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권력장악 과정 중에서 군 장악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지난주에는 김정일이 후계자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던 계모 김성애와 삼촌 김영주 등 방해세력을 모두 제거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자신의 걸림돌을 제거한 직후인 1974년, 김정일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5기 8차 회의에서 정치국 정치위원으로 선출됐습니다. 노동신문은 이 시점부터 김정일에게 '당중앙'이라는 호칭을 사용합니다. 이로써 김정일은 조선노동당 정치위원회 위원이자 중앙당 조직비서겸 조직지도부장, 그리고 사상담당 비서겸 선전선동부장이라는 막강한 직책을 가지며 실질적인 후계자로 공식 등장한 것입니다. 당시 김정일의 나이는 33살이었습니다.
김정일은 김일성 다음으로 권력의 2인자 된 이후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바로 군에 대한 영향력 확대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권력 승계에 대한 내부적 반발에 대비해 가능한 빨리 권력의 기반인 군을 장악해야할 필요성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남한 고려대학교 북한학과 유호열 교수는 김정일은 군 경력이 전혀 없다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당시 군대 내 핵심간부들을 자기 사람으로 끌어들이면서 군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해 갔다고 설명했습니다.
유호열: 김일성이 김정일을 데리고 군부대 시찰을 하다보면 군 핵심 간부도 알게 되고 군의 실정을 알게 되고, 그리고 그 이후로는 집중적으로 군의 실력자들과 인맥을 쌓고.. 현역으로 군대 생활을 안했을 뿐이지 군에 대한 여러 가지를 충분히 습득할 수 있었습니다.
김정일은 먼저 군내 당 조직 계통을 이용해 이용무 총정치국장, 김응도 선전부장 등 총정치국 핵심 간부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김정일은 군부내 최고 실세인 오진우를 자기편으로 만드는 데는 어려움을 겪습니다.
오진우는 김일성이 빨치산 시절 데리고 있던 당번병 출신으로, 76년부터 95년 사망할 때까지 무려 20여년 동안 인민무력부장을 지냈습니다. 그는 김일성과 같이 담배를 피울 수 있을 정도로 수령의 절대 신임을 받고 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진우는 처음부터 김정일보다는 이복동생인 김평일을 낳은 김일성의 후처 김성애의 집안과 더 가까웠습니다. 오진우의 집은 김성애의 남동생 김성갑의 집의 바로 옆집이여서 두 집안이 왕래가 잦았습니다.
또한 오진우의 차남과 김평일의 동생 영일이 친구여서 아들을 통해 김평일에 대한 얘기를 듣곤했습니다. 당시 오진우는 김일성이 평일을 군사의 재목으로 키우고자 한다는 뜻을 알았기에 김평일을 눈여겨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일의 신임을 받던 총정치국장 이용무가 오진우에 의해 숙청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오진우는 김정일만 믿고 권력을 남용하던 이용무의 비리를 김일성에게 보고했고 김일성은 즉각 이용무를 직위 해제했습니다. 그리고 오진우에게 이용무가 맡던 총정치 국장직을 겸임토록 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총정치국장을 통해 군내부 세력을 확장하려 했던 김정일의 계획은 차질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되자 김정일은 군부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오진우를 제거하든지 아니면 내편으로 만들어야 된다는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김정일이 오진우를 제거하기 보다는 자기편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다음 시간에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