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말, 북한 말: 해외입양

이애란

지난 1일 제4회 세계한인 입양인대회가 과천에 있는 서울경마공원에서 열렸습니다. 이번 대회에는 미국, 독일, 스웨덴을 비롯해 15개 나라에서 모인 600여명의 해외 한인 입양인들이 참석했는데요, 5일 동안 열리는 이번 대회에서는 예술전시회, 학술대회, 한복 패션쇼 등을 통해 모국의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일 계획이라고 합니다.

일제의 식민지 통치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6.25 전쟁을 겪은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도 가난한 나라였고 당시에 많은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됐다고 합니다. 한국 출신 해외 입양인들은 2004년까지 20여만명으로 추정됐는데요.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고국에 대해 매우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해마다 3000여명이 대한민국을 방문해 자신의 뿌리를 찾고 모국의 문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북쪽에서 살 때 저는 남쪽에서 해외로 입양된 아이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그린 책들을 여러 권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해외로 입양된 아이들은 하나같이 노예처럼 취급받으며 폭력과 학대를 당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남쪽에 와서 보니 해외 입양아들이 성공해서 고국의 고국의 부모를 찾는 모습을 보면서 그 사람들을 입양해서 그렇게 잘 키워준 입양 부모들에게 감사를 넘어 존경의 마음을 갖게 됐습니다. 남한에서 본격적인 해외입양이 시작된 것은 1954년 이승만 정부가 보육원의 동의 없이도 해외입양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 ‘고아양자특별조치법’을 만들면서부터라고 합니다. 당시에 남쪽에는 10여만 명에 달하는 전쟁고아와 혼혈아들이 있었는데 이 문제를 해외입양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던 정부의 정책이 해외입양의 발단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55년 해리 홀트라는 미국인이 8명의 한국 어린이를 한꺼번에 입양한 것을 계기로 민간차원의 입양이 본격화됐는데요, 그 후 해리 홀트는 홀트아동복지회를 설립하고 고아들을 해외로 입양하는 역할을 담당했고 지금도 많은 아이들이 이 기관을 통해 해외나 국내의 여러 가정에 입양되고 있습니다.

최근 남쪽의 배우나 유명인들이 아이들을 입양하면서 입양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새로운 입양문화가 자리잡아가고 있는데요.

북쪽에서도 식량난을 겪으면서 버려진 아동들이 생겨나고 도시의 역전 플랫홈이나 시장에는 꽃제비로 지칭되는 거지 아이들이 거리를 떠돌다가 굶어죽고 있는데 이 아이들을 해외로 입양보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떤 경우에라도 생명은 존중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1999년 제1차 세계한인입양인대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0%가 대학졸업, 25%가 석사학위자로 미국의 평균 대학진학률 45%를 웃도는 고학력자라고 합니다. 또 경영이나 행정(30%), 인사(20%), 공연예술(9%)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는데요, 국가도 낳아준 부모도 양육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북쪽의 현실에서 해외입양이 적극 추진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가엾은 어린이들을 방치해서 굶어죽고 얼어 죽게 만드는 것은 또 하나의 간접살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저는 북쪽의 정부가 꽃제비아이들, 부모 없는 고아들, 부모가 양육 능력을 상실해서 버려진 아이들, 이런 아이들을 하루라도 빨리 해외입양이라도 보내서 훌륭한 인재들로 키웠으면 좋겠다고 제안합니다. 마음이 아프지만 북쪽의 꽃제비아이들이 해외 어디에서든 좋은 양부모를 만나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며 오늘은 여기서 마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다음시간에 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