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작가동맹에서 온 아줌마예요, 오늘은 아줌마가 여러분께 책 읽는 능력에 대해 이야기 해드리려고 해요. 아줌마가 지금껏 살면서 보니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능력은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능력이지만 그 외에 또 다른 큰 능력을 꼽으라면 아마도 책 읽는 능력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아줌마가 북한에 있을 때 김일성대학을 방금 졸업한 사람에게서 한번은 이런 말을 들었어요. “대학 5년간 얻었다는 게 겨우 책 읽는 능력뿐이다." 아줌마는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아, 책을 읽는 능력은 북한 최고대학에서 5년을 공부하고도 원만하다고 말하지 못할 만큼 힘든 것이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그런데 아줌마가 지내면서 보니 책을 읽는 능력은 일생을 통해 터득해 가는 것이더라고요. 아줌마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할 무렵, 북한에서는 반 수정주의 반 복고주의 투쟁이 살벌하게 벌어지면서 모든 교과서에서 외국문학, 역사문학이 일체 삭제되어 버렸어요. 인류의 지혜가 말살되어 버린 것이지요.
결국 아줌마는 9년제 의무교육을 받았다고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도 스무 살이 되도록 톨스토이, 셰익스피어, 하이네, 이규보도 모르는 아주 암울한 상태였답니다. 문자 그대로 문학문맹 상태에서 아줌마는 문학공부를 시작했어요. 처음엔 외국소설책을 읽고 아줌마가 필사공으로 일하던 출판사에 기자로 갓 배치되어 온 김일성대 졸업생 언니와 책 읽은 느낌에 대해 수시로 이야기 나누었어요. 그 언니가 지금 한국에 와 있답니다. 아줌마는 분명 책을 읽었는데 그 언니가 들려주는 책속의 사상과 인생의 진리들이 아줌마의 머릿속엔 전혀 없는 거예요. 책을 헛 읽은 거였지요. 아줌마는 아직 대학을 안 나왔을 때였거든요.
아줌마는 집에 돌아가 그 책을 다시 읽었어요. 기자언니가 얘기한 부분들이 이해될 때까지 말이죠. 다음 날 기자언니를 만나 그 부분을 깨달았다고 말하면 그 책을 또 다른 관점에서 읽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예요. 막 미칠 지경이었어요. 그래서 책을 다시 또 읽고 이해하고 토론하고...그렇게 약 몇 년간 걸쳤어요.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일류 평론가의 평론집과 그 평론이 다룬 작품을 구해 동시에 놓고 읽어나갔어요. 평론가의 평론을 통해 문학작품 읽는 능력을 배운 것이었지요. 대표적 예가 18세기 러시아 시인 푸슈킨과 벨렌스키 평론인데 이 두 분의 글은 아줌마가 북한에서 읽은 글들 중 아줌마의 인간과 생활을 이해하는 능력을 가장 풍부히 해준 글이 아닌 가 지금도 생각되어집니다.
하지만 아줌마의 독서능력은 제 경지에 오르지 못한 거예요. 북한의 유명 작가들이 신인들의 작품 평을 할 때 보면 그 점을 통절히 느낄 수 있었어요. 아줌마는 그 다음부터 아줌마가 쓴 작품에 대해 한 여성 소설작가와 치열하게 작업해 가는 과정을 통해 문학작품을 보다 생리적으로 읽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어요.
그렇지만 아직도 아니었어요. 한국에 와서 “빨간머리 앤”이나 “라퐁텐 우화집”을 아들애에게 읽어주면서 북한에선 이 책을 왜 그렇듯 대했을까 하는 자책감이 그냥 아줌마를 괴롭혔으니까요.
그 보다 더욱 자괴감을 느꼈던 일은 중국의 대문호 노신의 “아큐정전”을 한국에 와서, 그것도 최근에야 비로써 온전하게 이해했다는 정말 웃지 못 할 현실을 대하였을 때었습니다. 아줌마는 북한에서 노신의 세상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안목이 마음에 들어 자주 읽곤 했는데 왜선지 “아큐정전”에 이르러서는 그 작품이 말하고 전하는 뜻이 피부에 와 닿질 않는 거예요. 물론 “아큐정전”에 대한 평론도 수십 건 읽고 영화도 몇 차례 보고 그 작품이 발표되던 당시의 분위기까지 눈에 선했지요. 그런데 중요한 점은 “아큐정전”의 사상을 아줌마가 몸으로 절감할 수 없다는 점이었어요.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에서 1년 6개월을 쫓겨 다니고 숨어 다닐 때 힘없는 불쌍한 탈북자들을 개, 돼지만도 못하게 취급하는 중국당국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줌마는 15년간이나 이해되지 않던 “아큐정전”의 핵심 사상이 불이 번쩍 일도록 깨달아지는 것이었어요.
아줌마가 북한에서 “아큐정전”을 이해할 수 없었던 근본 이유는 중국인과 중국문화에 대한 현실 체험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했던 데 그 원인이 있었던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 책 하나를 제대로 읽는데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과 체험이 요구되느냐 말입니다. 아줌마가 한국에 와 보니 책을 제대로 읽을 줄 모르고서는 어떤 분야에서도 성공하지 못 하겠더라고요. 인간이 사회를 살아가는 데 진짜로 필요한 능력은 영어 단어 몇 개 외우고 컴퓨터 두드리는 것이 결코 아니더라고요.
시간이 많이 갔네요. 오늘은 이만하고 다음 시간에 재미있는 이야기 또 들려 드릴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