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장명화 jangm@rfa.org
민족 명절 추석이 불과 며칠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탈북자들의 추석맞이 표정을 읽어봤습니다.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김철웅씨의 하루하루는 화려합니다. 대학 교수로, 연주가로, 또 대학원 학생으로 눈코 뜰 새 없습니다. 하지만, 며칠 남지 않은 한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연휴에는 한산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가 나가는 학교도 추석 때는 문을 닫기 때문입니다.
(기자)추석에 뭐하세요? (김철웅) 아무것도 안 해요. 갈 데도 없고.
김씨는 올해로 남한에서 다섯 번째의 추석을 맞습니다. 아직도 이맘때가 되면, 북녘에 두고 온 가족 생각에 가슴은 저립니다. 자기 때문에 당 고위 간부인 아버지와 대학에서 강의하던 어머니 등, 고생하지 않아도 될 가족들이 고생하고 있기에 마음은 더더욱 아립니다.
북한 동의사 출신 박명순씨도 마음이 아픕니다. 단신으로 남한에 온지 넉 달이 채 되지 않았기에, 더욱 착잡합니다. 시장에 나가보면 추석을 앞두고 선물용품들이 쌓이고, 선물꾸러미를 사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 한이 없습니다.
(박명순) 저는 추석이 돌아오니까, 마음은 저 북한에 부모님들도 계시고 (울먹임) 그래서 강원도에 가서 부모님이 계신 고향을 한번 바라다보고 싶고요, 아버지에게 멀리서라도 절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첫째구요...
탈북자 정경일씨의 경우는 그래도 낫습니다. 그나마 가족들과 함께 입국해 서로 보듬으며 외로움을 달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한에 들어온 지 오늘로 4개월째. 모든 것이 아직도 낯설기만 하지만, 부모, 아내, 아이들이 있기에 감당하기에 벅찬 남한 생활을 헤쳐갈 수 있습니다.
(기자) 추석명절이라고 해서 선물할 생각 있으세요? (정경일) 아 물론 있죠. 물건을 사려고 하지 않구요, 그저 돈으로 만원씩 주려구요. 부모님한테는 이만 원씩 주려고 합니다.
정씨는 이번 명절에 길게는 9일까지 쉴 수 있습니다. 직장동료들이 함께 등산하자고 졸랐습니다. 하지만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북한 최고 학부인 김일성 종합대학을 나온 엘리트지만, 남한에서는 새로 배울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래서 정씨는 초조합니다.
(정경일) 제가 능력이 아무래도 이 남한사회에 대해 모르구요, 아무래도 그런데 오란 사람들은 많은데 시간이 없잖아요. 아무래도 책을 그 기간동안에 많이 봐야할 것 같아서요.
정씨같이 공부할 것과 읽을 책이 산적한 최영화씨는 세종대학교 졸업반입니다. 최씨는 지난 2000년 4월 중국공안에게 붙잡혀 북한으로 강제송환됐다가 다시 탈출해 남한으로 들어왔습니다. 혼자 남한에 입국해 명절만 되면 착잡해 지지만, 올해는 자기보다 힘든 사람들을 찾아서 외로움과 그리움을 이기기로 마음먹습니다.
(최영화) 살다보면, 처음 몇 년간은 마음이 좀 그렇긴 한데, 그게 좀 무덤덤해져서... 외국인 노동자들 음식 해주는데 가서 봉사하려고 해요.
추석을 맞아 모두들 분주한 가운데서도, 탈북자들을 위한 다양한 행사가 마련되고 있습니다. 탈북자들이 1000명 가까이 거주하고 있는 서울 양천구에서는 오늘 오후 탈북자 90명을 초청해 임진각에서 합동 차례를 지냈습니다. 전라남도 광주에서는 탈북자 100여명과 함께 오는 23일 합동차례를 지낼 예정입니다.
탈북자만 80명이 나오는 평화통일교회의 전도사인 강철호씨는 교인들과 함께 이번 주말과 추석당일에 통일전망대를 두 차례 방문할 예정입니다. 10년 전 남한에 온 뒤, 남한여자와 결혼해 가정을 꾸린 강씨는 하루 속히 반쪽짜리 추석이 온전하게 될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강철호) 탈북자들에게는 반갑지 않은 명절이죠. 솔직히. 이런 날이 되면, 부모 생각나고, 고향 생각나고 해서 마음이 괴롭죠. 빨리 통일이 되서 우리도 남한사람들처럼 똑같은 기분으로 명절을 맞아야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