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기획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실체’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영화광 김정일의 신상옥 최은희 납치사건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김정일의 영화사랑은 도가 지나쳐서 북한 영화 발전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남한의 영화인들을 납치했습니다. 김정일은 남한 여배우 최은희를 먼저 납치한 후 최은희를 미끼로 1978년 신상옥 감독을 홍콩에서 납치했습니다. 당시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씨는 한때 결혼했다 이혼한 사이로 남한을 대표하는 유명 영화인들이였습니다.
신상옥, 최은희씨가 북한을 탈출한 후 쓴 수기 '우리의 탈출은 끝나지 않았다' 에 따르면, 신상옥 감독은 북한에 납치된 후 2번이나 탈출을 시도했지만 실패한 후 5년 가까이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1983년 3월, 납북된 지 5년만에 김정일이 주최한 연회장에서 김정일을 처음 대면하게 됩니다.
그는 또 그 연회장에서 먼저 납치된 최은희와도 재회했습니다. 신 감독은 그날 김정일이 '신선생, 나의 연극을 용서하시오. 그동안 참 고생 많이 시켜서 미안하게 되었소'라고 말했다면서 '연극을 용서하라'는 김정일의 말의 함축적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김정일은 또 신 감독에게 북한 영화의 낙후 실상을 설명하면서 북한 영화의 질을 높이고 북한 영화인들에게 새 신을 신겨줄 영화인이 필요했다면서, 이를 위해 신감독과 최은희씨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는 것입니다.
앞서 신상옥 감독은 생전에 남한 한국영상자료원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일은 자유가 없는 독재 체제 아래서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북한 영화의 발전을 위해 서방 세계의 영화 제작 기술과 문화를 잘 아는 자신을 납치한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신상옥: 김정일이가 볼 때는 이북의 체제가 자기가 만든 것인데 그것을 풀 수는 없고 내가 제작이라든지 예술적 능력이라든지 다 가지고 있으니까 내가 자기 구미에 제일 맞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우리를 조직적으로 납북한 것이니까...
김정일은 신상옥 감독을 영화 고문으로 임명하고 최은희씨와 함께 본격적인 영화 제작을 시작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신 감독에게 새로운 영화 촬영소를 만들어주고, 해외에서의 촬영도 허락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신 감독은 1978년 납북 때부터 1986년 탈북하기 전까지 북한에서 <탈출기>, <돌아오지 않는 밀사>, <소금>, <심청전> 등 총 7편의 영화를 만들어 북한 영화 중흥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한편, 남한 여배우 최은희씨는 납북된 후 김정일 초대소에 머물며 우상화 학습을 받으면서, 밤이 되면 김정일이 여는 연회에 불려 다녔습니다. 최씨는 연회의 단골손님인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 장성택 부부와 조사부장 이완기, 부부장 강해룡, 김주영, 외교부 부부장 김용순, 외교부장 허담 부부등과 친분을 나누기도 했는데요, 김정일은 연회에서 최은희씨에게 남한 노래 이별이나 하숙생, 찔레꽃등을 불러보라고 시키는 등, 남한에서 유행하는 노래를 좋아했다고 최씨는 수기를 통해 밝혔습니다.
최은희씨는 신상옥 감독과 함께 신감독이 만드는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하며 북한 연기자들과 호흡을 맞췄는데요, 특히 그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신상옥 감독의 영화 '소금'은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북한 영화를 전 세계 알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신상옥 최은희씨는 김정일의 특별 대우에도 불구하고 지난 86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자유를 찾아 서방으로 탈출했습니다. 신 감독은 북한을 탈출한 이후 남한과 해외에서 작품활동을 해오다 올해 4월 11일 북한에서 얻은 간 질환으로 인해 80세를 일기로 그의 영화 같은 삶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워싱턴-이수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