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말, 북한 말: 체험학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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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란

한창 농번기입니다. 북쪽의 학생들은 아마 농촌동원에 여념이 없을 텐데요, 남쪽에서도 요즘은 어린이집과 초등학교들에서 어린이들과 학생들이 자연학습을 위해 농촌에 다녀오고 있답니다.

제가 남쪽에 와서 보니까 방학엔 물론이고 평상시에도 남쪽 어린이들은 수많은 체험학습기회를 가지게 되는데요, 교과서가 아닌 실제 체험을 통해 아이들은 자연의 신비와 과학의 비밀을 알아가고 있었습니다.

서울의 거리를 다니다 보면 어린이와 학생들을 위한 체험전 광고가 수많이 붙어 있는데요. 어떻게 보면 남쪽은 아이들의 천국 같기도 하답니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체험전들에는 세계의 곤충들을 모두 모아놓은 곤충체험전도 있고 먹어보고 만져보고, 듣고, 보고 하는 오감체험전도 있구요, 자신들이 직접 도자기를 만들어 보는 도자기 체험전도 있답니다.

산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체험학습을 통해 남쪽의 아이들은 더욱더 생생하고 폭넓은 지식을 습득해나가고 있는데요, 오늘은 체험학습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북쪽에도 현실체험이란 말도 있고 현장실습이란 말도 있는데 대표적인 체험학습으로는 농촌동원이 있지요.

남쪽과 북쪽의 체험학습은 질적으로 많이 다른데요, 남쪽의 체험학습은 자연과 과학의 모든 현상들을 실제 체험을 통하여 익히는 그야말로 현장을 통한 학습의 형태입니다. 북쪽학생들의 입장에서 보면 남쪽학생들의 체험학습은 들놀이 가는 것과 같지만 북쪽학생들의 농촌동원은 그야말로 식량증산을 위한 심한 노동이라고 봐야 할 텐데요, 남쪽의 학부모들이 아마 자신의 자녀들을 북쪽처럼 일을 시킨다면 나라가 뒤집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답니다.

북쪽학생들은 해마다 4월말쯤 되면 농촌동원을 나가는데 파종에서부터 김매기까지 70일이라는 긴 시간을 농민처럼 일을 하지요. 그리고 가을이 되면 또 추수를 위해 30일간을 농촌의 밭머리에서 보내야 하니 정규교육과정에 있는 학생들에게 그것도 성년이 아닌 어린 청소년들에게 해마다 1년에 100일간이라는 만만치 않은 시간을 농민과 꼭 같이 노동을 시키는 것은 세계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이한 현상이랍니다.

물론 간판은 교육과 실천의 결합이라는 사회주의 교육지침 때문이지만 실제로는 부족한 농촌의 인력을 보충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을 지각이 있는 북쪽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잖아요. 북쪽에서 이미 농민들은 도시 근로자들이나 학생들이 농촌동원 오면 지도 만하면 되는 지도농민으로 전락된 지가 꽤 오래 됐지요.

하지만 나라에서 해주는 무료교육 덕분에 국가에서 어떤 요구를 해도 불평을 할 수 없는 형편이니까 모든 부모들은 아이들을 농촌의 뙤약볕에 보내놓고 그리워하며 속을 태울 수밖에 없는데, 혹시 자녀가 아프기라도 하면 부모님들의 마음은 더욱더 찢어지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 현실이지요.

여러분은 잘 모르시겠지만 남쪽의 아이들도 북쪽아이들처럼 고등학교까지는 모두 무료교육을 받는답니다. 남쪽의 아이들은 1년에 방학이 3개월 이상이나 되고 학교에서는 어떤 일도 시키는 것이 없답니다. 심지어 학교의 식목사업조차도 다 학교재단에서 맡아 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공부 외에 다른 일은 전혀 할 수가 없답니다.

북쪽의 아이들은 오늘도 모내기에 동원되어 하루 종일 허리를 구부리고 모를 심느라고 얼굴이 퉁퉁 부어있고 학생들이 전용으로 맡아서 한다고 학생단지라는 이름까지 붙은 강냉이 영양단지를 찍어내느라 얼굴이 흙빛이 되어 고생하고 있겠지요. 오늘 아침 자연학습 간다고 김밥에 여러 가지 간식을 싸들고 떠난 저의 아들을 보니 북쪽아이들 생각에 눈물이 나는군요.

오늘저녁 아들애는 돌아오면 하루 종일 있었던 신기한 자연의 현상들에 대해 나름대로 본 것들을 엄마에게 자랑할 것이고 가을이 되면 자기가 심은 고구마나 감자를 캐가지고 돌아와서 자신이 농사지은 것이라고 어깨가 으쓱하여 자랑할 것입니다.

남쪽에선 도자기체험전도 참 많이 하는데요, 저의 집에도 아들아이가 도자기 체험학습에 가서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은 꽃병을 한개 만들어 온 적이 있는데 그 꽃병은 우리 집 재산목록 1호입니다.

현실체험을 통해서도 우리의 북쪽과 남쪽은 너무 많이 다르고 그 속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과 삶의 질은 비교조차 할 수없는 하늘땅 차이라는 것이 속상하고 새삼스러운 하루입니다. 오늘은 여기서 마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다음시간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