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자실체: 김정일의 통치 시대 개막

주간 기획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실체’ 오늘은 김정일의 권력 장악 마지막 순서로 김정일의 통치 시대 개막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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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은 1980년 10월 개최된 제 6차 당대회에서 중앙위 위원, 정치국 상무위원, 군사위 위원으로 선출되면서 드디어 공식적으로 아버지의 절대 권력을 위임받고 정치 전면에 등장했습니다. 앞서 설명한대로 김정일은 인민무력부장 오진우등 권력의 핵심인사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숙청하는 등 그동안 정치 기반을 다져온 결과였습니다. 이때부터 김정일에 대한 호칭도 '당중앙'에서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로 변했습니다.

고위급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당 간부들은 어떤 사안에 대해 김일성과 김정일의 의견이 다를 경우 누구 말을 들어야 할지 몰라서 당황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8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대부분의 중요 정책 사안들이 김일성에게 보고되기 전에 김정일에게 먼저 보고되는 체계로 바뀌었으며, 김일성의 시력이 안 좋아진 이후부터는 아예 김일성에게 문서 보고를 금지시켰다고 합니다.

대신 필요한 부분만 수령에게 육성 보고하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80년대에도 김일성은 여전히 수령으로 군림하고 있었지만 김정일은 아버지와 똑같은 동급으로 실질적 권력을 행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정일이 자신의 통치 시대를 위해 가장 역점에 둔 것은 무엇보다 세습 정당화였습니다. 그는 이를 위해 김일성의 신격화를 선포하고 개인숭배 선전을 대대적으로 벌였습니다. 세계최대의 인물동상인 김일성 동상과 김일성 개선문, 주체 사상탑, 15만석 규모의 5.1 경기장, 이 모두가 김일성 우상화의 일환으로 김정일의 주도하에 건설된 것입니다. 그는 또 혁명전통을 과장하고 신비화 했으며 주민들에게 북한의 정권도 경제도 문화도 다 김일성이 마련해 준 것으로 선전했습니다.

특히 그는 '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 10대 원칙'을 강화해 법보다 더 엄격한 규율로 만들었는데, 이 10대원칙은 사실 김정일이 지난 74년 정치국 정치위원으로 선출돼 후계자로 등장하면서 사상교육을 위해 만든 자신의 작품입니다.

탈북자 김춘애씨는 북한 주민들은 헌법이나 형법보다 10대 원칙을 더 무서워한다고 말했습니다.

김춘애: 10대 원칙은 김정일의 말씀입니다. 10대 원칙과 어긋나게 생활하면 김정일의 권위와 위신을 훼손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범 수용소도 갈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남한에 망명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그의 저서 '북한의 진실과 허위'에서 김정일은 김일성 우상화를 통해, 김일성이 만든 국가를 김일성 마음대로 자기 아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나쁠 것 없다는 사상을 주입시키려 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황 전 비서는 김정일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북한주민들의 눈과 귀를 막고 많은 시간을 강연회와 학습회 영화 연극 감상화, 충성결의 모임 등에 참여하도록 하는 등 오직 수령 우상화 선전만 받아들이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러나 우상화 정책은 주민들에게 커다란 고통과 부담을 안겨주고 북한을 몰락의 길로 몰고 있는 것이라고 비난했습니다.

김정일은 이후 91년 12월 인민군 최고 사령관, 그리고 93년 4월 국방위원장에 선출되면서 군부를 완전히 장악하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게 됩니다. 그는 김일성이 사망하자 97년 10월에는 당규약 24조에 명시된 당 전원회의 선출절차를 무시하고 당 총비서직을 승계했습니다.

워싱턴-이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