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장명화 jangm@rfa.org
지금 한반도는 급한 화해와 평화가 밀어닥칠 것 같은 분위기에 쌓여있는 듯합니다. 그러나 막상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은 그저 지켜볼 뿐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는 언제나 정치적인 것을 우선하기 때문입니다. 비무장지대 대성동 마을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진리를 확인시켜주고 있습니다.

가을태풍으로 억수같이 비가 내리는 오늘, 서울에서 두 시간 가까이 달려 도착한 대성동 마을. 북녘 땅과 맞붙은 이 마을에는 누렇게 익어가는 벼들이 저마다 고개를 숙이며 황금들판을 이뤄 멋진 가을 전경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마을의 김동현 이장입니다.
(김동현 이장) 저희는 수도작을 주로 하고 있구요, 밭작물은 집에서 먹을 것 좀 하고 있고, 남으면 팔기도 하구요, 콩도 재배하고 있구요, 또 인삼 등을 재배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조산리 대성동. 군사분계선과 불과 400m 떨어진 이곳을 사람들은 ‘자유의 마을’이라고 부릅니다. 판문점에서 서남방 쪽으로 1km에 위치한 대성동마을에는 현재 50여 가구, 182명이 살고 있습니다. 대성동 주민들의 주업은 농업으로 많지 않은 주민들이 100만 평의 농지에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대성동에 오기 전에 본 인터넷에 따르면, 가구당 연간 5천만 원 가까운 고소득을 올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무공해지역의 청정지역인만큼, 남측의 건강에 대한 관심 덕에 많이 팔린다고 김 이장은 말합니다.
(김동현 이장) 지금 햅쌀을 수확했는데, 지금 너무 소비자들이 많이 찾아서 동이 날 지경이예요. 저희 마을 생산품이요.

김 이장을 따라 마을 회관 옥상에 오르니, 손에 잡힐 듯 벌판 너머로 북한이 넘어다 보입니다. 맑은 날이면, 굳이 망원경을 통하지 않아도 개성공단이 보이고 개성공단을 오가는 차량들이 다리를 건너는 것도 훤히 보인다는 설명입니다.
(김동현이장) 아, 이것 밤에는요, 저희 마을보다 더 밝아졌어요. 저 건넛마을이요. 옛날에 깜깜했었는데, 지금은 뭐 여기가 어두워져썽요. 저쪽에서부터 개성공단이 여기까지 보이는데, 야, 밤에는 정말 불야성입니다. 굉장히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아요.
50여 년간 외부의 손길이 닿지 않은 비무장 지대 내의 오염되지 않은 공기, 맑은 물, 건강한 토양의 청정지역. 환경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대성동 마을 사람들은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남자들은 군대를 가지 않습니다.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됩니다. 학생들은 사는 동네에 따라 당국에 의해 학교를 배정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남측 어느 곳에 있는 학교든 지역을 가리지 않고 원하는 학교에 진학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전선 마을인 만큼 제약도 적지 않습니다.
(기자) 여기서 일상 생활하시는데, 무슨 빵을 먹고 싶다거나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거나 이런 생활하시는데 불편함은 없으세요? (김동현이장) 저희 마을에 보시다시피 좀 외따로 떨어져 있는 마을이라 편의시설이 없어요. 그래서 장을 보려면, 지금도 문산에서 왔는데, 문산에 나가서 장을 보고 있죠. (기자) 그러세요. 그럼 나가실 때마다 가득 사가지고 오셔야겠네요? (김동현이장) 네. 냉장고를 한 세 개씩은 채워놔야죠. (기자:) 그래요? (이) 네. (웃음)

외출했다가도 해지기 전에 돌아와야 하는 등 유엔군 사령부의 통제에 따라야합니다. 미리 약속을 해놓지 않은 상태에서는 마을주민들과 함부로 접촉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실제로, 오늘은 빗줄기가 너무 거세, 거리에 사람들이 없어, 방문자들이 개인집으로 들어가려 하자 금방 제지당합니다.
북쪽의 거대한 인공기를 매일 아침 바라보면서 긴장을 일상처럼 껴안고 살아온 대성동 마을사람들. 이주일도 채 남지 않은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의 긴장이 한결 완화되기를 물론 기대합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냉전이념이나 상대방에 대한 갈등이 아니었습니다.
(김동현 이장) 저희가 남북대화, 우선 정상회담도 잘 됐으면 좋겠지만, 저희 마을이 그냥 순수하게 농사만 짓는 농민들만 사는 마을이에요. 그러다보니까 좀 태풍이 온다고 하니까, 벼가 쓰러질까봐, 아 지금같이 비가 많이 오지 말아야 되고, 우선 그런 걱정이 앞섭니다. 지금. 수확기의 농작물 다 망그러질까봐 지금 그게 걱정이죠.
이념이나 갈등도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설 수 없다는 자유주의 운동가들의 얘기를 대성동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의 얘기로 확인하게 됩니다. 자유의 마을, 대성동에 비는 계속 내리고, 오늘 취재에 나선 일행을 태운 버스는 다시 서울로 향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