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의 편지: 북한의 매형에게 보내는 편지
2006.08.02
남한에 정착한 탈북 언론인 한민(가명)씨가 역시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을 만나 이들의 애환을 들어보는 ‘탈북자의 편지’ 순서입니다. 북한 평양시에서 살다가 2002년에 한국으로 온 김창호(남자,39세)씨가 북한에 살고 있는 매형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매부에게 전합니다. 매부와 전화통화 한지 한 달도 안 되어 이렇게 편지를 보냅니다. 매부가 저에게 전화로 퍼붓던 욕설이 귀에 쟁쟁합니다. 반역자, 쓰레기, 인간추물...
매부가 5년 만에 전화로 만난 처남에게 붙여준 칭호들이 너무 요란합니다. 제가 그렇게도 몹쓸 사람이 되었습니까?
제가 탈북하여 남한에 왔다고 북에 있는 누나와 매부가 박해를 받은 일도 없는데 저를 철천지 원수 대하듯 하는지 저는 충분히 이해됩니다. 매부와 누나는 저를 두고 이를 갈며 밤잠을 못 잔다는데 저는 오히려 그런 매부와 누나가 불쌍하게만 느껴집니다.
매부와 누나가 보고 싶고 조금이나마 도와드리고 싶어서 어렵게 돈을들여 전화연결을 성사시켰더니 매부는 처남의 안부말도 듣지 않고 < 더러운 인간 쓰레기가 보내준 남조선돈은 안 받는다>고 했죠?
여기 남한에 온 수많은 북한사람들도 북한에 있을 땐 매부처럼, 아니 매부보다 더 했다고들 합니다. 진리를 발견 못하면 죽는 날까지도 그런 착각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답니다.
깨우치는 순간 사람은 완전히 딴 사람으로 되거든요. 매부는 제정신을 빼앗긴 상태에서 사는데 습관이 되어 저를 이해하지 못 하는 겁니다. 괴로워도 냉철하게 돌이켜 보시길 진심으로 권합니다.
제가 전해 듣기로는 매부 네가 작년겨울에 땔감이 없어 얼어붙은 냉방에서 방안에 비닐방막으로 천막치고 살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누나는 영양실조로 몸이 너무 약해 있다고 압니다. 제가 보내는 돈이 매부말대로 남한에서 번 돈입니다. 남한돈이라고 더럽다고 하셨는데 어느 계급교양 학습자료를 암기하고 계시는군요. 미국과 달러를 제국주의 상징으로 선전하며 주민들이 달러를 거부하도록 교육하는 북한이지만 매부같은 일반주민들이나 그렇게 생각하지 북한이라는 국가도 딸라가 없으면 국가운영도 못합니다. 전세계가 달러를 주요 화폐로 간주하고 살고 있는 세상에서 유독 매부만이 달러를 부정하다니 웃기지 않습니까?
내가 땀 흘려 일하고 월급 받은 돈을 누나와 매부에게 조금 떼어주는 것이 무슨 사상이 있습니까? 매부도 이젠 세상을 아셔야 합니다. 매부가 무지하면 우리누나와 조카들도 무지한 아빠를 믿고 그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아무런 창의심도 없이 당에서 하라는 일만 묵묵히 하던 고지식한 사람들이 고난의 행군시기에 어떤 꼴이 됐습니까?
자본주의 사상에 물젖었다고 비판 받으며 그래도 끈질기게 장사를 한 사람들을 보세요. 주위의 이웃이 무리로 굶어죽어도 끄떡없이 가족을 지켜낸 것을 보지 않았습니까!
매부, 저는 매부에게 반역을 부추기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지혜를 가지고 살라는 것 입니다. 별안간 갑자기 남북이 개방된다고 가정합시다. 집단경제체계의 북한 경제활동방식으로는 당장에 거지가 됩니다. 당과 수령께 충성하는 것보다 매부에게 더 중요한건 자신과 가족의 운명을 책임지는 것입니다. 매부가 아무리 당비서라지만 개별적인 일반 노동자중에 개인장사를 하는 친구들은 매부앞에선 < 비서동지!>라고 부르며 굽석거리지만 돌아서서는 < 무식한 기생충>이라고 욕합니다.
그들은 통일되면 매부같은 사람을 인부로 부려먹는 재능을 키우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공산주의 이상사회 건설한다고 반세기 넘도록 뛰어다녀도 이밥에 고깃국 먹으며 기와집 쓰고 사는 세상이 왔습니까? 도리어 점점 피폐해 지는 것이 사실 아닙니까?
남한에서 이밥에 고깃국 먹으며 기와집에서 살고 싶은 것이 소망이라고 말하면 웃 습니다. 70년대에 그런 소망은 실현 됐습니다.
저도 북한에서 살 땐 1년에 돼지고기 대여섯 번 먹어보는 정도였지만 여기 남한에 와서는 고기도 어느 정도 신선한가를 따지며 골라 먹는 답니다. 여기선 백화점을 < 마트>라고 하는데 누구나 가는 그곳에는 없는 것이 없고 열심히 일한 사람은 풍요롭게 향유할 수 있답니다.
매부가 저의 돈이 싫다니까 보내진 않겠는데 너무 참고 견디지 마십시요. 사람이 상합니다. 흑백텔레비전도 갖추지 못한 당비서 자리입니다. 매부네 뒷집 보세요. 그집 세대주는 이발사하면서 짬을 내어 시장에 나가 뛰어다니며 열심히 사는 덕에 매일 이밥에 고깃국을 먹으며 살지 않습니까?
매부는 모를 겁니다. 누나가 가끔 쌀을 꾸어오고, 반찬동냥을 해올 때 어디서 가져오는지 아십니까? 매부가 당 생활 총화 때마다 비판하는 장사하는 노동자들 입니다.
매부의 높은 당성 때문에 앞으로 누나가 동냥하기도 어려워 질것입니다. 누나의 헌신적인 행동으로 매부는 굶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을 동네 사람 다 압니다. 통일 되면 주위사람 부끄럽지 않도록 앞날을 예측하면서 지혜롭게 살아가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도 열심히 인생수업을 하며 삽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남한에서 처남 드립니다. 2006년7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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