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기획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실체’ 오늘은 세 번째 순서로 김정일 국방 위원장의 여자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북한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가족관계는 철저히 비밀에 가려져 왔습니다. 외국의 대통령들이 외교행사에 늘 부인과 동반하는 것과는 달리 김정일은 공식적인 자리에 부인을 동반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탈북자 김태진씨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부인이 누구인지도 모르며, 그의 여자관계에 대한 소문을 듣더라도 이를 누설하면 처벌받을까봐 모른 척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합니다.
김태진: 한 때 김일성의 후처 김성애가 정계에 나서서 김정일이가 그것을 곁가지라고 때린 일이 있었어요. 그래서 북한 사람들이 김정일이의 와이프도 안 나오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북한에는 김일성과 김정일 이외에는 다 곁가지라고 세뇌가 됐어요. 그래서 사람들도 김정일에 부인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3:34 김정일은 남이 데리고 살던 여자도 데려다 살고 망신스럽잖아요.
외부세계에 알려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본처는 김영숙입니다. 김영숙은 함경북도 안전국 전화 교환수로 일하다 중앙당에 와서 김정일을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1974년에 결혼했으며 설송이라는 딸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김영숙은 김정일과 정식으로 혼인했다는 사실 외에 구체적인 신상이나 얼굴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본처 김영숙을 만나기 전에 성혜림이라는 여자와 장기간 동거했습니다. 유명 배우 출신이었던 성혜림은 남편이 있는 유부녀였습니다. 성혜림과의 사이에 김 위원장은 아들 정남을 낳았습니다. 김 위원장은 성혜림과의 동거 사실을 아버지 김일성에게도 비밀로 했습니다. 후에 성혜림은 스위스와 러시아에서 장기간 머물며 요양하다가 2002년 모스크바에서 63세로 사망할 때까지 극도의 불안과 신경쇠약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또 다른 부인으로 알려진 고영희는 가장 오랫동안 동거한 여자입니다. 고영희는 재일교포 출신으로 북한 만수대 예술단 무용단원으로 활동하다가 1970년대 중반 김 위원장의 눈에 띄어 동거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후 고영희는 80년대 들어 평양에 위치한 김정일 위원장의 자택에 들어가 살았으며 그가 각지로 이동할 때마다 수차례 동행하는 등 사실상 영부인의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고영희는 2004년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암치료 중 52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김정일은 고영희와의 사이에서 두 아들 정철과 정운을 두었습니다. 최근 김정일의 후계자로 이 두 아들 가운데 한명이 유력하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은 자신의 비도덕적인 여자문제가 폭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수많은 예술인들을 수용소에 보내고 소문이 확대되지 않도록 주변사람들을 억압해 왔습니다. 북한 무용배우 출신 탈북자 김영순씨는 성혜림에 관해 얘기했다는 죄로 요덕수용소에서 8년이나 수감생활을 했습니다. 김영순씨의 말입니다.
김영순: 성혜림하고 동창이거든요, 중국에서 공부할 때 저의 상급생이었고 잘 아는 사이였어요. 그때 성혜림이 5호댁에 들어갔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5호댁은 김일성 가계거든요. 그래서 알게됐고... 성혜림은 김정일의 아내도 아니며 아들을 낳은 적도 없다 이것은 전부 유언비어라는 것을 다시는 담지 말라는 것을 다시 협박했습니다.
한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지금 말씀드린 여자들 이외에도 젊은 시절부터 많은 여자들과 관계를 가져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고위층 탈북자들의 증언과 해외보도에 따르면, 김정일은 주 러시아 대사 손성필의 여동생 손희림, 여배우 홍영희, 주 튀니지 대사의 처 이상진등과도 단기간 동거한 적이 있습니다.
이수경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