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보도에 보니까 미국에 있는 선교단체인 페니선교회가 북한에 살고 있는 상이군인들을 돕는다고 하는군요. 우리들이 그처럼 증오하던 원수의 나라, 미국, 그리고 북한의 사회주의에는 불구대천의 악마로 선전되어온 기독교의 선교단체가 상이군인들을 돕는다고 하니 여러분들은 참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그건 그렇고, 상이군인이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 되시지요. 오늘은 상이군인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상이군인이란 북한말로 영예군인과 같은 말인데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전투나 군사상의 공무 중에 상처를 입은 군인을 말합니다. 북한은 각 도의 소재지나 군소재지들에 영예군인 공장들을 차려놓고 우대하는 정책을 실시하였지요.
제가 사는 도시에도 영예군인 수지일용품공장이라는 곳이 있어서 각종 비닐소랭이와 장화, 비닐가방, 비옷, 여행용트렁크 등을 생산하였는데 하루에 6시간씩 노동하고 또 공장에는 식당과 정양소들이 있어 누가 보기에도 시설도 좋고 대우도 좋은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영예군인들의 자녀들은 본인이 원하면 영예군인공장에서 일할 수 있는 특혜도 있었구요. 북한에는 여러 가지 생필품을 만드는 공장들은 거의가 다 영예군인들이 맡아 하는 경우가 많지요.
그리고 반신불수가 되었거나 지체장애를 입어 거동이 불편한 영예군인들은 특류 영예군인으로 분류하여 특별대우를 해주었는데 이런 사람들에게 시집을 가면 조선노동당에 입당도 시켜주고 아파트도 주고 특별한 경우에는 평양시거주권도 허락하니까 가끔은 꽃다운 처녀들이 지체장애를 입은 영예군인들에게 자원하여 시집을 가서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그리고 북한에선 이런 일들을 장려하기 위해 “내 고향의 처녀들”이란 영화까지 만들어 영예군인들을 돌보는 것을 장려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다 식량난 이전의 미담이었고 식량난 이후 나라가 어려워지고 건강한 사람도 살기가 어려워 굶어죽는 상황에선 장애를 입어 활동이 불편한 영예군인들이 살기가 가장 어렵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일입니다.
저는 남쪽으로 오기 전에 여행길에서 한쪽다리를 잃고 불편하게 여행하는 영예군인 처녀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요. 그 처녀는 특수부대 출신으로 낙하훈련을 하다가 떨어져서 한쪽다리를 잃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처럼 불편한 처녀가 일가족도 없는데 옆에서 돕는 사람도 없이 혼자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며칠을 굶어 얼굴이 하얗게 뜬데다가 씻지를 못해서 땟국이 줄줄 흐르는 옷차림과 얼굴을 하고 그래도 옆에서 거들어 주는 길손들에게 고맙다고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가끔은 떠올라 궁금해지기도 하는데요.
식량난이후로는 영예군인들이 정말 국가의 짐이었지요. 그런데 이렇게 미국의 선교단체가 나서서 북한의 영예군인들, 즉 상이군인들을 돕는다고 하니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영예군인들을 돕겠다고 나선 미국의 선교단체는 미국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기부하는 페니를 모아 기금을 마련한다고 하는데요, 페니는 미국돈 1센트, 즉 북한 돈으로 하면 아마 1전짜리와 같을 것입니다.
아마 수많은 사람들이 동참하여 모은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미국의 어린이들도 페니를 모아 선교단체에 보내온다고 하는군요. 북한에서 그처럼 나쁘다고 선전하는 원수의 나라 인민들과 그 땅의 어린이들이 보내는 사랑의 손길이 식량난 속에서 불편한 몸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영예군인들을 보살피고 있다는 것은 정말 수수께끼 같은 일입니다.
남쪽에도 북한의 영예군인과 같은 상이군인들이 있는데요, 여기는 영예군인 공장 같은 것은 없고 상이군인들은 국가의 유공자로 분류되어 국가보훈처라는 곳에서 관리를 하는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기본적인 생활비는 국가에서 보장하여 줍니다.
그리고 병 치료도 무료로 받을 수 있는 제도도 갖추어져 있고 국가 유공자로 지정이 되면 자녀들도 대학입학이나 취업 등 여러 측면에서 우대하는 제도가 있답니다. 그리고 북한에는 아무리 심한 장애를 입었다고 해도 손해 보상금 같은 것을 지불하는 것이 전혀 없지만 남쪽에는 장애를 입은 정도에 따라 피해보상금을 주기 때문에 보상금으로 생계를 유지해 나갈 수도 있답니다.