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란
대학을 졸업한 30-40대 화이트 칼라들이 3년전 전북 장수군 계남면 호덕리 백화산 허리에 집을 짓고 동네를 새로 만들어 “하늘소 마을”이라고 이름을 지은 후 농촌생활을 시작한 것이 남쪽에서 첫 귀농마을이라고 합니다.
도시에서의 화려한 생활을 버리고 친환경적인 농사를 지으며 살겠다고 다짐하며 이곳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대부분이 농사일이 처음이라고 하는데요, 화려한 직업을 갖고 도시에서 남부럽지않게 살다가 스스로 농촌으로 가겠다고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들 12명이 농촌으로 들어와 생활을 시작했을 때 이 마을은 어설프고 황량한 언덕이었지만 지금은 아담한 집들이 들어서고 비닐하우스들과 토마토, 고추, 옥수수가 주렁주렁 열매를 맺어 풍요로운 마을로 변모했다고 합니다. 남쪽에선 이처럼 농사를 짓겠다고 결심하고 농촌으로 돌아가는 것을 귀농이라고 말합니다.
북쪽에선 결혼 지망생들이 제일 기피하는 상대 중에 농촌 연고자들이 속해 있는데 농촌에 고향을 두고 있거나 농촌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지요. 북쪽에선 해마다 한두차례씩 국가에서 농촌 연고자들을 뽑아 농촌으로 보내는데 이것을 농촌진출이라고 하지요.
간신히 도시에 진입한 농촌 출신들은 언제 농촌진출 대상자가 될 지 몰라 전전긍긍하며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데요, 그것은 더더군다나 거주의 제한이 있기 때문입니다. 남쪽에서는 본인이 원해서 서울에 살고 싶으면 살고 제주도에 살고 싶으면 제주도에 살고 원하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살 수 있기 때문에 농촌에 보낸다고 해도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북쪽에선 거주의 제한이 있어서 마음대로 이사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농촌진출은 가끔 사람들에게 정배의 의미를 주기도 하는데요. 적을 두고 일하는 곳에서 간부에게 밉보이거나 과오를 범하면 더욱더 농촌진출 1호 대상에 속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농촌연고자를 조사해 놓았다가 필요할 때마다 뽑아서 농촌으로 차출하는 현대판 노예문서 때문에 누구도 농촌 여성이랑 결혼할 생각이 없답니다. 심한 경우에는 본인은 농촌 출신이 아니더라도 부모가 농촌 출신이면 농촌진출에 걸리기도 합니다. 하여간 농촌진출령이 국가에서 내려오면 농촌에 고향을 둔 북쪽 사람들은 간이 콩알만 해지는데요. 숨도 못쉬고 직장 간부들의 눈치만 보다가 농촌진출자 명단에서 빠지면 안도의 숨을 쉬지만 또 언제 농촌진출자를 뽑을 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마음을 놓고 살수는 없는 일이지요.
북한에서 한동안 “도시처녀 시집와요”라는 영화를 만들어 주민들에게 학습까지 시킨 적이 있는데요. 그만큼 북쪽 처녀들이 농촌총각을 거부하고 또 도시총각들 역시 농촌처녀들이 아무리 인물이 뛰어나고 마음이 착해도 거들떠보지 않는 사회적 현상 때문이었답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이 영화를 만들어 학습까지 시키면서 농촌진출을 장려해도 북한 주민들은 여전히 농촌진출을 꺼립니다. 간혹 자원해서 진출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경우엔 보통 어차피 농촌연고자로 농촌진출에 걸릴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자신이 먼저 당에 충성심을 보여줘 간부자리를 노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북쪽의 농촌은 남쪽의 농촌에 비해 생활환경이나 노동환경이 엄청 열악합니다. 남쪽에 와서 살면서 여러 농촌을 가보았는데요. 북쪽의 도시보다 생활조건이나 노동환경이 훨씬 좋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저도 귀농해볼까 하는 생각도 든답니다. 시간이 다되어 오늘은 여기서 마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