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기획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실체’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영화광 김정일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김정일 관련 자료에 따르면, 대학시절부터 영화에 매료돼 빠져 지내던 김정일은 대학 졸업 후에도 정치에 참여하면서 예술 분야에서 적지 않은 일을 했습니다.
김정일은 우선 북한의 영화 촬영소를 현대화했습니다. 소련과 서구에서 현대적 영화제작설비를 들여오고 조총련의 돈으로 영화촬영소를 대대적으로 확장했습니다. 북한에 납치됐을 당시 평양의 조선예술영화촬영소를 방문한 적이 있는 신상옥 감독은 자신의 수기에서 촬영소의 엄청난 규모와 미국의 큰 영화사에서나 사용하는 최신 장비를 보고 놀랐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관련 자료에 따르면, 김정일은 또 문화 예술인에 대한 사상 학습을 강화하는 한편, 그들에 대한 처우를 대폭 개선해주었습니다. 문화 예술인들을 당원으로 만들어 주고 능력이 있어 보이는 연출가와 배우들을 소련으로 보내 영화제작을 배우게 했습니다.
이와 함께 이들만의 예술인 전용 상점을 여는가 하면, 출퇴근용 버스와 옷과 식품까지 공급해 줬습니다. 명절이나 특별한 날이면, 선물로 시계나 전축 텔레비전등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김정일은 문화 예술인들을 위한 체육대회도 자주 개최했는데 '영화'라는 축구팀을 만들어 영화인들의 사기를 높여 줬습니다. 이렇게 되자 김정일은 문화 예술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아졌고, 김정일에 대해 '지도자 동지'라는 호칭도 이 무렵 문화 예술인들로부터 맨 처음 나온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김정일은 특히 선전선동부 부부장, 당 조직과 선전담당 비서를 지내면서 북한의 영화 예술 을 김일성 우상화 사업에 적극 활용했습니다. 당시 그의 지도아래 만들어진 영화가 '유격대 5형제' '한 자위단원의 운명' '피바다' '밀림아 이야기하라' '꽃파는 처녀'등인데, 주로 항일무장투쟁이나 김일성 주석 가계 등을 다룬 작품입니다.
실제로 가극, '피바다'와 '꽃파는 처녀'는 김일성 우상화 작업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데요, 김일성은 처음 가극 '피바다'를 보고 나서 크게 감동해 이때부터 김정일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인정했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 탈북자 이영학(가명)씨는 자신이 북한에 있었을 때는 김정일이 탁월한 예술적 능력을 가지고 많은 영화들을 지도했다고 믿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러나 남한에 와서 다양한 외국 영화들을 접해보니 북한 영화들은 오직 사상교육을 위한 영상물 수준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영학: 김정일이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많이 공개했어요. 김정일이 영화에 대해서 깊은 천재적인 소질이 있다고 많이 떠들었습니다. 좋은 영화들이 나오면 김정일이 다 지도했다 이런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꽃파는 처녀'등 대작이 많이 나왔는데 지금 여기 와서 생각하면 사상면을 너무 부각하다 보니까 예술적인 면이 뒤떨어지고, 북한에서는 영화를 영화 학습이라고 하니까 영화 자체가 혁명성 있는 영화가 되어야 하니까 질이 떨어지죠.
한편, 북한에서 새로 만드는 모든 영화는 김정일 한사람의 철저한 검열을 받아야 비로소 완성된다고 합니다. 김정일은 작품이 완성되기 전 분리돼 있는 화면과 목소리 대사, 음악, 효과등을 하나하나 검열하는데 그의 최종 승낙이 있어야 작품은 햇빛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김정일 이외에는 새 영화에 대한 비평을 할 수 없고 그가 좋다고 해야 좋은 영화로 통용됩니다. 한마디로 북한 영화는 모두 김정일의 통제 하에 만들어 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김정일의 영화사랑은 그 도가 지나쳐서 북한 영화 발전을 위한다는 목적으로 남한의 영화인들을 납치하기에 이릅니다. 김정일은 남한 여배우 최은희를 미끼로 1978년 홍콩에서 신상옥 감독을 납치했는데요, 신상옥 최은희씨의 납치 얘기는 다음 시간에 계속 하겠습니다.
워싱턴-이수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