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전수일 chuns@rfa.org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 만 여명 중에서 북한 최고의 엘리트 양성기관인 김일성종합대학 출신은 열댓명 가량도 안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중의 한 사람으로 남한 사회생활 석달밖에 안 되는 윤승현씨, 지금은 서울에서 북한사람들에게 남한과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전파하는 방송기자가 됐습니다. 전수일 기자가 윤씨를 만나봤습니다.

윤씨는 가명입니다. 아직도 북한에 남아있는 친척들의 신변 안전을 위해서라고 합니다. 서글서글한 눈매에 마치 20대 청년 같은 동안입니다. 하지만 윤씨는 청소년 아들 둘을 둔 장년입니다. 윤씨는 북한에서 김일성종합대학교 엘리트 출신답게 주체사상과 혁명사상에 투철한 정부 공무원으로 손색이 없는 삶을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뜻밖의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는 그랬다는 것입니다.
윤승현: 부모의 잘못으로 지방에 추방됐다.
부모가 무슨 잘못을 했나?
윤: 부모 자체도 모른다. 우리 부모가 김정일에게 기쁨을 드리고 충성을 다하자고 당시에 무역을 했다. 중국에 출장나왔는데 보위부에서 잡아갔다. 보위부 4국에서 담당했는데 나중에 추방된 뒤에 보위부 과장에게 물어봤더니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원칙을 어겼기 때문이라고 하더라. 아버지는 아직도 무얼 잘못했는지 모른다.
비록 부모와 자신의 가족들이 평양에서 쫓겨나 결국 북한을 탈출하기는 했어도 자신은 김정일에 충성하는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1999년 중국땅으로 탈출해 북한보다 자유롭고 잘사는 중국사회를 직접 보고, 또 신문과 방송을 통해 외부세계 물정을 알게 되면서 북한체제 유일사상에 대한 꿈에서 깨어나기 시작했고 남한으로 가야 되겠다는 결심을 세우게 됐다고 합니다.
윤승현: 그때 들었던 방송은 북한에 대한 방송이었는데 인권실태같은 내용이었는데 들어보니 조선이라는 나라가 김정일이 하나 때문에 인민들이 억압을 받고 인권유린을 당하고 있구나 하는 가슴아픈 감동을 느꼈다. 원래는 미국이나 남한이나 오지않으려고 결심했었는데- 거기서 배운 김정일 사상을 지켜보자고, 폭풍이 휘 몰아쳐도 그걸 지켜보려했는데 실제 tv도 보고 방송도 들어보고 현실적으로 느껴보고 하니까 이게 아니더라. 그래서 중국에 있으면 안되겠구나, 북한의 민주화를 위해서 꼭 미국이나 남한에 가야 되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하지만 윤씨는 중국에 간지 3년 안에 두 차례나 북한으로 강제 북송을 당했습니다. 한번은 중국 생활 1년만에 중국 조선족의 신고로 공안에 체포돼 북송됐고 또 한 번은 2천2년에 미국대사관에 진입했다가 역시 북한으로 강제 송환됐습니다. 북송된 후 수감됐지만 첫 번 째에는 2.16 김정일 생일날 특별 방면됐고 그 다음 번에는 정치범수용소로 옮겨지다 동료들 몇 명과 함께 탈출했습니다.
중국의 생활은 북한보다는 나았지만 말도 안통하고 아는 친척도, 친구도 없어 체류 초창기에는 먹고 살기가 정말로 어려웠다고 합니다.
윤승현: 솔직히 중국갈 때 정착금도 없고. 처음 나와서 길거리 다니면서 쓰레기 줍고 -온 가족을 살리자니- 말이 통하지 않으니 받는 사람도 없고, 마지막에는 묘지에 가서 버려진 술병도 주우러 다녔다. 가을철에는 감자 주워 팔고, 어렵게 살았다.
중국내 생활이 안정되면서 그런대로 살만했습니다. 하지만 남한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은 털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역자들이나 한국 공관을 여러 차례 접촉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합니다.
윤승현: 교회도 찾아가 보고 브로커도 찾고 어떤 때는 대사관에도 전화도 해보고. 북경에 대사관과 청도에 있는 영사관에 알아봤는데 영사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하더라.
결국 브로커를 통해 동남아시아 국가로 일단 넘어가기로 작정을 한 윤 씨는 다른 탈북자들과 함께 공안들의 감시를 피해 기차와 버스와 택시를 갈아타면서 천신만고 끝에 태국에 도착했지만 중국 감방보다 훨씬 열악한 태국 이민국 수용소가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윤승현: 내가 있던 감방에 129명 정도가 베트남 사람이고 탈북자는 11명 내지 15명정도였다. 베트남사람들하고 얼마나 싸움질 했는지 모른다. 마구 치고 박고 해서 경찰들이 들어와 보지도 않고 죽어도 모른다.
드디어 악몽같은 태국 이민국 수용소 체류 석달을 보낸 뒤 서울 갈 차례가 됐습니다. 그리고 비행장으로 갔습니다.
윤승현: 우선 제 자신이 믿어 안지더라. 꿈같기도 하고. 한걸음 한걸음 비행기 타는 순간까지 대한민국 간다는 게 인천공항에 내리니까 이젠 살았구나 정말왔구나. 이제는 남의 나라 땅에서 눈치보며 살고 자유없이 살던 것이 해방됐구나고 생각됐다.
이제 윤승현씨는 너무나 바라던 남한에 와서 또 그토록 되고 싶던 대북 방송 기자가 됐으니 이제 남은 것은 북한에 자유의 소식을 전하는 일에 매진할 뿐이라고 힘주어 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