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어떻게 권력을 장악하게 된 과정 중에서 곁가지의 몰락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지난주에는 김정일이 계모 김성애의 남동생 김성갑이 인민대학습당 부지에 집을 짓고 거주한 사건을 계기로 김성애와 그의 자식들을 제거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당시 김정일에게는 경계해야할 또 다른 세력이 있었습니다. 바로 김일성의 친동생이자 김정일에게는 삼촌인 김영주입니다. 김영주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직비서겸 조직부장이라는 핵심 요직에 있으면서 김일성 다음가는 실세였습니다.
남한에 망명한 황장엽 전 조선 노동당 비서는 한때 김정일과 김영주간에 권력 다툼이 있었다고 증언한 바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남한 고려 대학교 북한학과 유호열 교수는 김영주는 김일성의 후계자로 강력히 거론되던 인물이었으나 건강이 나빠 후계자 자리를 김정일에게 뺐길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유호열: 김영주가 김일성 후계자로 거론이 되던 인물 중에 하나였는데 김정일이 후계자로 선정되는 과정에서 밀려나서 숙청됐다는 가능성, 또 하나는 김영주가 건강상의 이유로 김일성이 볼 때 김영주가 쉬는 것이 좋겠다. 권력투쟁이건 자질면에서 김일성이 판단을 했던 김정일이 후계자가 되면서 김영주는 자연스럽게 물러나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신경계통에 질병을 앓던 김영주는 1973년 조직비서 자리를 김정일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한직으로 물러나 있으면서 신병치료에 전념했습니다. 그러다 그는 1975년 가족과 함께 평양에서 멀리 떨어진 자강도 강계로 떠납니다. 당시 김영주의 맏딸은 김일성 종합대학에 그리고 아들 둘은 남산 고급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북한에서 제일 좋다는 학교에 다니던 자식들까지 모두 지방으로 전학시켰습니다. 그 후 그는 93년 다시 평양에 돌아와 부주석겸 정치위원을 맡기까지 20여년 동안 세상에 나오지 않고 칩거했습니다.
김정일은 이처럼 후계구도에 방해가 될 만한 세력을 모두 제거한 후에도 그들에 대한 감시와 경계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이를 위해 김정일은 당 조직지도부 내에 '제10호실'을 운영하며 이들의 동향을 낱낱이 보고받고 있습니다. 특히 김정일은 김성애의 큰 아들이자 이복동생인 김평일에 대한 긴장을 늦추지 않았습니다.
김정일은 결국 1979년 말 김평일을 유고주재 북한 대사관으로 보내더니 그 후 헝가리, 불가리아, 핀란드, 폴란드 등 동북구 유럽을 전전하게 했습니다. 김정일은 심지어 94년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도 김평일을 장의 위원회 명단에서 제외시켰습니다. 부친상을 당했는데도 장의위원회에서 빼버린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김정일이 이처럼 김평일을 경계한 것은 김평일의 뒤에는 김일성과 인민무력부장 오진우라는 막강한 지지자가 있었기기 때문으로 풀이합니다. 김일성은 키도 크고 얼굴도 자신을 빼닮은 평일을 유난히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게다가 평일은 성격이 과묵하고 신사적이라서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대중적 성품이어서 김일성은 이런 김평일을 장차 조선인민군을 이끌 장군감으로 마음을 두고 그에 대한 교육도 일찍이 군사쪽으로 방향을 잡아 주었습니다. 김일성의 구상은 당은 정일, 군은 평일이었다는 것이죠.
그러나 김정일은 인민무력부장 오진우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 군부의 확고한 지지세력을 갖게 됩니다. 여기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다음시간에 계속하겠습니다.
워싱턴-이수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