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말, 북한 말: 명절증후군


2007.09.27

이애란

여러분은 추석을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남쪽의 추석은 깁니다. 특히 이번 추석은 주말과 연결되어 있어서 무려 6일이나 추석 휴가였는데요. 어떤 사람들은 이 기간을 이용해서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긴 추석 휴가 동안 저는 밀린 일을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저와 같은 처지의 실향민이나 탈북자들은 모두 돌아갈 고향이 없어 이런 명절 때면 어느 때 보다 쓸쓸하지만 저는 이번엔 밀린 일이 많아서 쓸쓸하진 않았네요. 남쪽에서는요 명절연휴만 지나면 주부들이 명절증후군을 호소하는데요. 오늘은 이 명절 증후군이란 말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명절 증후군이란 명절을 전후해 많은 주부들이 이유 없이 시름시름 앓는 현상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어지럼증을 많이 호소하고 두통이나 소화불량, 복통, 손발마비 증상, 호흡곤란, 심장의 두근거림도 나타납니다. 이런 증상은 예민한 성격의 주부에게서 특히 많이 나타납니다. 이 명절 증후군이란 전통적인 관습과 현대적인 사회생활이 공존하는 우리나라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특이한 현상이라고 합니다.

북쪽도 명절증후군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남쪽의 주부들처럼 심각하게 호소하지는 않죠. 북쪽은 명절이라고 길어야 이틀 아니면 하루이기 때문에 명절증후군이 심하지도 않지만 명절날 음식준비로 하는 고생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죠.

남쪽의 주부들은 명절 전날부터 제사음식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음식도 만들어야 하고 또 시댁이 지방에라도 있으면 엄청난 교통체증을 뚫고 고향으로 가야 하지요. 이 교통 체증이 얼마나 심하냐하면 평시에는 아무리 멀어도 다섯 시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도 연휴 때는 수 십 시간씩 걸리기도 합니다. 또 시댁 어른들 만나고 손님 접대를 하고 일이 많죠.

북쪽은 명절에 떡을 만들고 몇 가지 반찬만 만들면 됐지만 남쪽에선 상차림 음식만 해도 대여섯 가지를 넘습니다. 그래서 요즘에 상차림 음식을 맡아서 만들어 주는 업종과 대신 제사를 드려주는 업종도 새롭게 나오고 있습니다.

북쪽에 살다온 제 입장에선 고생스럽더라도 먹거리가 풍부하고 또 피곤하더라도 마음대로 고향에 갈 수 있다는 것이 부럽기도 합니다. 추석이 되었어도 제사상에 올려놓을 밥 한 그릇을 지을 쌀 걱정을 먼저 해야하는 사정이라면 이 명절증후군이란 말은 정말 사치가 아닐까 합니다.

제가 남쪽에 온지도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9번째 추석을 보냈는데요. 세월이 흐를수록 내 고향 평양에 가보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설사 엄청난 명절증후군으로 쓰러져서 병원에 몸져누울지라도 고향에 가서 음식상을 차려놓고 몇날 며칠을 얘기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날이 빨리 오길 기대하면서 오늘은 여기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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