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장명화 jangm@rfa.org
북한을 탈출한지 15년이 지나도록 어디에도 국적이 없이 살고 있는 한 탈북자가 있습니다. 북한주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는 남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채 주변인으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의 고통, 남과 북의 분단만큼이나 아픕니다.

(국가인권위원회 7층) 네. 국가인권위원회입니다. 무슨 일로 오셨죠? 차별... (진정서 제출자) 얼마나 기다려야하나요? 한달? 중간에 경과를 알려면요? (접수자) 조사관마다 다 달라요. 조사관이 일단 배정되야되요. 이 사건이 차별사건인가요?
제법 두툼한 서류뭉치를 책상위에 내려놓습니다. 서류뭉치 맨 위에는 “‘무국적 탈북자’ 김천일씨에 대한 보호결정 재심사와 관련법제 개선을 위한 민간단체 진정서‘”라는 굵은 글씨가 크게 눈에 띕니다. 정작 국적이 없는 탈북자라는 김천일씨는 자신의 처지를 판단해줄 것을 신청하는 이 자리에조차 서있지 못합니다. 그는 아픕니다.
(김천일) 저도 어쨌든 지금 현재로서는 여기까지 왔으니까 남한에서 죽고 싶어요. 보금자리 얻어서 와이프하고 행복하게, 편안하게 그렇게 살고 싶어요.
김씨는 함경북도 경성군 종합식료공장 보일러공으로 근무 중이던 1992년에 탈북했습니다. 중국 땅에서 20차례나 탈북자로 신고돼 북송위기에 처했고, 천신만고 끝에 2004년, 남한에 입국했지만, 중국으로 추방됐다 다시 남한으로 돌려보내진 비운의 망명잡니다. 민간단체를 대표해 진정서를 제출한 북한인권시민연합의 이영환조사연구팀장입니다.
(이영환) 중국으로 강제 추방시켰지만, 중국정부에서도 김천일씨를 중국인으로 볼수 없다 해서 다시 한국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북한으로 강제 송환시키지 않은 것을 무척 다행으로 여기지만, 어쨌든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 2005년 초였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2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김천일씨는 한국에서 중국인, 불법입국자로 취급받고 있는 상황에서 오갈 데 없는 무국적자의 상황으로 되어있습니다.
김씨가 북한공민에서 무국적 불법체류자로 전락한 것은 무엇보다도 그의 아버지가 중국인이었다는데 그 이유가 있습니다. 김씨에 따르면, 중국인이었던 그의 부친은 일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북한말로는 ‘엘리뜨’)로 만주지역에서 항일 무장투쟁을 지원한 것이 인연이 돼 1945년 북한당국의 초청을 받아 입국했습니다. 부친은 평양에 살면서 김씨의 모친과 결혼해 삼남매를 두었습니다. 외무성 산하 조선 중앙방송위원회에서 번역원으로 근무하던 아버지는 하지만 김씨가 세살 때인 1966년에 종파분자로 몰려 숙청돼 경성군으로 추방됐습니다.
(김천일) 저희 부친이 써먹을 때는 써먹고, 필요없을때는 헌신짝처럼 차버린다고 그러더라구요. 그래 저는 그 사회에 어떤 모순을 느꼈어요. 그래서 결국 나오게 됐습니다. 저의 장래도 발전도 없고해서요.
하지만 희망을 찾아 나온 바깥세상에서 김씨는 탈북자도 아니고 중국인도 아니고 남한인도 아닌 소위 ‘무국적자’인 자신을 발견합니다. 때문에 수차례 베이징 남한대사관과 선양 남한영사관에 보호를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습니다.
(이영환) 한국과는 달리 북한은 양계혈통주의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국적법상에는 부모 어느 한쪽이라도 북한사람이고, 거기서 자녀가 북한 내에서 출생했을 때는 자동적으로 북한국적이 부여됩니다. 그러니까 김천일씨는 기본적으로 북한국적을 가지고 태어났고 또 북한에서 30살까지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에 이 사람은 사실상 국제법상에서 볼 때도 사실상 북한주민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는데....
김씨는 지금 외국인 불법체류자를 수용하는 외국인 보호소에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불법체류라는 불안정한 신분과 취업제한 규정 등으로 인해 최소한의 생계조차 유지하기 힘듭니다. 일용직 노동자로 돈을 모아도 은행에 저축하기조차 힘듭니다.
그래도 신체의 자유가 구속된 외국인 보호소 생활보다는 훨씬 낫다고 김씨는 덧붙입니다. 지난해 보호해제 당시 도움의 손길을 펼쳤던 사람은 역시 불법 체류자로 몰려, 중국, 일본, 남한을 14년간 떠돌다 탈북자 지위를 인정받은 탈북자 김용화씨였습니다.
(김용화) 법무부 국적과에서 뭐라고 하냐면, 자기네한테는 관계없는 일이고, 북한에다 확인하는 것은 정부가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해요. 하지만, 김천일이 같은 사람은 북한사람이예요. 천일이 같은 경우는 북한의 확인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구요, 거 북한에 엄마가 살아있다는 것은, 제가 천일이 고향사람들도 몇사람 만나봤어요. 그러니까 북한에서 출생해서 북한에서 북한교육을 받고…. 이것은 분명히 대한민국에서 살려줘야 될 사람인데, 너무 힘들게 만들고 있어요.
김천일씨의 30세에 시작된 자유세계에서의 평범한 삶을 향한 길고도 험한 여정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