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란
요즘 남쪽에선 초등학교시절부터 성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실 북쪽에서 살다온 저희들로선 성교육이란 말자체도 어색하고 뭐 그런 걸 다 교육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어려서부터 성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알려주어 바른 사회 바른 품성을 가진 인간을 육성한다는 것이 성교육의 취지입니다. 북한에는 물론 성교육이 없으니까 그에 맞는 용어도 없지요. 하지만 여러분은 성교육이라고 하면 다 알아 들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성 교육하니까 제가 어린 시절에 겪었던 일이 생각나 웃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저는 평양에서 출생하였는데 할아버지 할머니가 6.25전쟁 시기 남쪽으로 피난을 가시는 바람에 소위 말하는 출신성분이 아주 나쁜 월남자 가족이어서 평양에서 추방되어 양강도 삼수군 관동리라는 곳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엔 평양에서 우리가족처럼 추방되어 온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평양에서 추방되어온 사람들 속에는 전직이 의사였거나 의학대학에 공부하였던 사람들도 여러 명 있었는데요. 남 여 공학으로 이루어진 시골학교에서 한창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은 성에 대해 아주 궁금해 하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폐쇄적인 사회에서도 하늘아래 첫 동네로 불릴 정도로 오지였던 그곳의 아이들은 교과서외에는 읽을 수 있는 책도 영상물도 제한되어 있었는데요.
그런 곳에서 한번은 엄청난 사건이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내가 속한 학급의 남학생들이 의학서적을 보다가 선생님들한테 들켰는데요, 그것이 비상사건화가 된 것입니다.
사실인즉 우리 반에 있던 남학생의 어머니가 평양에 있을 때 의학공부를 하였는데 당시에 공부하던 임상해부학에 관한 러시아서적이었는데 거기에 매독과 임질, 등 성병에 대한 내용과 함께 남여의 성기들이 색깔사진으로 나와 있는 것을 호기심에 가득 찬 사춘기의 산골소년들이 돌려가면서 보았던 것입니다.
성적인 어떤 것도 터부시하던 시대상황에서 아이들의 이런 행동은 곧 수정주의로 낙인이 되었고 그래서 우리 반은 비상사태가 선포되었습니다. 새벽 1시까지 우리는 전기도 없는 교실에서 석유 등불을 켜고 자백서를 써야 했는데요. 당시 나이가 중학교 2학년이라 열네살 정도였는데요, 사실 아무런 사전지식도 없이 성과 관련된 서적을 보았다고 수정주의 날날이 바람이 불었다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저는 그만 무식하게도 아마 수정주의가 남 여 간의 섹스나 성적인 것과 관련된 것인가 생각하였답니다.
당시 생물시간에 식물과 동물의 짝짓기에 대해 수정한다고 배웠으니까요 지금은 아무리 생각해봐도 배꼽을 잡고 웃을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당시엔 얼마나 심각한 분위기였는지 모른답니다.
학부모들이 모두 학교로 불려왔고 문제의 그 서적은 전부 압수당하였습니다. 남학생들이 돌려본 불온서적 때문에 애매한 여학생들도 다 같이 처벌을 받아 집에도 가지 못하고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엄동설한에 냉방에서 떨던 생각이 지금도 생생한데요.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 때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사람들을 못살게 굴었을가? 더구나 남쪽에 와서 성에 대해 텔레비전과 라디오 등 언론매체에 나와서 노골적으로 이야기 하고 또 그것을 교육까지 한다고 하니 왜 그렇지 않겠습니까?
남쪽에선 성에 대해 표현이 너무 노골적이어서 어린학생들에게 나쁜 영향을 줄 가봐 학부모들이 걱정을 많이 하는데요. 사실 성에 대해 이렇게까지 폐쇄적인 북한에서도 사춘기 청소년들의 성범죄도 아주 많이 일어나지요. 아이들이 성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억제하고 관리할 줄 아는 인격체로 키우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의 욕구는 말리면 말릴수록, 억제하면 억제할수록 더욱 강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북쪽아이들도 남쪽아이들처럼 성에 대해 자유로운 사고를 가지고 또 올바른 성교육을 받아 자신이 자기의 성을 지켜 나갈 수 있는 인격체들로 키웠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드네요. 오늘은 여기서 마칩니다. 다음시간에 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