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코프] 신의주 특구의 교훈

란코프 ∙ 한국 국민대 교수
20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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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최고인민회의는 2002년 9월 12일 신의주를 특별행정구로 지정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실험의 시작이었지만, 이 실험은 국내외 여러가지 요소 때문에 사실상 시작도 못했습니다. 오늘날 신의주 특구는 거의 잊혀졌습니다.

중국 경제 기적의 핵심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경제특구였습니다. 등소평은 남중국의 여러지역을 경제특구로 지정하고 외국 자본을 많이 유치했습니다. 1980년대 중국은 아직 국가소유를 중심으로한 사회주의 국가였는데요. 하지만 경제특구는 국가사회주의 바다에 있는 자본주의 섬의 역할을 했습니다. 즉 경제특구는 경제기적이라는 벼의 모판 역할을 한 것입니다.

북한 정권은 2000년대 초 경제 특구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가졌는데요. 특히 북한에서 특구는 정치입장에서 매우 높은 추가가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2002년 김정일은 특구를 만들기로 했는데 1990년대 초 나선 특구와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나선 특구 실패의 이유를 분석했습니다.

북한 정권이 파악한 나선 특구 실패의 이유 중 하나는 지리적 이유입니다. 너무 멀고 주변에 인구도 별로 없으며 철도나 포장도로도 없는 지역입니다. 그래서 2002년에 김정일은 신의주를 후보지로 정했습니다. 지리적으로 신의주는 거의 완벽한 지역이었습니다. 중국과의 국경에 위치하며 철도와 포장도로도 아무 문제 없었습니다. 인구도 많아서 노동력과 인재도 많았습니다.

북한 정권이 나선 특구에서 얻은 두 번째 교훈은 나선에서 국가의 간섭과 통제가 너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신의주 특구를 거의 자유 경제지역으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홍콩과 비슷한, 자치권이 매우 높은, 거의 독립지역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신의주 특구에서는 별도의 법률을 적용하고 화폐는 달러를 쓰기로 했습니다.

북한정권이 나선에서 얻은 세 번째 교훈은, 북한 간부들이 특구를 관리할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북한정권은 신의주 특구의 책임자로 외국사람을 임명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양빈이었습니다. 양빈은 당시에 중국에서 두 번째로 돈이 많은 사업가였습니다.

하지만 신의주 특구는 제대로 시작도 못했습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중국의 반대가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중국측은 자신들의 허락 없이 북한이 대규모 사업을 시작하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중국은 신의주 특구가 성공한다면, 중국 기업의 경쟁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양빈은 중국에서 비리와 불법행위가 많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도박사업과 관계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중국측은 신의주 특구가 마카오보다 악명이 더 높은 도박, 마약, 불법행위의 소굴이 될 수 있다는 공포가 있었습니다.

북한측이 양빈을 책임자로 임명한지 보름도 지나기 전에, 중국당국은 양빈을 체포했습니다. 그 후에 신의주 특구는 사실상 무너졌습니다. 김정일은 얼마 후 다시 경제개혁에 대한 관심이 사라졌습니다. 경제특구 이야기가 다시 나온 것은 김정은시대 들어서입니다. 우리는 신의주 특구 소동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특구는 그저 국내 문제가 아니라 국제 문제입니다. 외부 세력과 협력하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 이 칼럼내용은 저희 자유아시아방송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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