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란
남쪽에 와서 보니까 고시촌이 참 많습니다. 고시촌은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생활하는 곳인데요, 요즘은 고시촌에 자리가 없다고 합니다.
그만큼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요즘 남쪽은 취업이 전쟁이라고 할 만큼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이런 취업전쟁 속에서 어려운 국가고시를 통과해 전문직에 도전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북쪽에는 국가고시란 말이 없기 때문에 여러분은 생소하실 겁니다. 국가고시란 일정한 자격을 주려고 나라에서 시행하는 각종 시험을 말합니다.
국가고시에는 검정고시, 공무원시험, 공인중개사 시험, 공인회계사 시험, 관세사시험, 군무원시험, 변리사 시험, 사법고시, 세무사시험, 외무고시, 임용고시, 행정고시 등이 있는데요, 이 시험에서 합격하고 자격증을 따야 만 해당 분야에 취업이 가능합니다.
북쪽에선 대학을 졸업한 후에 따로 특별히 시험을 치르지 않고 당이 배치해 주는 대로 검사도 될 수 있고 판사도 될 수 있고, 국가의 관리도 될 수 있지만, 남쪽에선 대학을 졸업해도 사법고시에 합격을 해야만 검사나 판사, 변호사 같은 법 일군이 될 수 있답니다. 국가의 관리도 마찬가지인데요, 행정고시나 공무원시험에 합격해야 정부기관에 취업을 할 수가 있지요, 그리고 승진을 위해서도 시험을 봐야 하구요.
기술검정시험도 국가고시에 속하는데요, 각종 전문직과 기술자격에 해당한 시험들이 속합니다. 북쪽에선 기술자들을 위한 급수사정과 기술자격시험이 있지요. 남쪽에선 급수사정시험은 따로 보지 않습니다. 일단 자격증을 따면 따로 시험이 필요하지 않지요. 북쪽에선 기술자격을 땄어도 급수를 정해 놓고 3년에 한번씩 시험을 보는데 남쪽에는 그런 제도는 없습니다.
하지만 남쪽은 무한경쟁의 사회이기 때문에 자기개발에 게으르거나 노력하지 않으면 뒤처져서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남쪽에서는 직장에 다니면서도 공부할 수 있는 제도가 잘 되어있는데요, 그래서 직장인들은 야간에도 학원이나 사이버대학, 또는 야간대학에 등록하고 공부를 합니다.
물론 등록을 하려면 등록금이 필요합니다. 등록금은 자신이 마련해야 합니다. 등록금을 마련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어서 부담도 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답니다. 이처럼 남쪽의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본인의 노력에 따라 기회를 얻을 수도 있고 기회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것이 국가와 당에 의해서 결정이 되는 북한사회와 비교해 볼 때,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본인의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래도 노력에 따르는 공정한 기회가 있어서 저는 개인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더욱 신봉합니다. 아무튼 남쪽 사회는 국가고시라는 제도가 있어서 공무원에도 도전할 수 있고 변호사나 검사, 판사에도 도전할 수 있습니다.
출신 성분이나 당의 추천이 아닌 자신의 실력과 노력에 의해 어떤 일이든 가능하다는 것이 저에게는 엄청난 충격이기도 하고 감동이기도 합니다만 늦은 나이에 공부를 해서 쟁쟁한 남쪽 학생들을 따라가려고 하니 어지간히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남쪽에 온 지 10년이 되어오는데 국가고시는 아니지만 그동안 대학원도 다니고 학원도 다니면서 공부를 했는데 하루에 4시간 이상 잘 수가 없더군요, 그래도 따라가기가 너무 힘듭니다. 남과 북의 엄청난 차이가 아마 이처럼 개개인의 노력의 차이라고 생각하면서 오늘은 여기서 마치려고 합니다. 여러분 건강하시고 다음시간에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