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말, 북한 말: 집중호우
2006.07.20
지루한 장마철입니다. 태풍 에위니아가 핥고 지나간 자리들엔 처참할 정도의 피해들이 있었지요. 북한지역에도 장마피해가 크다고 들었습니다. 식량이 부족으로 끼니를 제대로 에우지 못하여 하늘이 노랗게 보이는 노란 계절을 보내고 계실 여러분에게 장마라는 불청객이 달려들어 괴롭힐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픕니다.
떠내려간 다리와 산사태로 막힌 도로, 물에 잠긴 집들을 원상대로 복구하자면 아무런 장비도 없이 사람의 인력에 의지해야 하는 북한의 형편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시겠습니까?
이번에 내린 집중호우는 남한의 여러 지역에도 엄청난 피해를 주었습니다. 북한에선 집중호우를 무더기비라고 하지요. 제가 처음에 남한에 왔을 때 무더기 비가 왔다고 하니까 남쪽사람들이 하나도 알아듣질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후에는 북한에서는 집중호우를 무더기비라고 부른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너무 재미있다고 하면서 자꾸만 얘기를 해달라고 하더군요. 하여간 이번에 내린 무더기비와 태풍은 남쪽지역에도 수많은 피해를 안겨주었습니다.
텔레비전을 비롯하여 라디오와 신문들은 모두 실시간으로 비 피해 상황을 뉴스특보로 다루었는데요, 그래서 멀리 가지 않고도 남한 전 지역에 대한 피해 상황과 수위변화에 대해 알 수가 있었지요.
북한에서 대학에 다닐 때였는데 어느 여름방학에 태풍13호 때문에 철길이 망가져서 떠나던 열차가 되돌아와 신의주에 갇히게 되었던 생각이 납니다. 대학기숙사에는 텔레비전은 고사하고 라디오도 없는데다가 장마로 정전까지 되었는데 피해상황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우리들은 고향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떠난 기차가 얼마 못가서 되돌아 왔는데요.
수많은 사람들을 신의주역에 쏟아놓으니 정말 신의주역은 아수라장이 되었지요. 돈도 없고 당시는 양표가 있어야만 음식을 사 먹을 수 있었는데 양표도 없고 얼마나 굶었는지 정말 하늘이 노랗게 보였습니다.
갈 곳이 없어 신의주역에서 노숙을 하며 5일이나 걸식을 하다시피 하였는데 씻지도 못하고 땀에 절고 때에 절어 인사불성이 되었었지요. 사흘 굶으면 양반이 없다더니 정말 얼마나 배가 고팠던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 것 같습니다.
며칠을 노숙을 하다가 친척집으로 가서 일주일을 대피한 후에 열차가 개통되었지만 방학이 끝나 결국은 집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던 적이 있습니다.
이번 태풍은 남쪽의 여러 지역에도 수해를 입혔는데 수많은 이재민들이 생겼습니다. 실시간으로 텔레비전에서는 특별재난지역에 대한 국가적인 지원대책을 설명하고 있고 또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돕기 위한 성금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업들에서는 피해를 입고 실의에 빠져있는 이재민들에게 여러 가지 도움을 주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을 마련하여 집중적으로 홍보하고 있는데요, 예를 들면 수해로 인해 고장 난 전기제품들과 자동차등을 무료로 수리해주거나 수리비를 대폭 면제하여 줌으로써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돕자고 나서고 있고 또 수천만원 또는 수억원의 현금을 이재민들을 위하여 쓸 수 있도록 기부하고 있습니다.
또 병원들과 의사들은 이재민들을 위한 무료진료를 개시하고 수해지역을 찾아 병상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군인들과 경찰들, 연예인들, 그리고 회사원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수해를 입은 지역에 찾아가 이재민들을 돕고 있습니다.
이럴 때 보면 남한이 우리가 교육받았던 자본주의 사회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어서 북한이 자랑하던 사회주의 사회와 헷갈리기도 한답니다. 서로가 좋은 일을 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남쪽의 현실을 볼 때 김일성 김정일이 그토록 떠들던 공산주의 인간전형들이 남쪽에 훨씬 많은 것 같은 생각도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남쪽사람들이 국내의 이재민들에 대해서만 적극적인 것은 아닙니다. 외국의 이재민들이나 재난을 당한 사람들을 위해서 수많은 성금을 보내기도 하는데요. 이것은 국가적인 차원의 것을 제외하고 개인들이 자신들의 의사에 따라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랍니다.
나라에 몸담고 있는 국민들이 누구의 강요가 아닌 자신의 의지에 따라 유지되고 운영되어 가는 것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 사회입니다. 국가가 정해준 주인이 아닌 스스로 주인이 된 사회 자유 민주주의 사회를 저는 정말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 땅이야 말로 누가 뭐래도 내나라 내 조국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땅은 전지전능한 수령이 아닌 우리 국민들 스스로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고 미래가 좌우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는 지도자나 수령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와 내 가족과 우리의 미래를 위해 일합니다. 그래서 수많은 고생에도 불구하고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