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에서 사랑받는 ‘노란샤스의 사나이’

서울-장명화 jangm@rfa.org

한국의 국민가요는 많습니다. 그 중에서도 첫 번째는 단연 ‘노란샤쓰의 사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북한에서 나온 실향민이면서 가수로 성공한 한명숙씨의 노래와 인생을 서울에서 장명화기자가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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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향민이면서 가수로 성공한 한명숙씨 - RFA PHOTO/장명화

북측의 수해복구를 지원하는 물자가 배편으로 북으로, 그것도 남포로 들어간다는 소식을 들으면, 왕년의 가수 한명숙씨는 그 배를 탄 듯한 감상에 젖습니다. 가수 한명숙.

(음악: 노란샤쓰의 사나이) 한명숙: 가고 싶죠. 진남포가 방송에서 제일 많이 나와요. 왜냐면 물건을 싣고 그리로 가니까. 인천항에서 물건을 싣고 이북에 가져가는 지원품이 남포항에 도착했다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가고 싶죠. (기자: 남포하고 진남포하고 가깝나요?) 남포가 진남포예요. 원래 진남포인데, 이북에서 남포라고 이름을 줄였어요.

그녀의 대표곡인 ‘노란 샤쓰의 사나이’는 1961년, 6.25 전쟁이후 어수선한 사회분위기에 의기소침해진 국민들에게 의욕을 북돋운 노랩니다. 다소곳하고 수동적인 여성상을 강조하던 때, 어떤 남성이 좋다는 식으로 직설적으로 발언하는 당찬 느낌을 주면서 새로운 시대를 엽니다.

(노란샤쓰의 사나이) “노란 샤쓰 입은 말없는 그 사람이 어쩐지 나는 좋아 어쩐지 맘에 들어”

바이올린의 경쾌한 연주에 역시 밝은 조로 어우러지는 기타의 협연, 게다가 쉰 듯한 한명숙씨의 노래는 해방 후 최대의 인기를 얻습니다. 1961년 12월 당시까지 5만장이라는 최다 판매고를 기록합니다. 음반 판매점에서는 음반만 판 것이 아니라, 노란 샤쓰까지 파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한명숙: 택시뿐만 아니라, 노래 따라 한다고, 또 일부러 노란 샤쓰를 입고, 굉장했죠. 진짜. 예를 들어, 막말로 하다못해 속옷까지 노란 팬티, 양말까지 노란양말, 그렇게까지 (노란) 색깔이 유명해졌죠.

‘노란 샤쓰’의 위력은 한국 내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1960년대 어느 방송인이 말한 것처럼 그야말로 한국이 아니라 전 세계를 노랗게 물들였습니다.

한명숙: 우리나라, 일본까지도 히트한 노래는 많지만, 세계적으로 우리나라 가요가 이렇게 보급된 노래는 그 노래밖에 없어요. 또 프랑스 샹송가수 이베트 지로가 서울에 와서 취입도 하고 그 노래를 불렀어요. 자기남편이 아코디언, 작곡가였는데, 여기서 취입했죠. 또 일본가수도 몇 사람이 불렀어요.

북한에서 이 방송을 들으시는 청취자들께서도 이 노래 아시는 분 계시죠? 북한 주민들이 가장 즐겨 부르는 한국가요 최고 인기곡 중에 한명숙씨의 ‘노란 샤쓰의 사나이’가 두 번쨉니다. 물론 북한에서 이 노래는 금지곡입니다. 지난 2005년에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 이금룡씨입니다.

이금룡: '노란 샤쓰'는 다 알아요. 영화로도 한번 나왔었거든요. 영화가 '어머니 소원'이었나? 그 영화에서 안기부 사람들이 캬바레 같은데 가서 이 노래에 맞추어서 춤을 추는 장면이 나와요. (기자: 북한에서 만든 영화예요?) 예. 북한에도 남한, 반탁영화들 있거든요. 거기서 한국노래를 쓰거든요.

‘노란 샤쓰’는 북한주민뿐만 아니라,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애창곡입니다.

한명숙: 김일성이가 한명숙이 왜 안 데려왔냐고 그랬다는데요. 나도 몰랐는데, 어떤 기자가 그런 이야기를 했대요. 이북에 다녀와서 왜 ‘노란 샤쓰’부른 아가씨 왜 안 왔냐구요.

남북한에서 사랑받는 이 노래가 처음 세상에 나온 지 46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정말 무엇이라도 잊혀질 만한 시간입니다. 하지만, 이 노래는 아직도 젊은 가수들이 새로 부를 정도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27살의 인기가수 ‘린’이 부르는 ‘노란 샤쓰의 사나이’입니다.

(열린 음악회: ‘린’이 부른 ‘노란 샤쓰의 사나이’)

내일은 북한을 떠나 한국에서 가수로서 성공하기까지 한명숙씨가 남쪽에서 살아온 삶을 들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