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여성: 희망을 등진 삶을 사는 북한 농촌여성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이 시간에는 농촌에서 태어난 그 한 가지 이유로 하여 희망을 등진 채 어두운 삶을 살아야만 되는 북한 농촌여성들의 문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북한 농촌여성들의 문제라고 하니 저의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농민 신분의 여자와 결혼하는 직장 남성은 여자를 따라 농촌에 ‘시집’와 대를 물려가며 농민이 되어야 한다고 절망에 차서 말하던 농촌 처녀들의 쓸쓸한 모습입니다.

아직 처녀 적에 이 세상의 가장 훌륭한 총각을 남편으로 맞아 둘이 손을 맞잡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깨가 쏟아지게 살고픈 꿈에 부풀어 있던 저에게 농촌 처녀들이 들려주던 그 말은 차라리 “다 죽어버리고 말자”는 뜻으로 어지럽게 들려올 지경이었습니다.

북한 농촌 여성, 하면 떠오르는 또 다른 문제는 바람 불고 비 오고 폭염이 쏟아지는 들판에 나가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곡식을 심고 가꾸고 김매고 걷어 들이고 탈곡해야 하는 힘들고 거친 일들을 소나 말처럼 맡아 해야 하는 농촌 여성들의 고달픔입니다.

북한에서 농촌에 동원 나가보면 남성 노력들은 달구지를 끈다, 비료를 타온다, 작업을 지도한다 하면서 힘들고 구질구질한 노동에서 요리저리 다 빠져 버리군 하였습니다. 힘없고 연약한 여성들만 농사일에 맥없이 내몰려 허리가 휘도록 일하군 하였습니다.

제가 여성으로써 더 가슴 아픈 북한 농촌 여성의 모습은 여성들이 골반을 지면에 마주대고 일해야만 하는 농촌노동의 비인간적인 자세였습니다. 여성의 골반 속엔 인간의 생명을 잉태하는 귀중한 자궁이 들어있습니다. 이 자궁은 골반을 통하여 바깥의 기운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골반이 음기 성분이 강한 지면을 늘 입 맞추듯 가까이 해야만 하는 열악한 노동환경에 북한 농촌 여성들은 대책 없이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자궁 속엔 자칫하면 냉기가 침습하기 십상이었습니다. 냉기가 침습한 자궁에 아기를 잉태하는 여성은 자신의 몸은 물론 그 몸에서 태어나는 새 생명도 발육에 지장을 받기 마련이었습니다. 그런데 북한의 농촌 노동제도는 인간존엄의 근원이 되는 이 문제를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제가 북한 농촌여성문제에 있어서 또 하나의 질곡으로 여겼던 부분은 하루 종일 들에 나가 힘들게 일하고 들어 온 농촌 여성들에게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막중한 가사노동 부담이었습니다. 평양에서 90년대 중반, 광복거리며 북새거리, 통일거리에 수돗물이 며칠씩 안 나나오는 통에 25~30층에서 물통을 들고 내려와 사방에서 물을 길어 올려가야 하는 아비규환의 사태가 벌어지자 시민들 속에 이런 말이 당장 돌았습니다. “집안의 물을 긷는데 머슴 한 명의 품이 든다”고.

여러분, 북한은 1970년 11월 제 5차 당대회 이후 농촌 마을의 수도화를 완성했다고 하지만 그 혜택을 실제로 받는 지역은 북한 전체 농가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최근엔 전기사정으로 상수도 펌프까지 돌릴 수 없게 되어 물 긷는 부담에서 벗어났던 수혜지역 농가들마저 물을 길어다 먹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북한에 있을 때 농촌지원 나가 일하면서 보니 농가마다 물 긷는 일은 말 그대로 하나의 전투였습니다. 주로 집안의 여성들이 물을 긷는 데 그들의 힘에도 한계가 있다 보니 아침이나 점심, 저녁 짬 시간을 이용하여 생활에 필요한 최소 양의 물 밖에 길어 들이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겨우 쌀을 씻고 설거지 하는 데 필요한 양이었습니다. 목욕은 보름 또는 한 달에 한번 가마에 끓인 물을 함지에 떠놓고 부엌에서 몸을 씻어내는 식이었습니다.

농촌 여성들의 생활을 가만히 살펴보니 한창 일이 바쁠 때는 일터에서 돌아와 밥을 해먹고 나서는 방 걸레조차 못 치우고 그 자리에 고꾸라져 자는 것이었습니다. 아침이면 대충 밥을 해먹고 세수도 못한 채 그나마 처녀들이라야 자고난 얼굴에 분이라도 허옇게 바르고 일하러들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하루 세끼 밥하고 집안 청소하고 하는 일들은 전부 여성의 몫이고 말입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문화생활을 즐기고 할 여가가 농촌 여성들에겐 거의 없었습니다. 수용소 울타리에 갇혀 눈뜨면 일하고 해지면 자야 하는 죄수의 신세와 별로 다를 바 없는 생활을 그들은 날마다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남한에서 농촌 여성들은 어떤 식의 삶을 살아갈까요? 남한의 농사일은 자식들을 도시에 내보냈거나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귀향한 사람들에 의해 대부분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농촌일은 거의 기계로 하는 통에 여성 노력들은 보조 일을 할 뿐이었습니다.

남한남성들이 가장으로서의 책임성이 유별난 탓에 힘든 일은 으레 남자들의 몫으로 여기는 풍토가 사회에 전반에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힘에 부치는 일엔 여자들을 내세우고 주먹 센 남자들은 빠져버리는 북한에서와 같은 비인간적인 현상이 이곳 남한에선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쌀독이 후하니 상대를 배려하는 의식도 넉넉해졌나 봅니다. 결국은 북한도 가망이 있다는 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지금까지 희망을 등진 삶을 사는 북한 농촌여성들에 대해 간단히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이만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다음 시간에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