수도인 레이캬비크 미국과 소련간에 정상회담에서 핵군축 회담이 실패하고 교착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실망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루스트는 ‘세스나’ 비행을 통해 동서독일과 동서유럽을 잇는 교량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고 했습니다.
서독 젊은이 루스트가 소련 당국에 의해 재판을 받아 소련 교도소에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루스트가 모스크바 중심지에 있는 ‘붉은 광장’에 착륙하면서 그의 역할이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소련의 방공망과 군사력에 대한 논의를 불러 일으켰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또한 당시 개혁과 개방을 고려하던 소련 공산당 서기장인 고르바초프가 ‘루스트’ 사건을 구실로 개혁과 개방을 반대하던 많은 소련군 장군들을 해고시키며 소련과 동유럽이 해방되는데 간접적 영향을 주게 되었습니다. 서독 청년 ‘마티아스 루스트’가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 소형 비행기 ‘세스타’를 착륙시키면서 붉은 제국이던 소련의 군사력에 도전했습니다. 무단 월북을 한 로버트 박씨는 북한의 경제.정치 탄압과 인권 침해에 도전한 것입니다. 19세밖에 안된 루스트는 그당시 명성을 얻고 싶다는 의도도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나이가 더많고 설교활동과 봉사활동이 활발했던 박씨는 북한 주민들의 생활 개선이 목적입니다.
혼돈 이론에서 ‘나비 효과’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 개념은 초기값의 미세한 차이에 의해 결과가 많이 달라질수 있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작고 힘없는 한 나비의 날갯짓이 먼곳에서는 돌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박씨가 북한 당국에 의해 구속되면 그의 무단 월북 사건이 그러한 ‘나비 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서유럽 나라들은 제2차 대전이후로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인 자유시장에 의해 경제강국이 되었는데, 동유럽 공산주의 독재 국가들은 비효과적인 중앙경제계획때문에 심각한 경제 위기에 시달리고 있으며 정치 탄압과 인권 유린이 매우 심했습니다. 일반인들이 자유민주주의 세계인 서유럽이나 미국으로의 망명을 위해 여권을 발급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고, 외국인들도 특별 허가와 비자를 받아야 동유럽 나라를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구소련이나 폴란드, 그당시 북한과 상황이 많이 비슷했던 루마니아는 엄청난 규모의 교도소와 같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인권 유린, 정치 탄압과 식량부족 때문에 어렵게 살면서 그 어두운 세상을 떠날 수도 없고, 바깥세상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위험한 망명의 길을 선택한 용감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고향에 남아 있는 가족들은 항상 공산주의 당국의 보복 행위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반대로 공산체제에 도전하려는 자유민주주의 세계에서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기 2년전인 1987년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에 도전한 서독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1987년 5월 13일, 19세의 마티아스 루스트라는 청년이 모스코바 ‘붉은 광장’에 소형 비행기 '세스나'기를 착륙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루스트는 핀란드에서 이륙해 소련의 방공망을 피해 ‘붉은 광장’에 착륙하면서 소련과 미국이 군비 확장 경쟁을 하는 가운데 소련의 방공망의 헛점과 소련군의 비효율성에 대한 논의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루스트는 나중에 언론 단체와 인터뷰를 하면서1986년 당시 핀란드 수도인 레이캬비크 미국과 소련간에 정상회담에서 핵군축 회담이 실패하고 교착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실망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루스트는 ‘세스나’ 비행을 통해 동서독일과 동서유럽을 잇는 교량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고 했습니다.
서독 젊은이 루스트가 소련 당국에 의해 재판을 받아 소련 교도소에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루스트가 모스크바 중심지에 있는 ‘붉은 광장’에 착륙하면서 그의 역할이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소련의 방공망과 군사력에 대한 논의를 불러 일으켰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또한 당시 개혁과 개방을 고려하던 소련 공산당 서기장인 고르바초프가 ‘루스트’ 사건을 구실로 개혁과 개방을 반대하던 많은 소련군 장군들을 해고시키며 소련과 동유럽이 해방되는데 간접적 영향을 주게 되었습니다. 서독 청년 ‘마티아스 루스트’가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 소형 비행기 ‘세스타’를 착륙시키면서 붉은 제국이던 소련의 군사력에 도전했습니다. 무단 월북을 한 로버트 박씨는 북한의 경제.정치 탄압과 인권 침해에 도전한 것입니다. 19세밖에 안된 루스트는 그당시 명성을 얻고 싶다는 의도도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나이가 더많고 설교활동과 봉사활동이 활발했던 박씨는 북한 주민들의 생활 개선이 목적입니다.
혼돈 이론에서 ‘나비 효과’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 개념은 초기값의 미세한 차이에 의해 결과가 많이 달라질수 있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작고 힘없는 한 나비의 날갯짓이 먼곳에서는 돌풍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박씨가 북한 당국에 의해 구속되면 그의 무단 월북 사건이 그러한 ‘나비 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