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은 남한에서는 어버이 날입니다. 이 날은 거리 곳곳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직장에서 어버이 가슴에 꽂아드리는 카네이션 꽃을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랜 분단의 세월만큼 남한 사람들의 어버이날과 북에 가족을 두고 탈북자들이 맞는 어버이날은 사뭇 달랐습니다.

서울거리 곳곳에는 어버이날을 즈음해 예쁘게 장식된 카네이션 꽃바구니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꽃을 파는 주인은 꽃이 예년에 비해 덜 팔렸다면서 울상입니다.
꽃장사: 카네이션이 예전 같지 않네요. 낮에는 조금 팔렸는데 팔릴지 안 팔릴지 모르겠어요. 오늘 12시까지 이 장사를 할 생각인데 모르겠어요.
남한은 지난 1956년에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1973년부터는 어머니날을 다시 어버이날로 이름을 바꿔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어버이들은 자식들이 가슴에 달아준 빨간 카네이션을 달고 자랑스럽게 하루를 보냅니다. 취재차 찾은 꽃집에서 만난 40대 가정주부인 이은영씨는 너무 바쁘게 살다보니 어버이날마저 잊고 살 때가 있다고 말합니다.
이은영: 어버이날이 어린이날과 너무 붙어 있고 공휴일이 아니라서 요즘 젊은 부모들, 초등학교 학생이 있는 부모들은 자식 어린이날에 치중하다보면 깜빡하고 넘어갈 수 있다는 겁니다. 나도 잊어 버렸기 때문에 ... 요즘 10대 청소년들이 공부하고 입시 공부에 너무 몰입을 하다 보니까 몰라요. 부모가 오히려 공부하라고 어버이 공경에 관한 것을 등한시하잖아요. 하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우리 아이들이 카네이션을 안가지고 와서 꼽아주지 않으면 너무 섭섭하잖아요.
이씨는 일년 중 하루만 어버이날이라고 정해서 기념하는 것이 조금 불만스럽다고 말합니다. 어버이날이 지나치게 장삿속으로 흐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말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어버이 날인 8일 서울 시내의 음식점들은 부모님을 모시고 나온 사람들 때문에 수입을 많이 올리고 꽃 장사들은 몇 배의 가격으로 카네이션을 파는 등 어버이날의 진정한 의미가 많이 퇴색된 것 같은 느낌 때문입니다.
이은영: 핵가족화가 되니까 우리가 어렸을 땐 대가족 문화라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어우러지는 분위기가 됐는데 지금은 손자들 간의 간격이 나뉘어졌어요. 가운데 부모가 있지만 단절이 됐어요. 할머니 할아버지와 손녀 손자의 관계는 없어져버렸잖아요.
그러니까 어버이날 무슨 선물 갖다 드리고 하루 폼 잡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진자 온 가족이 어울려서 할아버지 할머니가 자손들을 보면서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 돈 봉투 갖다 주고 이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 것 같아요.
같은 시간 지난 2003년 남한에 입국한 한 탈북여성은 어버이날이 괴롭습니다. 지난해 북에 살고 있는 어머니를 남한으로 모셔오려고 시도했다가 실패를 했기 때문에 이 어버이날이 더욱 한스럽습니다.
탈북여성: 시간만 있으면 엄마를 하루라도 빨리 데리고 올까 어쩔까 하는 생각도 들고 보고싶죠, 어머니 생각이야...
최근 딸까지 순산하고 보니 더욱 어머니의 정이 그립습니다. 구수한 냄새가 물씬 풍기는 미역국과 혹시라도 찬바람 들어갈까봐 덮은 이불을 다시 한번 만져주는 어머니의 따뜻한 손길. 이 탈북여성은 언제다시 어머니를 만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날을 기다리며 남한에서 어버이날을 맞았습니다.
탈북여성: 한국에 와서 제일 생각나는 것이 어머니 생일입니다. 어머니 생일에 내 손으로 밥 한끼 해주고 싶고...얼마나 사실지 모르겠는데 1년을 살아도 내손으로 밥 한끼 해주고 싶은 거죠. 어버이날이라고 꽃도 달아주고 싶어서 어제도 밖에 나갔다가 꽃 매장도 둘러보고 만약에 남한에 온다면 잘해주고 싶은 생각밖에는 안 나죠.
탈북 여성의 이런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부모와 자식간의 정이 더욱 살갑고 눈물이 날만큼 사무칩니다. 그러나 서울의 생활은 이런 정을 느끼기에는 너무 바쁜 것 같습니다. 서울 거리에서 마주친 30대의 남한 사업가 김영철씨가 변해버린 어버이날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잘 설명합니다. 김영철씨는 어렸을 적에는 초등학교에서 색종이를 접어 만든 카네이션을 부모님 가슴에 달아 드렸지만 어른이 된 다음부터 그가 맞는 어버이날은 달라졌습니다.
김영철: 나이가 어렸을 때는 학교에서 강요도 있었지만 용돈을 모아서 부모님에게 선물을 하는 것을 큰 것으로 삼았는데 이젠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용돈 좀 챙겨 드리고 그 어버이날의 의미가 크게 퇴색이 된 것 같습니다. 그냥 봉투(용돈) 하나 주는 날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자식을 두고 아이들에게 받아야 된다면 기다려질 것 같고 약간 설레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마음과 받았을 때의 마음은 다를꺼고 당연히 자식에게도 받고 싶겠죠.
북녘에 두고 온 어머니를 절규하듯 그리워하는 한 탈북 여성의 어버이날과 곁에 부모님이 계시지만 어버이날을 행사쯤으로 알고 지내는 일부 남한 사람들의 어버이날은 분단된 세월만큼이나 이처럼 뚜렷하게 대비됐습니다.
서울-이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