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
말끝마다 ‘우리민족끼리’를 주장하는 북한이 미국과만 평화문제를 논하겠다고 제의해 그 배경에 주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지난 13일 북한군 판문점대표부는 “정전협정 제17항의 요구에 따라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보장과 관련한 문제들을 토의하기 위해 쌍방이 합의하는 임의의 장소에서 아무 때나 유엔대표도 같이 참가하는 조(북)미군부사이의 회담진행을 제의한다”고 밝힌바 있습니다.
노동신문 15일자도 이 소식을 보도한 로이터, BBC방송 등 여러 나라 신문 방송들의 보도를 소개하면서 마치 이 제안이 아주 각광을 받는 것처럼 보도했습니다.
북한은 “정전협정의 조항과 규정을 존중하며 집행하는 책임은 본 정전협정에 조인한 자와 그 후임 사령관에게 속한다”고 규정한 정전협정 제17항을 근거로 남한을 회담당사자명단에서 제외시키고 있습니다. 당시 한국은 정전협정이 분단을 영구화하고 북한의 재남침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정전협정에 서명한 미국 중국, 북한이 모여 회의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상 한반도 안보문제는 한국이 가장 큰 당사자입니다. 군사분계선상에 배치된 수만문의 각종 포와 수천기의 미사일, 핵무기로 무장한 북한군의 무력은 한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가장 큰 장애로 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가장 큰 국사인 안보문제를 외세와 토론하고 저들끼리 흥정해 적화통일을 꾀하고 있다는 비난을 낳고 있습니다.
북한의 남한무시 행위는 지난 과거에도 종종 연출되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70년대 평화체제 논의부터 시작해 1991년 한국군 장성이 유엔사령부 수석대표로 임명되었을 때에도 “명분도 없는 남조선군 장성이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로 임명된 것은 정전협정의 유명무실을 의미한다”고 반발한 바 있습니다.
6자 회담 수석대표 김계관 외무성 부상도 요즘 “북미 양자협의가 이롭다”면서 북미 협상에 적극적으로 매달리고 있습니다. 지난 1월 독일 베를린에서 힐 차관보와 김 부상이 양자협의를 통해 먼저 주요 현안을 협의하고, 6자 회담에서는 추후 확인하는 형식으로 연출되고 있습니다.
특히 영변 핵시설 폐기와 6자회담이 재개되는 등 한반도 평화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미국을 압박해 큰 장사를 벌일 것 이라는 추측을 낳고 있습니다. 북한전문가들도 “북한이 군사문제를 남과 북, 미국과 북한으로 갈라놓아 한미 군사동맹의 균열을 노리는 정략적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 왜 말끝마다 우리민족끼리를 외치는 북한이 남한을 배제하고 미국과만 양자협상에 매달릴까요?
현재 북한이 추구하는 대미, 대남정책은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입니다. 즉 기회가 불리할 때는 남한에 들어붙어 ‘우리민족끼리’를 외치며 경제지원을 받아내고, 정세가 완화되면 남한을 배제하고 미국과 장사해 큰 이익을 챙기는 것입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들어 북한에 지원된 쌀과 비료 등 지원물자는 정부 차원에서 현물로 1조 7,005억원, 민간차원의 5,998억 원을 포함해 총 2조 3,003억원(약 24억 달러)로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많이 퍼주었는데도 북한은 받아갈 줄만 알고 한반도 명운과 관련된 중대한 문제는 미국과만 논의하겠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북한이 군사회담제의를 다시 들고 나온 것은 한반도 핵 위협을 근본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반드시 폐기시켜야 할 북한 핵무기와 2003년부터 추출해온 고농축우라니움(HEU) 등 복잡한 사안을 6자 회담보다 북미 군사회담에서 군축 문제로 다뤄야 할 문제라고 주장하려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이 회담제의를 계기로 ‘우리민족끼리’와 ‘민족공조’가 얼마나 위선적인 구호인가를 다시 한번 스스로 드러내 보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