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기획, '김부자 실체'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어떻게 권력을 장악하게 됐는지 그 과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지난주에는 후계자 자리를 놓고 김정일과 계모 김성애와 그의 자식들이 경쟁을 벌였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1973년 김정일에게 곁가지를 제거할 결정적인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73년 여름, 김일성이 당 간부들을 데리고 김일성 광장 뒤에 있는 언덕에 올라갔습니다. 그곳은 김일성이 인민대학습당을 지으려고 했던 명당자리였습니다. 그런데 그 부지에 웬 저택이 들어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 집은 김성애의 남동생 김성갑이 어머니 고영칠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당시 평양시당 책임 비서인 강성산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던 김성애에게 점수를 따기 위해 김성갑과 그 어머니가 살 수 있는 집을 지어준 것이었습니다. 강성산은 김일성의 장모가 그 집에 살고 있으니까 김일성이 알게 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김일성은 불같이 화를 냈으며 이 일을 두고 김성애와 갈등을 빚었습니다. 김정일은 아버지와 계모 사이에 불화가 생긴 틈을 타서 그동안 자신이 비밀리에 뒷조사 했던 계모의 비리와 월권행위들을 아버지께 모두 고해 바쳤습니다. 또 김성애의 남동생 김성갑이 아편을 맞고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렸습니다.
김정일은 이 사건이 터진 후 공개적으로 평양시당과 중앙여맹에 검열단을 보내 대대적인 내부 검열을 벌였습니다. 평양시당 검열단은 김성갑의 비행을 그리고 중앙여맹 검열단은 김성애의 비행과 그 추종자들을 가려냈습니다. 김정일은 5개월간에 걸친 검열 자료들을 김일성에게 보냈고, 이에 따라 74년 평양시 당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이들에 대한 공개비판 회의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평양시당 책임비서 강성산은 자아비판을 통해 검열내용이 사실임을 확인했습니다. 김일성은 관련자들을 모두 직위해제 시키라고 지시했습니다.
김일성의 지시로 김성애의 동생 김성갑과 김성호는 직위해제 되어 연금상태에 들어갔고 김성애는 일절 공개 석상에 참석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김성애는 이와 함께 6개월간 김일성하고 떨어져 자모산 별장으로 보내져 근신해야 했습니다. 또 김성애의 추종자들은 전원 농촌과 탄광으로 쫓겨 갔습니다. 이 사건으로 김성애는 자신의 첫아들 김평일을 후계자로 세우려 했던 야망을 포기해야 했고, 김정일은 성공적으로 곁가지를 제거하게 됩니다. 이 사건 이후 북한에서 신문 방송 출판물에서 김성애의 이름과 사진은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됩니다.
한편, 김정일이 후계자 자리를 확고히 하는 데는 빨치산 원로들의 지지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과 함께 활동했던 빨치산 1세대들은 김정일 편이였습니다. 탈북자 김철혁씨는 김정일은 자신을 지지해준 빨치산 원로들에게 지금도 최대한의 대우를 해주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철혁: 김일성은 당시 측근 속에서 김평일을 지지하는 사람과 김정일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파가 갈리었어요. 그런데 김정일이가 김평일이보다 사악하니까 김일성한테 갖은 아첨을 다해서 본인이 공식 후계자로 지명되자마자 김평일과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싹 다 제거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두둔해준 김일성의 측근들은 아직도 대단한 호강을 하고 있습니다.
김정일은 빨치산 원로 가운데서도 특히 자신을 적극 지지해준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이 사망하자 혁명열사능에 묻어주고 그의 생애를 다룬 영화도 제작해 주었습니다.
워싱턴-이수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