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통제구역” 저자 북한정치범수용소 경비원 출신 탈북자 안명철씨 회견

서울-전수일 chuns@rfa.org

탈북자 안명철씨.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선전하는 북한에 세계에서 가장 악랄하고 지옥같은 곳, 바로 정치범수용소를 세상에 알리기위해 또 다시 책을 냈습니다. 지난 94년 북한을 탈출해 남한에 입국한 안씨는 입국 1년뒤 정치범수용소경비대원이었던 자신의 경험을 수기로 엮었습니다. 하지만 남한의 햇볕정책 이후 북한주민들의 참담한 인권상황이 많은 한국인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기억하기도 싫은 악몽같은 8년동안의 수용소 경비원 생활을 “완전통제구역‘이란 새 수기로 다시 펴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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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범수용소경비대원 출신의 안명철 씨, 최근 정치범수용소의 실상을 파해친 책 '완전통제구역'을 발간 - RFA PHOTO/전수일

안명철씨는 1969년 2월 함경남도 홍원군에서 태어났습니다. 1987년 19살 때 당 비서였던 부친의 배경 덕분에 좋은 부대라는 정치범수용소 경비병으로 입대했습니다. 그후 8년동안 함경북도 종성에 있는 13호 수용소, 회령에 있는 22호 수용소, 그리고 평양시 승호구역에 있는 26호 수용소에서 근무하면서 정치범들의 노예같은 중노동과 굶주림 그리고 짐승같은 생활을 목격했습니다.

신병교육을 정치범들에 대해서는 때릴 수 있고 사살 할수 있고 너희 맘대로 할 수 있다” 고 교양 받았다던데?

안명철: 그건, 상사가 아니고 김정일의 교시가 있다. 교시는 ‘도주하는 자는 무조건 잡아야 합니다’ 김일성 교시도 프로레타이라 독재맛을 톡톡히 보여줘야 합니다‘ 로 돼있다. 북한사회는 김일성 김정일 교시, 지시에 의해서만 움직여야 하는 사회고 상급자들도 그 지침에 의해 움직여야 한다. 이에따르면 얘네들이 ’도주하거나 반항하면 사살해도 되고, 말 안 들으면 때려도 된다. 그걸 수시로 항시 좀다. 안때리면 이상한 것이다. 안때리면 ‘네가 동정하냐?” 하고, 그래서 안때릴수 없다. 괜히 트집잡아 때리고.“

안씨는 이 수기의 부록에 신원이 기억나는 수용소 사람들 35명의 명단을 적어놨습니다. 그중에 두 사람에 대한 기록이 이상했습니다. “ 김복남 25세, 평양시 보위원 출신으로 수용소내 의사에게 강제수술받아 사팔뜨기가 됐다. 김경찬 35세, 부친이 무력부 장령으로 강제 맹장수술당함.” 어째서 강제수술을 받게 됐는지 물어봤습니다.

안명철: 정치범들을 상대로 막 찢어가지고 자기 해보고싶은 대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해서 익힌 기술을 갖고 경비대원과 보위원을 치료하는 것이다.

또 정치범들의 굶주림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사례를 적고 있습니다. 돼지에게 주는 국물에서 건더기를 건져먹는 정치범들, 또 풀을 몰래 뜯어먹다가 무장 계호원에 걸려 개처럼 매맞는 정치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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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통제구역' 겉표지 - PHOTO courtesy of 시대정신

얼마나 배고프기에 풀을 뜯어 먹나? 주는 식량이 적나?

안명철: 적은 정도가 아니고 목숨만 붙어있을 정도만 준다. 먹고 죽지않을 정도의 식량만 준다. 일은 최대한 많이 시키고. 어떤때는 애들이 (정치범들을 ‘애’라고 지칭) 소똥 배설물에 소화안돼 남은 옥수수알을 물에 가져가 헹궈서 먹는다.

또 안씨는 이 책에서 여성 정치범들 중 일부는 수용소 내 보위원들의 정부 노릇을 하거나 성 노리개로 전락한 실제 사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안명철: 보통 보위원들이 30, 40대인데 아무리 사상이 강해도 성에대한 그런 것이 있다. 그리고 수감자들은 사람도 아니고. 어치피 죽을 사람들인데. 얼굴도 반질한 사람도 있고. 한번씩 건드리고. 대신 섹스는 안한다. 가지고 장난은 쳐도 섹스는 안한다. 수용소안에서도 하는 말이 ‘너네 맘대로 하되 하지만 마라’ -성교는 하지 마라- 그 이유는? 섹스를 하게 되면 반동하고 붙은 거다. 그럼 사상이 잘못됐다고 해서 보위원도 처벌받는다.

수용소내에서는 정치범들을 조로 나누거나 수용소 내의 마을 단위로 책임자를 정해놓고 이들로 하여금 다른 동료 정치범들을 통제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일부 정치범 책임자들은 보위원들과 경비대원들의 환심을 사기위해 그리고 좀더 수용소 생활을 편하게 지내려고 동료들을 매우 포악하고 잔인하게 다루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안명철: 여자 배구선수였다. 북한 4.25 배구선수단 선수였는데 키가 작고 60년 국제대회까지 나갔던 여자다. 이름은 기억 안 난다. 그 여자가 사을리 작업반장을 했다. 작업반장은 그 마을의 총 반장이다. 달구지를 끌고 가던 남자가 싣고 가던 옥수수를 떨어뜨려 소똥위에 떨어졌다. 옥수수를 못 먹게 되자 그 여자가 나무방망이로 그 남자를 죽일 것처럼 무섭게 때렸다. 옆에서 봤는데 말리고 싶더라. 경비병이라서 못 말렸다. 그 사람 너무 맞아 팔 뿌러지고 갈비 뿌러지고 장난 아니었다.

안씨는 자신도 다른 경비대원처럼 정치범들을 많이 때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운전병 직책을 맡고부터 정치범들과 개인적인 접촉이 많아지면서 이들에 대한 느낌이 달라졌다고 합니다. 계급적 원수들이 인간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안명철: 경비대가 때린 만큼 나는 때리지는 말자. 불쌍한 사람들 때리지는 말자. 그렇다고 도와주거나 한 것은 아니다. 때리지 말자는 생각으로 바뀌고 완전히 바뀌게 된 것은 저의 아버지도 당하게 되니까. ‘이 사람들이 이렇게 돼서 왔구나’ 해서 완전히 바뀌게 됐다.

1994년 아버지가 당한 사연을 안씨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당시 함경도 지역은 식량사정이 극도로 악화돼 있었다. 그래서 굶는 사람이 속출했는데 양정사업소에서 일하시던 아버지가 식량을 부탁하는 친구들과 이웃사람들에게 강냉이를 몰래 갖다 주었다는 것이다.... 검열단이 내려와 검열을 하다가 아버지를 절도범으로 몰았던 모양이었다.” 그해 1월 안씨 부친은 양잿물을 마시고 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안명철: 아버지가 음독자살을 했다. 돌아가시자 검열했던 사람들이 당 정책 위반자라고 해서 엄마도 수용소로 잡아가고 내동생도 데려가고.

계급적으로 변질한 반역자의 자식으로 낙인찍힌 안씨는 수용소 군관들과 경비대원 동료들의 집중적인 감시가 늘어나면서 결국 탈북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해 9월 두만강을 건너 탈출에 성공합니다. 그리고 길림에 사는 한 친절한 조선족 할아버지의 도움으로 하얼빈에 있는 한국영사관을 접촉해 탈북 한 달만에 남한에 입국합니다.

안명철씨는 입국후 건국대학교에서 공부할 때 만난 남한 여대생과 결혼했습니다. 현재 농업협동조합에서 과장대리로 근무하고 있는 안씨는 열 살과 네 살난 예쁜 딸 두 명을 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